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당 근로시간을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내용으로 근로기준법 개정이 추진 중인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근로시간 단축을 주문하자 재계는 “당장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인건비 부담이 너무 크다. 산업현장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정부와 노동계는 근로시간이 줄면 일과 생활의 균형이 생기고 여가가 늘면서 삶의 질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는 대체 인력을 추가로 고용해야 하고, 휴일근무수당을 가산해서 지급해야 해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근로시간 단축 논쟁 다시 점화

문 대통령은 지난 16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18대 국회부터 충분한 논의를 거친 만큼 반드시 통과되도록 노력해달라”며 “국회 통과가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행정해석을 바로잡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현행 근로기준법과 고용노동부 행정지침에 따르면 주당 최대 근로시간은 68시간이다. 법정근로 40시간, 연장근로 12시간, 휴일근로 16시간 등이다. 정부는 2004년에 이른바 ‘주 5일제’를 도입하면서 연장근로를 포함한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했다. 그러나 고용부가 휴일근로를 예외로 해석해 토요일, 일요일을 포함한 주당 최대 근로시간이 68시간으로 정착됐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행정해석은 휴일근로를 인정한 고용부의 지침을 말한다. 정부가 행정해석을 폐기하면 주당 근로시간이 당장 52시간으로 줄어들고, 사용자가 이를 어기면 2년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노동계는 한국 근로자의 연간 근로시간이 다른 선진국보다 월등히 길어 근로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작년 기준 한국 근로자의 연간 근로시간은 2069시간으로 회원국 평균인 1763시간을 크게 웃돌았다.

◆ 재계 “추가비용 부담…근로자 양보도 필요”

근로시간이 줄면 같은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 대체 인력을 고용해야 하기 때문에 기업의 부담은 커진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015년에 발표한 ‘근로시간 단축의 비용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근로시간이 줄었을 때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추가 금액은 연간 12조3000억원으로 추정됐다.

세부적으로는 인력 추가 고용에 따른 급여 등 비용이 9조4000억원, 교육훈련비·복리비 등 간접노동비용이 약 2조7000억원으로 추정됐다. 전체 비용 12조3000억원 중 약 70%는 근로자 수 300명 미만인 사업장이 부담하고 전체 비용의 약 60%는 제조업에 집중되는 것으로 추산됐다. 보고서는 “전체 비용의 약 22%는 영세 사업장이 많은 도소매·음식·숙박업에 집중돼 있어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와 영세 산업의 경영환경 악화가 우려된다”고 했다.

근로시간이 줄면 근로자 삶의 질은 좋아지고 신규 채용은 늘지만, 기존 근로자의 임금은 줄게 된다. 고용부가 올해 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소위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주당 근로시간이 평균 59.6시간인 18개 업종 근로자 107만105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하면 월평균 임금은 305만2000원에서 266만4000원으로 12.7% 감소할 것으로 추산됐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일부 노동조합은 임금 감소가 없는 근로시간 단축을 요구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무리한 요구를 수용하기가 어렵다”며 “중소기업이 대응할 수 있도록 기업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행하고 노사가 모두 한발씩 양보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