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컴퓨터업체 IBM은 24년 만에 원격·재택근무를 폐지했다. IBM은 최근 자사 원격근무자들에게 '한 달 안에 거주지 지사 사무실로 복귀하든지 아니면 회사를 떠나라'고 통보했다. IBM은 원격근무의 원조 격이다. 1993년 사무실 외 공간 근무제를 처음 도입했고, 전체 직원 38만명 가운데 40% 정도가 원격근무 형태로 일하고 있다. 그 결과 IBM은 미국 내 사무실 임대 비용만 연간 1억달러(약 1140억원)를 절약했다. 아울러 IBM은 '통근자 고통 지수'라는 지표를 만드는 등 원격근무의 장점을 이론화한 주역으로 꼽힌다.

최근 IBM은 24년 만에 원격·재택근무를 폐지했다.

원격근무(telework)는 '멀리서(tele)' '일한다 (work)'는 의미다. 1973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미래연구센터의 잭 닐스 연구원이 만든 신조어다. 이후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새로운 노동 방식으로 소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미국에서 원격근무제가 본격 도입된 건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인한 2차 석유파동 여파가 컸던 1980년대다. 기름값이 폭등하고 임차료도 뛰면서 기업 유지 비용을 절감하는 방법으로 대두됐다. 이후 PC 보급과 인터넷의 발전으로 원격근무는 확산됐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미국 전체 기업 노동자의 25%는 직무시간 대부분을 원격근무로 보내고 있다. 덕분에 기업은 비용을 절감했다. 보험사 애트나는 총고용 인원 4만8000명 가운데 43%가 원격근무를 하는 덕분에 사무실 임대 비용을 15~25% 절감했다. 복사기업체 제록스의 미국 내 근로자 7만명 중 11%(약 8000명)는 풀타임 원격근무자다. 줄어든 연간 차량 주행거리 1억5000㎞로 인해 절감된 연료가 11만배럴, 무려 1000만달러(약 114억원)어치다.

IBM의 재택근무 폐지 결정은 기업 실적 부진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를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IBM은 올 1분기 매출이 2.3% 감소하는 등 최근 20분기 연속 실적 부진에 시달려왔다.

앞서 검색서비스 업체 야후가 2013년 재택근무를 폐지했고, 최근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애트나도 재택근무자들을 사무실로 불러모으기 시작했다. 레딧과 베스트바이 등 인터넷 기반 업체들도 재택근무를 줄이는 추세다. 통근 시대로의 회귀다. IBM 최고마케팅책임자(CMO) 미셸 펠루소는 "사무실 근무는 혁신과 창의적 근무환경을 위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스마트 워크(사무실이 아니더라도 언제 어디서나 업무를 효율적으로 볼 수 있는 유연한 근무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요즘 사무실 업무가 늘어나는 사실이 시대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실리콘밸리의 혁신 기업들은 재택근무를 지양해왔다.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은 원격근무 대신 사무실 근무를 강화하는 전략을 택해 성과로 연결시키고 있다. 이들 기업은 다양한 메뉴를 갖춘 식당, 무료 간식, 휴게시설, 자녀를 위한 유치원 등 직원 복지를 위해 힘쓰고 있다. 사내에 세탁서비스와 술집, 자전거수리센터까지 제공하며, 반려동물을 회사에 데려오는 것도 허용된다. 집보다 더 머물고 싶은 사무실을 만드는 것이 이들 실리콘밸리 기업의 목표다. 구글의 최고재무책임자(CEO) 패트릭 피셰트는 "가능한 한 직원이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을  늘리도록 유도한다"고 말했다.

사무실 근무를 선호하는 경영진은 회사에서 직원끼리 대면하는 빈도가 높을수록 협업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다. 다양한 부서의 직원이 불규칙적으로 마주쳐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모습은 실리콘밸리의 핵심을 상징한다. 이 때문에 사옥을 지을 때는 우연한 만남이 늘어나도록 공간을 만들고 배치한다. 예를 들어, 화장실이나 정수기 등 필수 이용시설을 중앙에 배치해, 직원들 간의 만남이 가능한 한 많아지도록 하고 있다. 과거 스티브 잡스는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의 사옥을 신축할 때 건물 중앙에 대형 남녀화장실을 하나씩만 만들어 소통과 만남을 극대화하고자 했다. 존 설리번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인사전략과 교수는 "1980~90년대에는 원격근무가 탁월한 전략이었지만 현재는 아니다"며 "혁신엔 동료와 함께 일하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스티브 잡스는 직원들 간의 만남이 가능한 한 많아지도록 사무 공간을 배치했다.

