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경제학상은 행동경제학의 창시자 가운데 한 명인 리처드 탈러 미국 시카고대 교수에게 돌아갔다. 지난 2009년 방한한 탈러 교수가 <위클리 비즈>와 인터뷰 하고 있는 모습.

2017년 노벨경제학상은 리처드 탈러 미국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9일 오전 11시 45분(현지시각)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리처드 탈러 시카고대 교수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노벨위원회는 선정 이유로 “심리학적으로 현실적인 가정들을 경제적 의사결정 분석에 결합했다”고 설명했다. 페테르 예르덴포르스(Peter Gärdenfors) 스웨덴 룬드대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탈러 교수는 경제학을 좀 더 인간에 가깝게 만들었다(He has made economics more human.)”고 말했다. 노벨위원회의 발표가 끝난 뒤 이어진 공동 영상 인터뷰에서 탈러 교수는 자신의 연구에 대해 “경제적 행위자가 인간이고, 이를 경제 모형 구성에 고려해야 한다는 인식”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행동경제학은 심리학에서의 연구 성과와 분석 기법을 이용해 경제적 의사결정 과정이 완벽하게 이해득실을 고려해 이뤄지지 않고, 심리적인 특성의 영향받고 있음을 보였다.

탈러 교수는 행동경제학 중에서도 특히 행동금융(behavioral finance)의 창시자로 손꼽힌다. 1945년 9월 12일 미국 뉴저지 태생으로, 로체스터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마쳤다. 코넬대와 MIT 경영대학원을 거쳐 현재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또한 국가경제연구소(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연구원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또 다른 저명한 행동경제학자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와 더불어 행동경제학 분야의 주요 프로젝트를 공동 진행해왔다. 그는 “신고전파 경제학이 언제나 주어진 정보를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이콘(econ·경제적 인간)의 세상을 상정한다지만 행동경제학이 보여주는 것은 제한된 합리성의 상황에서,제한된 시간 하에서 선택해야 하는 보통의 인간”이라고 설명한다.

노벨 위원회는 탈러 교수의 핵심 공헌을 ▲제한적 합리성(limited rationality) ▲사회적 선호(social preference) ▲자기절제 결여(self-control)의 세 가지로 정리했다.

먼저 제한적 합리성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고려하게 되는 자신과 상대방의 이해득실과 이를 감안한 미래 행동 전략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체적인 상황을 모두 고려하기보다 각각의 상황별로 각각 이해득실을 고려한다는 ‘심리적 회계(mental accounting) 이론’이 탈러 교수의 대표적인 공헌이다. 사회적 선호는 정의로움, 공평함 같은 집단적 가치를 함께 고려하는 성향이다. 자기절제 결여는 단기적 의사결정과 장기적 의사결정이 각각 다르게 이뤄지기 때문에 결국 장기적으로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취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탈러 교수는 2009년 한국에 소개돼 베스트셀러가 된 저작 ‘넛지’로 잘 알려져있다.

탈러 교수는 지난 1987~1990년 학술지 '경제학 전망(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에 '이상 현상들(anomalies)'이라는 제목으로 기존의 경제이론으로 이해하기 힘든 현상들을 연재하는 특집을 게재, 행동경제학을 체계화하고 널리 알리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이 논문들을 모아 '승자의 저주(The Winner's Curse)'라는 책으로도 펴냈다. 또한 저축, 투자에서부터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논문을 썼다. 단행본으로는 ‘준합리적 경제학(Quasi Rational Economics·1994년), ‘넛지(Nudge·2009년)’,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Misbehaving: The Making of Behavioral Economics·2015년)’ 등이 있다.

국내에는 넛지 등을 비롯한 저작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널리 알려져 있는 경제학자이기도 하다. 넛지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는 뜻인데,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을 의미한다. 인간의 심리적인 특성을 이해하고, 여기에 맞춰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제도를 설계하면 적은 비용으로 특정한 행동을 유도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가령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에서 소변기 한가운데에 파리 한 마리를 그려 넣어 주변으로 새는 소변을 막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파리 한 마리를 ‘조준’해서 발사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행동경제학이 활발하게 적용되는 분야 가운데 하나는 금융이다. 1990년대 후반 미국은 근로자 퇴직연금(401k)에서 의도적으로 탈퇴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머물게 해서 참여율을 대폭 끌어올렸다. 오바마 행정부의 저축증대 프로그램은 근로자 급여 인상에 맞춰 자동으로 저축률이 올라가도록 한 상품을 내놓는 방식으로 연금저축 가입률을 제고했다. 영국은 2014년 행동경제학자들의 권고를 받아들여 연금 상품 핵심 설명서를 간략화하고 표준화 해 가입률을 높였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삶을 편하게 했지만 다른 측면에선 매우 복잡하게도 만들었다. 우리는 천재는 아니기에 소위 '선택 설계'(choice architect)가 필요하다”며 탈러 교수는 행동경제학의 활용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2015년 탈러 교수(왼쪽)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금융계를 다룬 영화 ‘빅쇼트’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2009년과 2016년 와 인터뷰를 가졌었다. 인터뷰에서 탈러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에 대해 극도로 복잡해진 경제 구조와 고도로 전문화된 금융 산업을 꼽았다. “금융위기의 주범 가운데 하나인 모기지(주택담보부증권)의 경우 원래 30년 만기 고정금리로 간단한 대출상품 이었다”며 “상품 구조 및 금융회사 간 유통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대출의 증권화 기법 등이 발달하면서 금융회사의 대처능력이 떨어지게 됐다”고 덧붙였다.

또 인간이 비합리적 선택을 하는 이유에 대해 “심리적인 만족감을 추구하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주식 투자를 하거나, 매물로 나온 기업을 인수·합병(M&A)할 때처럼 큰돈을 투자해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야 할 때 오히려 잘못된 선택이 많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투자 대비 큰 만족감을 얻는 것에 집착한 나머지, 합리적인 판단을 위해 챙겨야 할 중요한 요소들을 놓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탈러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미국 금융계 인물들을 다룬 영화 ‘빅쇼트’에서 해설을 맡고 잠깐 출연하기도 했다. 노벨상 발표 직후 공동 영상 인터뷰에서 “한 영역에서 성공을 한 사람은 다른 곳에서도 성공할 것으로 믿고 곧장 나아갑니다”라는 영화 속 나래이션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도 적용되는 지 질문을 받았다. 이에 대해 그는 “영화 출연 경력이 노벨상 수상 공식 인터뷰에 포함되지 못해서 유감”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그러한 성향을 갖고 있는 지는 영화를 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재치있게 답했다.

그는 활달한 성격으로 인터뷰 등에서 위트있는 발언을 즐기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이날 공동 인터뷰에서 그는 소감을 묻는 질문에 대해 “기뻤다. 이제 더이상 동료 교수 파마에게 골프치며 '파마 교수님'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탈러가 언급한 유진 파마 교수는 지난 2013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테니스, 골프 등 운동을 즐긴다. 2009년 방한 당시 그는 한국 골프장을 찾기도 했다. 당시 그는 “한국 골프장 수준에 굉장히 만족했다”며 “골프장 캐디조차 내 책(넛지)를 읽었다 해서 놀랐다”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