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 금리 상승폭 2년4개월 최대
불확실성 커지면 경제성장률 0.5%P 하락

최근 외국인 채권 투자자들은 만기 5년 이상 장기물을 대거 팔아치웠다. 3년 이하 단기물은 거의 사지 않았다.

북한 핵무기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만성화되면서 금융시장 뿐만 아니라 실물경제도 상당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군사적 긴장이 급격히 높아졌다가 해소되던 이전과 다르게, 이번에는 상당 기간 강한 수준의 대치가 지속되면서 높은 수준의 불확실성이 유지되는 게 특징이다. 금융 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이 대거 빠져나가고, 환율 등이 출렁거리는 현상이 일상화되고 있다. 이렇게 금융 부문에서 높아진 불확실성은 결국 투자, 소비, 생산, 고용 등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

◆ 높아진 리스크에 채권서 발 빼는 외국인

10일 기획재정부가 실시한 국고채 5년물 경쟁입찰은 썰렁한 분위기에서 끝났다. 이번 입찰에서는 9월말 국고채를 한 번에 3조원 가량 정리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응찰할 지가 관심사였다. 하지만 외국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한 증권사 채권 딜러는 “외국인이 참여할 것이란 기대가 일각에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썰렁하다 싶은 분위기였다”며 “국내 투자자들도 관심을 보이지 않아 장중 금리 상승세를 더욱 부채질했다”고 말했다. 이날 입찰에선 1조3500억원 어치가 가중평균금리 기준 연 2.135%에 낙찰됐다. 낙찰 당시 시장 금리 연 2.125~2.13%와 비교해 0.005~0.01%포인트 높은(채권가격 하락) 수준이다.

추석 직전인 9월 26일과 27일 외국인은 2조9200억원원 가량의 국고채를 팔아 치웠다. 이 가운데 만기 5년 이상 중장기 국고채가 다수 포함돼 있었다. 1000억원 어치 이상 매도한 종목 8개 가운데 7개가 만기 5년 이상이었다. 외국인이 중장기 채권을 만기가 돌아오기 전에 중도 매각하는 것은 이례적이어서 채권 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게다가 한국 채권 시장의 큰 손으로 이따금 차익 실현을 위해 대규모 매도 폭탄을 내놓던 템플턴자산운용이 판 금액은 1조원 가량에 불과했다. 나머지 2조원은 대부분 외국 채권 운용사들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신흥국 채권 시장으로 글로벌 뮤추얼펀드 자금이 유입되는 상황”이라며 “한국 채권 시장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심리가 악화된 것”이라고 이영한 대신증권 연구원은 말했다.

북한 리스크가 높아지면서 외국인들이 발을 빼는 기류라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시각이다. “중도에 매각하면 손실을 입을 수 밖에 없어 당장은 움직이지 않지만, 만기가 돌아온 자금을 다시 한국 국고채를 매입하는 데 쓰지 않겠다는 운용사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외국인 채권 투자자금이 계속해서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다”고 한 헤지펀드 관계자는 귀띔했다.

추석 연휴 직후인 10월 채권 시장에서 국고채 금리는 3년물(연 1.938%)은 0.05%포인트, 5년물(연 2.142%)은 0.052%, 10년물(연 2.418%)은 0.039%포인트 올랐다. 3년물과 5년물 금리 상승폭은 각각 2015년 5월 이후 2년 4개월만에 최대치다. 10년물 선물은 108.48로 14틱 내렸다. 현물 시장에서는 외국인이 매도세를 보이지 않았지만, 선물 시장에서는 3년물은 1만6700계약, 10년물은 3100계약 각각 매도했다. 한은 관계자는 “당장 외국인이 한 방향으로 쏠리면서 특정한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았다”면서도 “향후 채권 시장 동향에 대해서 계속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 불안정이 실물 경제 타격 준다”

한국은행이 2016년 발간한 보고서에서 불확실성이 GDP 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전문가들은 이렇게 금융 부문에서 불안정성이 높아지면 결국 실물 경제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본다. 일반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지면 내구재 소비가 줄고, 기업도 투자 집행 등을 미루게 된다. 금리 등 금융 비용이 상승하는 것도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특히 최근 경제학자들은 불확실성이 금융 시장에서 불안정성을 끌어 올려 실물 경제에 악영향을 주는 경로에 주목한다. 최상엽 연세대 교수(전 IMF 이코노미스트)는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금융 부문이 즉각적으로 반응하면서 금리, 환율, 주가 등이 변화한다”며 “금융 시장의 움직임이 결국 실물 경제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투자, 고용, 산출을 끌어내린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와 IMF(국제통화기금) 이코노미스트들이 지난해 발표한 ‘전체적 불확실성과 산업 부문별 생산성 성장: 신용 제한의 역할(Aggregate Uncertainty and Sectoral Productivity Growth: The Role of Credit Constraints)’ 보고서에 따르면 부채 비율이 높은 기업일수록 불확실성 증대로 타격을 입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 교수가 올해 6월 발표한 또 다른 논문에 따르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대외의존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불확실성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대외의존도가 높은 나라일 수록 불확실성 증가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이 2016년 4월 발표한 ‘거시경제 불확실성 측정’ 보고서에 따르면 불확실성이 장기 평균보다 1표준편차(평균에서 벗어나 있는 정도로 1표준편차 이상이면 전체 분포에서 상위 16.4%라는 의미) 높아질 경우 6개월 뒤 GDP 성장률이 0.5%포인트 내려간다는 결과를 내놨다. 주가, 환율, 기업경기실사지수(BSI), 국내총생산(GDP), 물가, 미국·중국·유럽의 경제정책 등 지표 8개를 기반으로 자체적으로 작성한 불확실성 지수를 기반으로 VAR(벡터자기회귀) 모형과 충격-반응 함수를 이용해 분석한 결과다. 이 보고서에서 한은은 “불확실성 증가는 소비, 투자 등 수요 측 요인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결국 지금과 같이 불확실성이 껑충 뛸 경우 소비 회복세 및 기업 투자 활성화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란 얘기다.

북한과의 국지전 등 재난에 가까운 상황이 벌어졌을 경우 물리적 피해 이상으로 경제가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니콜라스 블룸, 스콧 베이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2013년 발표한 ‘불확실성이 성장률을 떨어뜨리는가? 자연실험으로써 재난의 활용’이란 제목의 논문에서 인구의 0.001% 이상(한국의 경우 500여명)이 죽는 재난이나 테러, 쿠데타 등 급격한 정권 교체, GDP(국내총생산)의 0.01% 이상이 하락하는 경제위기가 발생했을 때 전세계 각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그 결과 재난이 발생해 주가의 등락이 1표준편차만큼 커지면 다음해 GDP는 2.2%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가 등락폭 자체가 1표준편차 만큼 확대되면 GDP 하락폭은 7.1%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