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스비 극약처방' 정의석 부사장 투입
빅스비, 이름 빼고 다 바꾼다
SDK 없는 빅스비2.0은 사실상 껍데기

삼성전자가 인공지능(AI) 비서 ‘빅스비’를 두고 ‘이름 빼고 다 바꾼다’는 내부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확인됐다.

12일 삼성전자 내부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미국 삼성전자 리서치오브아메리카(SRA)가 빅스비 소프트웨어의 소스코드 분석 작업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하드코딩과 데이터・배터리를 많이 쓰는 비효율, 출처없는 오픈소스 사용 등 빅스비의 문제점을 확인했고 대대적인 수정 작업이 필요하다는 내부 공감대를 이뤘다.

하드코딩은 입력값을 직접 소스코드에 넣는 코딩 방식을 말하며, 하드코딩 소스가 많은 경우 범용성이 떨어진다.

한 외국인이 빅스비를 사용하는 모습

◆ “빅스비, 장기 계획 다시 만들라"

지난달부터 SRA에 근무하던 정의석 삼성전자 부사장이 이인종 삼성전자 개발1실장(부사장)을 대신해 빅스비 개발 총괄을 맡고 있다. 빅스비 문제 해결을 위해 수장을 바꾼 것이다.

빅스비 개발 전권을 잡은 정 부사장은 실무 개발자들에게 빅스비의 현재 성능과 소스코드 상태를 묻는 보고를 요청했다. 그 결과 빅스비의 코딩 일부에서 다수의 하드코딩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빅스비 너 이름은 뭐니?’ ‘빅스비 이름이 뭐야?’ ‘빅스비 이름 좀 말해봐’ 등 3개 질문은 모두 빅스비의 이름을 묻는 말이다. 자연어 처리 기술을 응용하면 유연하게 1줄의 코딩으로 3가지 질문을 해석할 수 있다. 반면, 하드코딩을 할 경우 질문에 대한 답을 소스코드에 직접 입력해 프로그램이 무거워진다.

정의석 삼성전자 부사장

하드코딩은 변경사항을 간편하게 적용할 순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소스코드가 복잡해져 가독성이 떨어지고 유지보수가 어렵게 된다. 결국 데이터 사용량이 많아지고 배터리 사용 시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삼성전자에 정통한 관계자는 “정 부사장이 생각하는 빅스비 코딩 수준은 빅스비 APK파일을 다른 폰에 설치해도 이상없이 동작하는 범용성을 갖는 것"이라며 “내부적인 분위기로는 빅스비라는 이름만 빼고 내용을 전부 바꾸는 수준의 리뉴얼 작업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는 “(정의석 부사장 측으로부터) 장기 계획을 짜서 보고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내부 조사결과, 일부 서버 소스 코드에서 출처를 밝히지 않는 ‘오픈소스’가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오픈소스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지만 출처를 밝혀야 한다. 출처를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오픈소스를 사용할 경우 저작권 소송이 벌어질 수 있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이미 빅스비 개발의 전권이 한국이 아닌, 미국으로 넘어갔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삼성전자가 영어버전 빅스비를 개발할 당시 영어 빅데이터 처리와 자연어 인지와 관련해 기술력이 부족하자, 미국 SRA로부터 개발을 지원받았다. 이를 계기로 미국 측 개발자들은 한국 측 개발자의 능력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다고 한다. 미국 현지 개발자들이 적극적으로 투입돼 한국 인공지능팀과 미국 실리콘밸리 인력간의 회의도 많아졌다.

◆ 삼성개발자컨퍼런스 SDK 출시일 공개하나?…“빅스비 생태계 구축에는 시간걸려"

정 부사장 투입과 빅스비 전면 리뉴얼 작업이 진행될 경우 빅스비의 인공지능 생태계 구축속도는 더욱 지연될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개발자를 위한 빅스비 개발자도구(SDK) 공개다. 당초 올해 여름 공개될 전망이었지만 영어 버전 출시 지연 등 악재가 겹치면서 손을 대지 못한 상태다.

삼성전자는 오는 18일(현지시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삼성개발자컨퍼런스(SDC)를 개최한다. 빅스비2.0과 소프트웨어개발도구(SDK)에 대한 구체적인 발표가 있을 지 확실하지 않다.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업부장(사장)도 지난달 열린 갤럭시노트8 국내 출시 간담회에서 “빅스비2.0을 SDC에서 공개하겠지만, SDK까지 공개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한다"며 말을 아낀 바 있다.

삼성전자 개발자컨퍼런스 홈페이지 모습

빅스비는 현재 투트랙 전략(두 가지 전략을 동시에 추구하는 방식)으로 개발되고 있다. 먼저 국내에서 과거 음성인식 비서 서비스인 ‘S보이스'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빅스비1.0’의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빅스비1.0을 외부 가전제품과 SDK를 활용해 서드파티들과 연동시키는 플랫폼 기술은 미국 SRA와 비브랩스에서 개발을 맡았다.

삼성전자는 음성인식과 플랫폼 두 가지 기술이 모두 완성될 경우 하나로 합쳐 ‘빅스비2.0’을 공개할 예정이다. 삼성전자 개발에 정통한 관계자는 “빅스비1.0이 잘 구동돼야 2.0을 얻을 수 있는 구조인데 1.0이 완벽하지 않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최근 업데이트한 삼 개발자 콘퍼런스 스케줄을 보면 첫날인 18일 오후 1시(현지시간) ‘빅스비 홈카드 SDK’라는 주제로 발표가 예정돼있다. 이 시간에는 빅스비 홈에 대한 설명, 빅스비 홈 SDK에 대한 정보가 공개된다.

삼성전자는 빅스비를 사용해 모든 가전제품을 제어, 모니터링 하려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

빅스비 홈 카드 개발 프로세스와 서드파티 통합 모델 설명, 디자인 요소에 대해서도 언급이 있을 전망이다. 이후 질의응답을 통해 현재 청중들의 질문을 받을 예정이다. 다만 45분 간의 세션 동안 SDK에 대한 얼마나 많은 정보를 제공할지에 대해서는 미지수다.

국내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애플의 경우 제품 혹은 서비스를 공개할 때 개발자와 소비자들이 직접 사용할 수 있는 시기를 못 박아 얘기한다"며 “삼성전자가 빅스비를 자사가 출시하는 스마트폰과 가전제품에만 사용할 게 아니라 외부 서드파티와의 협력을 기대한다면 완성도 높은 SDK를 빠르게 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SDC에서 빅스비2.0의 일부 기능이 공개되긴 하겠지만 전체 내용과 구체적인 출시 시점 등에 대해서 언급이 없을 것"이라며 “특히 SDK의 경우 아직 미완성의 개발 중인 단계로 실제 개발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연말이나 내년 1분기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