원격근무의 가장 큰 문제는 통근시간 절약 등 명분에 비해 업무 효율 증대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 회계 감사원은 지난해 "연방정부 기관 다수가 원격근무를 채택하고 있지만 이로 인한 이점을 뒷받침할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다"는 보고서를 냈다. 조사 결과 연방정부 근무 인력의 절반가량인 100만명이 전일 혹은 부분적으로 원격근무제의 혜택을 입고 있고 4분의 1 이상이 실제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재택근무 환경 조성 비용 등을 감안할 때 '비용 절감 대비 이익'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정량화된 정보가 불충분했다.

고용주뿐 아니라 근로자도 원격근무에 대한 불만을 호소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일과 쉼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올해 초 국제노동기구(ILO)가 유엔 산하 연구기관인 유로파운드(Eurofound)와 공동으로 작성한 보고서 내용도 이 점을 지적한다. ILO는 기술 발전으로 활성화하고 있는 원격근무의 영향에 대해 유럽연합(EU) 10개 회원국 외에 아르헨티나·브라질·인도·일본·미국 등 총 15개국에서 수집한 자료를 분석했다. 그 결과 사무실 밖 근무를 통해 생산성이 향상된 반면 업무 시간은 물론 업무 강도가 늘고 업무와 사생활의 혼재가 일어날 위험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벨기에는 재택근무 근로자의 주당 근무시간이 44.5시간으로 사무실 근로자(42.6시간)보다 1.9시간 많았다. 주말 근무도 늘어나서 네덜란드 재택근무자의 절반(50%)이 일요일에 일을 했는데 이는 일반 근로자의 38%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집중근무에 따른 과로와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비율도 40%로 사무실 근무(20%)에 비해 두 배로 많았다.

연구는 또 원격근무자가 종종 소외감을 느끼고 동료나 업무 환경에서 단절감을 느낀다고 보고했다. 수면 장애를 호소하는 경우도 많았고 자신의 업무 성과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불안감도 보였다. 응답자들은 사무실에서 함께 일할 때 창의성과 속도 증가, 동료로부터 배우는 경험 등의 장점이 있다고 답했다. 보고서는 "전일 원격근무보다는 2~3일 정도 사무실 출근을 병행하는 것이 근로자의 고립 및 단절감을 없애준다"고 평가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IBM의 이번 결정이 전산업계의 원격근무 폐지로 번질 것으로 보지 않는다.  IBM의 경우 장기화된 경영난을 해소하기 위해 인력 감소 등을 감안한 전략의 일환일 뿐, 재택근무의 종말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것. 피터 카펠리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미래의 근무 형태는 보다 민첩(agile)해질 것"이라며 "유연근무제(flexitime)와 비슷하지만 시간·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직원들이 모이는 회사의 사무실은 가상 공간에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개인용 블로그 제작 서비스 워드프레스(WordPress)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오토매틱(Automattic)은 최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본사 사무실을 없애기로 해, 전 세계 50개국의 직원 550명이 모두 원격근무를 실시하게 됐다. 미국의 개발자 맷 멀런웨그가 2005년 창업한 이 회사는 현재 기업가치가 12억달러(1조3680억원)에 달한다.

본사 사무실을 없앤 멀런웨그 오토매틱 창업자.

