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3위 철강업체 고베제강이 지난 1년간 알루미늄, 구리 제품의 품질 데이터를 조작했다고 인정하면서 그 여파가 일본 산업계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그러나 국내 알루미늄 시장 규모가 작은데 다 국내에서 고베제강과 경쟁하는 업체가 글로벌 기업인 노벨리스 밖에 없어 국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고베제강 다이안 공장 전경

고베제강은 지난 8일 일본 내 다이안 공장 등 4곳에서 생산한 알루미늄 및 구리 제품 일부가 고객사와 합의한 제품 사양(강도 등)을 충족하지 못하자 품질 검사 데이터를 위조한 뒤 부적합 제품을 납품했다고 밝혔다.

고베제강이 인정한 부적합 제품은 지난해 9월 1일부터 올해 8월 31일까지 생산된 알루미늄과 구리 제품이다. 그 규모는 알루미늄 1만9300톤, 구리 2200톤, 알루미늄 주물‧단조제품 1만9400개다. 이는 알루미늄 및 구리 사업 부문에서 발생하는 연간 매출의 4% 수준이다.

10일 비철금속업계에 따르면 고베제강으로부터 품질 부적합 제품을 공급받은 일본 업체는 200곳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는 도요타자동차, 미쓰비시중공업, JR도카이 등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내 주요 자동차, 항공기 제조업체 대부분이 이번 사태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1905년 설립된 고베제강은 신일철주금, JFE스틸과 함께 일본 3대 고로업체로 꼽힌다. 철강, 알루미늄, 구리 등 소재 사업 뿐 아니라 기계장비와 전력생산 사업도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알루미늄은 고베제강 전체 매출의 25%를 차지하는 핵심 사업부다. 최근에는 글로벌 알루미늄업체인 노벨리스와 함께 울산 지역에 알루미늄 생산법인을 합작 설립하기로 하는 등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이번 사태가 고베제강의 알루미늄 사업에 큰 타격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고베제강은 공개 사과를 한 뒤 가와사키 히로야 회장을 중심으로 품질 문제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외부 법률회사에 이번 사태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 또 부적합 제품을 공급받은 업체마다 연락해 상황을 설명하는 등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이미 신뢰를 잃어버렸다는 분석이다.

알루미늄 활용처

◆ 도요타, 스바루,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업계 전반에 영향

알루미늄은 소재가 가벼우면서 가공하기 쉽고, 전기와 열이 잘 통하기 때문에 주로 항공기 제작에 이용된다. 최근에는 차량경량화 추세에 따라 자동차에 활용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특히 자동차용 알루미늄은 부가가치가 높기 때문에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외에도 건설용, 전선용, 음료수 캔 등 포장재용 등으로 사용된다.

고베제강은 품질 부적합 제품을 공급한 고객사에 대한 구체적인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날 니혼게이자이신문,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고베제강으로부터 부적합 제품을 공급받은 업체는 도요타, 미쓰비시중공업, JR도카이, 스바루, 마쓰다 등으로 알려졌다.

도요타는 일부 차종의 차량 후드에 부적합 알루미늄을 사용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현재 다른 차종과 다른 부품에도 사용된 적이 있는지 조사 중이며, 향후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도요타는 품질을 철저히 관리하는 것으로 유명한 만큼 이번 사태를 심각한 문제로 보고 있다.

미쓰비시중공업이 개발 중인 일본 첫 제트여객기 ‘MRJ’에도 고베제강의 알루미늄이 사용됐다. 일본 철도업체 JR도카이도 부적합 알루미늄이 신칸센 차량에 사용된 것으로 확인했지만, 당장 안전상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고 향후 부품을 교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외에도 스바루, 마쓰다 등이 생산하고 있는 비행기, 자동차에도 고베제강 제품이 적용됐다.

지난 8일 일본 도쿄에서 고베제강 관계자들이 일부 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성능 자료를 조작한 것에 대해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노벨리스, UACJ 등 경쟁업체 반사이익 가능성…리콜 여부는 지켜봐야

고베제강이 품질 위조를 인정하면서 고객사들로부터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노벨리스, UACJ 등 경쟁업체가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고베제강은 자동차용 알루미늄 시장에 대한 비중을 확대하겠다고 나선 상황이어서 이번 사태의 충격이 더 크다는 분석이다. 다만 아시아 지역 내 알루미늄 시장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관련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고베제강은 일본 알루미늄 시장에서 일본 알루미늄 업체인 UACJ(34%)에 이어 점유율 18%로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UACJ가 반사이익을 얻게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사태가 한국이나 중국 시장까지 영향을 미칠지는 당분간 지켜봐야 한다. 국내에서는 노벨리스의 알루미늄 공장 규모가 가장 크다. 고베제강과 노벨리스는 울산 합작법인 설립을 일정대로 진행할 계획이다.

고베제강의 부적합 제품에 큰 하자가 있을 경우 도요타 등 일본 내 자동차업체들이 리콜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지난달에는 일본 닛산자동차가 완성차 검사를 자격이 없는 직원에게 맡겨 온 것으로 드러나 116만대를 리콜한 바 있다. 이번 사태로 일본 자동차 업체의 추가 리콜이 발생하면 국내 자동차업계에 호재가 될 수 있다.

비철금속업계 관계자는 “알루미늄 등 소재 산업은 대표적인 B2B(기업 간 거래) 산업으로 자동차업체, 항공기업체 등 고객사와 디자인 단계부터 함께 논의하며 제품을 같이 만들기 때문에 파트너사와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고베제강은 이번 사건으로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부적합 제품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