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인근에 위치한 NH농협은행 본사는 매일 오후 7시에 건물 소등을 실시한다. 퇴근하지 않고 남아서 근무를 하는 직원들이 없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은행 관계자는 “매일 같이 불을 끄고 가정의 날인 수요일에는 6시30분에 소등을 한다”고 했다. 이 은행처럼 주요 은행들의 업무 문화도 일과 가정의 양립이 점점 강조되는 문화로 바뀌고 있다.

지난 8월 1일 출퇴근 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출퇴근 플렉스 타임’제도를 도입한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의 임직원들이 출근하는 모습.

은행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은행연합회도 이런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서울 중구 명동 한 복판에 위치한 은행연합회는 주요 은행들이 돈을 대는 협회다. 은행연합회는 매주 수요일 가정의 날이면 전체 사무실에 볼륨을 높인 음악을 튼다.

매주 직원들이 돌아가며 선곡을 하는데 한 직원이 다음 선곡자를 지명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음악이 가정의 날 퇴근시간을 알린다. 금융권 관계자는 “가정의 날 만큼은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회사의 조치”라며 “직원들 사이에 상당히 정착되어 가고 있다”고 했다.

우리은행도 매일 7시에 PC를 끈다. 이 은행이 채택한 PC오프제는 직원들이 야근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도입됐다. 가정의 날인 수요일에는 이보다 더 이른 오후 6시30분 전에 퇴근을 해야 한다.

외국계인 한국씨티은행은 이보다 이른, 오후 5시30분 퇴근을 장려한다. 씨티은행은 가정의 날인 수요일과 자기계발의 날인 금요일이 되면 오후 5시30분에 퇴근 안내방송을 해 직원들을 돌려보낸다.

은행 관계자는 “금요일 같은 경우 어학이나 운동, 요리 등 취미나 자기계발을 위해 시간을 제공해주기 위해, 가정의 날인 수요일은 가족들과 함께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해 조기 퇴근을 권하고 있다”며 “이제 수요일, 금요일에는 일찍 퇴근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정착돼 있다”고 설명했다.

신한은행을 포함한 신한금융그룹 전 계열회사들은 지난 8월1일부터 자율출퇴근제, 재택근무 등 일과 생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업무방식을 도입해 2만6000여명의 직원들에게 적용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자율출퇴근제를 도입한 신한은행의 경우 오전 9시 30분~11시 30분 사이에서 30분 단위로 출근 시간을 정해 출근하고 하루 8시간을 근무하면 된다.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등교해 시켜야하는 부모들은 조금 늦게 출근을 해도 돼 호응이 높다.

금융권 관계자는 “예전에는 지점장이나 부서장이 묻지도 않고 당일 회식이나 야근을 강요하는 게 당연했었지만, 이제는 가정과 사생활을 중시하는 젊은 직원들에게 그런 지시를 하지는 못하는 분위기가 됐다”며 “이런 문화 때문에 가정의 날이나 유연근무는 더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