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 AI(인공지능)이 자산관리 서비스에서 혁신을 예고하고 있다. 그동안 1%의 고액 자산가에만 제공됐던 전문가의 자산관리 서비스를 일반 대중에게도 제공하는 것이 AI를 통해 가능해질 전망이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AI 기술을 중심으로 서비스, 상품, 조직을 완전히 바꾸고 있다.

조선비즈는 ‘자산관리의 미래’라는 주제로 5회에 걸쳐 AI가 가져올 국내외 자산관리 산업의 변화를 진단하고 금융투자회사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오는 10월 25일 열릴 미래투자포럼에서도 ‘인공지능(AI)이 가져올 자산관리 혁명’이란 주제로 이 같은 내용을 다룬다. [편집자 주]

2016년 6월 23일(현지시각)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찬반을 두고 국민투표가 치러졌다. 투표 당일 여론조사와 직후 출구 조사에서는 EU 잔류가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는 탈퇴. 예상과 다른 결과였다. 파운드화는 급락했고 세계 증시가 요동을 쳤다.

이날 여론조사와 정 반대의 결과를 예상하며 충격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를 한 회사가 있었다. 소셜미디어 데이터 분석업체 데이터마이너(Dataminr)는 탈퇴 여부가 결정되기 1시간 전부터 탈퇴로 발표가 날 것이라며 고객들에게 긴급 경보 메시지를 전달했다.

데이터마이너는 금융사가 아닌 데이터 전문 분석업체다. 2009년 미국 뉴욕에 설립된 이 회사는 매일 5억개 이상의 뉴스와 소셜미디어 정보, 시장 데이터 등 광범위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한다. 데이터마이너를 통해 가공된 정보는 금융사, 통신사, 공공기관 등 다방면으로 제공이 된다.

데이터마이너(Dataminr)의 영국 EU 탈퇴 경보와 파운드 평가절하 시점

데이터 처리 기술이 발달하며 투자와 자산관리, 고객관리 영역에서 빅데이터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빅데이터는 끝없이 쏟아지는 방대한 데이터로부터 의미 있는 정보를 추출하고,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는 기술이다. 금융사들은 빅데이터를 통해 기업을 분석하거나 주가 예측, 투자 전략 등에 활용할 수 있다.

한국은 빅데이터와 관련해서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문성에 대한 검증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데다 활용되는 자료들이 업체별로 제각기 다르다. 이는 효율성 문제와 함께 과연 제대로 된 정보를 활용하고 있는가와 같은 신뢰 문제를 낳는다.

한국에서는 이렇다 할 빅데이터 전문 기업이 없다. 해외처럼 데이터 처리와 금융 서비스가 분업화돼 각자 영역을 특화하기보다 모든 걸 스스로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자료 수집에 있어서도 많은 걸림돌이 있어 빅데이터 생태계가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빅데이터를 통한 금융서비스가 자리 잡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자료 처리 기술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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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빅데이터는 걸음마 단계…전문성도 떨어지고 데이터 수집부터 제약

현재 국내 금융투자업계의 빅데이터 사업은 걸음마 단계다. 빅데이터에 가장 특화된 로보어드바이저 업체들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4월까지 진행된 검증 절차에서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가 상승한 수준에도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며 기술력에 많은 의구심을 낳았다.

증권사의 경우 별도 조직을 만들어 빅데이터의 연구, 개발에 힘쓰는 곳이 몇 몇 있지만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업체가 더 많다. 또 현재까지 빅데이터를 통해 출시된 아이템 대다수가 증권사 자체 개발보다 이미 기존에 있는 서비스를 제휴 형식으로 내놓은 경우가 대다수다.

