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공정률이 낮은 석탄화력발전소 4기를 액화천연가스(LNG) 등 친환경 연료 발전소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의 대책을 발표하자 관련 업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과거에 정부 허가를 받아 석탄화력발전소를 지으려고 이미 약 1조원을 투입했다. 투자금을 고스란히 날릴 위기에 놓였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등 12개 부처는 2022년까지 미세먼지 국내 배출량을 30% 이상 감축한다는 내용의 미세먼지 대책을 26일 발표했다. 정부는 미세먼지 국내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발전·산업·수송·생활 등 4개 부문에서 저감 대책을 실시하기로 했다.

강원도 삼척시 사회단체와 주민 1500여명이 지난 19일 서울 광화문에서 삼척화력발전소를 예정대로 짓게 해달라고 시위하고 있다.

◆ 1조원 투입했는데…정부 “LNG발전소로 바꾸라”

발전부문 미세먼지 저감대책의 핵심 내용은 공정률이 낮은 석탄화력발전소 9기 중 삼척화력 1·2호기, 당진에코파워 1·2호기 등 4기를 LNG 발전소 등으로 전환하고 30년 이상된 노후 석탄발전소 7기를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에 모두 폐지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공사 초기 단계인 석탄화력발전소를 LNG발전소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 업계의 의사를 타진해오다가 이번 대책에서 당진·삼척발전소 4기를 ‘전환 대상’으로 꼽았다.

포스코에너지의 100% 자회사인 포스파워가 삼척화력을 지을 계획이며, 당진에코파워의 경우 SK가스(018670), 한국동서발전, 한국산업은행 등이 지분을 갖고 있다. 포스코에너지는 각 1050㎿ 규모인 삼척화력 1·2호기(총 2100㎿)를 짓기 위해 설계 등 비용으로 약 5609억원을 투입했다. 설계 등을 포함한 종합 공정률은 현재 13%다. 580㎿ 규모 발전소 2기(총 1160㎿)가 들어설 예정인 당진에코파워에는 지금까지 4132억원이 들어갔다. 종합 공정률은 10% 남짓이다.

정부는 삼척, 당진 발전소를 LNG 발전소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면서도 매몰비용은 보상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산업부 관계자는 “업체가 주장하는 매몰비용에는 실제 투입비용과 기대 수익이 포함돼 있다”며 “(보상은 어렵지만) 업체 측 얘기는 충분히 들었고 LNG발전소로 전환하면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지원할 방침”이라고 했다.

정부는 공정률, 지역주민 반대 등을 고려해 ‘전환 대상’ 4기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전체 9기 중에서 4기만 착공하지 않아 LNG발전소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포스코에너지는 지난 5월 출범한 새 정부가 ‘탈원전, 탈석탄’을 공약으로 내걸자 산업부가 법적 근거 없이 시간을 끌고 있다고 주장했다. 원래 올해 6월말까지 인허가를 내줘야 했는데, 정부가 법적 필수 요건이 아닌 환경영향평가를 이유로 계속 인허가를 미루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부는 착공 인허가 기한을 올해 12월로 재연장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환경평가에서 미비한 점이 있어서 기한을 연장한 것이지, LNG 발전소로 전환하기 위해 (일부러) 늦추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충남 보령에 있는 석탄화력발전소.

◆ 외딴곳에 LNG발전소 지으라는 정부…업계 “비상식적 발상”

업계는 당진·삼척 석탄발전소를 LNG발전소로 전환하라는 정부 방침은 경제적으로도 타당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석탄발전소는 석탄 수입 및 운반의 편리성, 환경 규제 등 때문에 바닷가에 짓는 게 합리적이고 발전 원가가 상대적으로 비싸고 친환경적인 LNG발전소는 수도권 근처에 세우는 게 합리적인데, 정부는 도심에서 먼 바닷가 근처에 LNG발전소를 지으라고 권장한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은 전력 예비율이 높아 LNG발전소 가동률이 높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는 전력을 싸게 공급하기 위해 발전 단가가 낮은 원자력, 석탄발전소를 우선 가동하고 전력 수요가 많아지면 발전 단가가 높은 LNG발전소 등을 가동한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국의 LNG 발전소 가동률은 평균 35.9% 수준에 불과하다.

포스코에너지는 현재 인천에 3400㎿ 규모의 LNG발전소를 갖고 있다. 민간 발전소로는 최대 규모다. 포스코에너지 입장에서는 기존 발전소의 가동률도 낮은 상황에서 막대한 자금을 들여 삼척에 또 LNG발전소를 지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발전 업계는 착공 예정인 석탄발전소에는 첨단 시설이 설치돼 미세먼지 배출량도 미미하다고 주장했다. 민간발전협회 등에 따르면 신규 석탄발전소의 황산화물(SOx) 배출량은 1㎾h당 0.074g으로 30년 이상 된 석탄발전소(0.456)의 16% 수준이고, 질소산화물(NOx) 배출량은 1㎾h당 0.059g으로 노후 발전소의 약 5.8%다.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는 현재 국내에서 가장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 인천 영흥화력발전소보다 더 강화된 기준이 적용돼 먼지 배출량도 더 적다. 영흥은 ㎥당 5㎎인데, 신규 발전소는 그 이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도심에서 먼 바닷가에 LNG발전소를 짓는 게 불합리하다는 것은 업계의 상식이고 신규 발전소는 미세먼지 배출량도 아주 적다”며 “정부도 이런 내용을 모르지 않을 텐데, 아무리 대통령 코드를 맞춘다고 해도 이번 조치는 정말 너무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