창업 이후 다양한 제도를 통해 직원 복지에 투자해온 멀런웨그는 적극적으로 원격근무를 도입했다. 원격근무는 개발자와 디자이너, 인사팀 직원 등 직무에 상관없이 세계 곳곳의 자신의 거주지에서 탄력적으로 근무를 하는 것이다. 근무 시간 역시 최소로 일해야 하는 시간 없이 자신이 정한 시간에 일하고 결과를 보여주면 된다. 어떤 사람은 9시부터 6시까지 일하고, 어떤 사람은 새벽에 일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오전에 잠시 일하고 중간에 쉬고 다시 오후에 일하는 사람도 있다. 최소로 일해야 하는 시간은 따로 없고, 휴가에 대한 규정도 없다. 오토매틱은 직원이 일하는 사무실 임대·유지 비용이 들지 않는 대신 직원에게 업무환경 구축 및 미팅 비용을 따로 지급한다. 카페에서 일하는 직원에게는 카페 이용료를 주고, 다른 지역의 동료를 만나러 갈 때에는 교통비 등을 제공하는 식이다.

물론 일과 사생활의 경계가 사라진다는 단점도 있다. 각 지역마다 시차가 다르다 보니 온라인 회의가 24시간 동안 이뤄지는 점 등이다. 하지만 업무 효율성이 높아지고, 인재 채용 범위가 넓어지는 등 원격근무로 인한 장점이 더 많다. 창업자 멀런웨그가 원격근무를 도입한 가장 큰 이유 역시 인재 채용이다. 원격근무제를 통해 전 세계에서 오토매틱에 맞는 인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멀런웨그는 "전 세계 스마트한 인재들이 점점 원격근무 기업으로 몰리고 있다"면서 "오토매틱도 원격근무를 원하는 전 세계 인재 채용을 통해 워드프레스 서비스를 향상시킨 것을 비롯해 회사가 성장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IBM과 대조적으로 자동차 회사 도요타, 전자업체 후지쓰 등 일본 기업은 지난해부터 파격적인 재택근무를 도입하고 있다. 도요타는 지난해 1주일에 2시간만 회사에 나오고 나머지는 집에서 일하는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대상은 사무직과 연구·개발(R&D) 담당 기술직 등 2만5000명으로, 전체 직원 7만2000명 중 3분의 1에 해당한다. 지난 4월 후지쓰는 3만5000명 전직원이 필요할 경우 제한 없이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일본지사는 1주일에 최대 사흘까지 재택근무를 허가해왔는데, 이를 5일로 확대 실시했다. 일본 식품업체 가루비(Calbee)는 기존에 1주일에 이틀까지 가능했던 재택근무를 올해 4월부터 무제한으로 허용했다.

후지쓰는 필요할 경우 제한없이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일본에선 일명 '텔레워크'라 불리는 재택근무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일하는 방식 개혁'으로 내놓은 최대 과제 중 하나다. 탄력근무, 재택근무를 확산해 고령화로 인한 노동인력 부족 현상을 막겠다는 의도다. 지난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 이후 재택근무는 천재지변과 같은 만일의 사태에 효율적으로 대처 가능한 업무 방식으로 고려되기도 했다.

아베노믹스 계획대로라면 오는 2020년까지 일본 노동인구의 10%가 최소 주 1회 재택근무를 하게 된다. 현 수준보다 6%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일본 정부가 재택근무 추진에 적극적인 이유는 일본 기업들의 '노동력 부족'과 '낮은 업무 생산성' 때문이다. 일본 사단법인 텔레워크협회에 따르면 일본의 시간당 노동 생산성은 지난 2014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4개국 가운데 21위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를 비롯한 주요 선진국 7개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일본 기업들의 구인난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맥도널드를 비롯한 일본 외식업계에서는 24시간 영업을 축소하고 있다. 심야 고객은 감소하는 반면 일할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지난 1월 유효구인배율은 1.43배로 집계됐다. 구직자 100명당 143개의 일자리가 있다는 뜻이다. 일자리는 넘쳐나는데 일할 사람은 없다는 얘기다. 일본 정부는 기업들이 더 짧은 시간에 더 적은 인원으로 효율적으로 일하면서도 생산성을 끌어올릴 방법을 모색했고, 그 해답은 재택근무였다.

재택근무를 하면 직원들은 통근에 걸리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 부담이 줄어든다. 특히 업무 시작과 종료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도와 연계하면 육아나 간병 등 시간 제약 때문에 회사를 다니기 어려운 사원들도 계속 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