미래에셋대우는 지난해 디지털금융부문을 신설해 빅데이터 관련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올해 초에는 맞춤형 상품 추천과 주가 예측 모형 개발을 위해 서울대학교와 업무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KB증권은 올해 4월부터 고객관계관리(CRM)를 위한 고객 관리 자동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내년 1분기 출시를 목표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증권은 자산관리 플랫폼인 ‘스마트 어드바이저’를 지난해 내놨다. 고객들은 스마트 어드바이저를 통해 자신의 투자성향을 파악하고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추천받을 수 있다. 신한금융투자는 현재 제휴를 통해 주가흐름을 예측하는 ‘빅터’와 ‘코스폴’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키움증권은 지난 8월 21일 빅데이터, 로보어드바이저 등 프로젝트별로 나눴던 팀들을 통합해 디지털금융팀을 새로 꾸렸다. 자체 개발한 서비스로는 ‘개장전 조회 1~3위 종목’과 ‘실시간 종목조회 순위’가 있다.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종목들의 순위를 알려주는 서비스다. 이외에도 하나금융투자의 ‘팩트 서비스’와 대신증권의 ‘로봇 벤자민’이 있다. 팩트 서비스는 정보를 필터링 해주는 프로그램이고 로봇 벤자민은 금융상품을 추천해주는 서비스다.

이들 서비스 중 상당수가 출시된 지 1년도 채 안됐기 때문에 충분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다. 신뢰를 쌓기까지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각 업체들이 서비스를 출시하기 위해 활용한 빅데이터를 믿어도 되는가 하는 문제도 있다. 빅데이터를 다루는 기술력의 한계도 있지만, 국내에서는 각종 규제가 가로막아 정보를 수집하는 데 있어서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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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 빅데이터 전문기업 통해 1차 자료수집…정부는 데이터 개방 위해 제도적 뒷받침

해외 선진국들은 우리나라와 달리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생태계가 체계적으로 마련돼 있고 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제도를 개선하는 추세다. 우리나라는 금융업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처리하지만 해외 선진국들은 한 단계 앞서 빅데이터 전문 기업으로부터 가공된 정보를 받고 이를 활용해 금융서비스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미국 빅데이터 기업 시그나이트(Xignite)는 금융사, 기관투자자 등 1000개 이상의 고객에게 주식, 채권, 환율, 원자재 등과 관련된 금융정보를 유료로 제공하고 있다. 시그나이트가 수집한 데이터로 빅데이터를 구축해 자체 플랫폼에 탑재하면 고객들이 접속해서 데이터를 꺼내 쓰는 구조다. 주요 고객으로는 로보어드바이저 선두 주자인 베터먼트(Betterment)나 웰스프론트(Wealthfront) 등이 있다.

또 미국 알파센스(AlphaSense)란 회사는 3500개 이상 상장사들의 금융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알파센스는 1000곳이 넘는 데이터 출처로부터 데이터를 수집해 한 곳에 저장하고, 자체 분석 도구를 통해 투자와 관련된 키워드를 추출하거나 상장사의 최신 정보를 요약해 보여주기도 한다. 이외에도 미국 켄쇼(Kensho)와 스탁트위츠(StockTwits), 딥밸류(Deep Value)가 있고, 캐나다 퀀들(Quandl), 프랑스 스케일드리스크(Scaled Risk) 등 해외에서는 빅데이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업체들이 오랫동안 기반을 다져왔다.

이성복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해외에서는 자본시장에 특화된 빅데이터 전문기업이 출현하면서 빅데이터 활용이 촉진됐다”며 “빅데이터 전문기업이 제공하는 도구를 통해 데이터를 분석하는 게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 측면에서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데이터에 대한 접근성 제고도 풀어야 할 시급한 과제다. 이 연구위원은 “이미 해외 각 국 정부에서는 경제성장 전략의 하나로 공공데이터 개방이 확대되고 있고 민간데이터 유통도 촉진될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마련하고 있다”며 “그 예로 유럽연합(EU)에서는 은행이 보유한 개인 금융정보를 당사자의 허락 하에 제 3자가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PSD2’ 시행을 앞두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