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등 사외이사 대부분이 교수·권력기관 출신

권오현 삼성전자(005930)부회장의 전격적인 사퇴로 삼성그룹의 대규모 경영진 교체가 예상되는 가운데, 각 계열사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의 역할과 구성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미전실)을 해체하고 계열사 자율경영 방침을 강조하면서 이사회의 역할이 중요해졌지만, 이사회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사외이사의 경우 전문성이 떨어지거나 반대 목소리를 거의 내지 않아 ‘거수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17일 삼성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삼성전자, 삼성물산(028260), 삼성생명(032830), 삼성SDS, 삼성SDI(006400)등 5개 주요 계열사의 사외이사는 6월말 기준 총 23명으로 이 중 교수가 13명으로 가장 많다. 전 검찰총장, 전 기획재정부 장관, 전 고용노동부 차관,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 등 사법부·행정부 출신 인사가 4명이었고 대학교 총장, 은행장 출신 인사도 있다.

특히 삼성그룹 상장 계열 16개사의 이사회가 작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처리한 799개의 안건 중 보류나 기각으로 결정한 것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는 “국내 기업의 이사회는 사외이사 비율 등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나아졌지만 실질적인 기능은 미흡하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동의 삼성전자 사옥에서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 관련 분야 전문성 부족하고 반대 목소리 없어

삼성전자, 삼성물산 등 삼성 계열사는 이사회 안에 여러 위원회를 두고 있다. 중요 사항을 결정하는 위원회는 사내이사로만 꾸리고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위원회는 사외이사들로 구성돼 있다.

삼성전자는 이사회 내에 경영위원회, 내부거래위원회, 보상위원회, 거버넌스위원회 등을 두고 있다. 이 중 회사의 중장기 경영방침과 전략을 수립하는 곳은 경영위원회다. 경영위원회는 권오현 DS(Device Solution)부문장, 윤부근 CE(Consumer Electronics)부문장, 신종균 IM(IT&Mobile) 부문장 등 사내이사 3명으로만 구성돼 있다.

삼성물산 이사회도 경영위원회, 내부거래위원회, 보상위원회, CSR위원회 등을 두고 있다. 회사의 중요 사항을 결정하는 경영위원회는 최치훈·김신·김봉영 대표이사 사장과 이영호 부사장 등 모두 사내이사로만 구성됐다. 삼성생명도 경영전략을 수립하는 지속가능경영위원회에 김창수 사장, 김대환 전무 두 명만 속해있다.

사외이사들이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는 이유 중 하나는 전문성 부족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사외이사 5명 중 정보통신기술(IT) 관련 경력이 있는 사람은 이병기 서울대 교수가 유일하다. 삼성생명의 사외이사 중에서도 보험 관련 경력이 있는 사람은 김두철 상명대 교수뿐이다.

◆ “사장단,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컨트롤타워 필요”

전문가들은 총자산 363조원(2016년말 기준)에 달하는 재계 1위 그룹인 삼성에 컨트롤타워가 없는 것은 상당한 비효율을 야기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재계 2위인 현대차(005380)는 자동차를 정점으로 수직계열화 돼 있어 사업 구조가 비교적 단순하지만 삼성은 스마트폰, 반도체, 가전제품, 금융 등 사업 영역이 방대해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를 내고 중복 투자를 막기 위해서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은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장기적인 비상경영 체제가 불가피해졌다”며 “SK그룹이 최태원 회장 부재 시에 수펙스추구협의회 중심으로 돌아갔던 것처럼 삼성도 중복 투자 방지, 계열사 간 시너지 창출 등을 위해 계열사 사장단과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SK그룹은 집단경영체제인 수펙스(SUPEX·SUper EXellent)추구협의회를 운영하고 있다. 수펙스추구협의회는 16개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 등으로 구성됐고 산하에 에너지·화학위원회, ICT위원회, 글로벌성장위원회, 커뮤니케이션위원회, 전략위원회, 인재육성위원회, 사회공헌위원회 등 7개 위원회를 두고 있다.

조 원장은 SK처럼 삼성도 사장단으로 집단경영체제를 구축하되 객관성을 강화하기 위해 외국 전문가를 영입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국내 경쟁기업의 경영진을 데려오는 것은 (한국 문화 등을 감안했을 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전문성 있는 외국 기업 인사를 데려오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2008년에 비자금 특검 당시 전략기획실을 해체하면서 기존에 있던 사장단회의를 사장단협의회로 격상시켜 계열사 간 투자 조정, 신사업 발굴 등 전략기획실의 업무를 일부 맡긴 경험이 있다. 당시 사장단협의회는 삼성전자를 축으로 한 전자계열, 삼성생명을 축으로 한 금융계열, 삼성물산, 제일기획 등을 축으로 한 서비스부문으로 나뉘어 운영됐다. 삼성 관계자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어느 정도 형성됐지만, 이전과 같은 형태로 운영하지는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