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진 대구광역시장
"어릴적 박정희 자서전, 삼국지 인생의 동력
대구 첨단 산업도시로 키워 청년층 끌어들일 것"

권영진 대구광역시장은 “대구의 경제·산업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들을 하고 있다”며 “변화와 혁신의 씨를 뿌렸고, 어느 정도 싹을 틔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영진 시장은 역대 민선 대구시장 중 첫 비(非)경북고 출신이다. 경북고는 대구지역의 명문고로 장관, 국회의원 등을 다수 배출했다.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민선으로 바뀐 이후 대구시장을 지낸 문희갑, 조해녕, 김범일 전 시장은 모두 경북고를 나왔다. 33대에 걸친 관선 시장들로 범위를 넓혀도 비경북고 출신은 많지 않다.

◆ "기업 유치 확대해 지역 총생산 높일 것"
더욱이 권 시장이 대구에서 생활한 건 청구고를 다닌 고교 3년이 전부다. 권 시장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대학교를 경상북도 안동과 서울에서 나왔다. 연고주의가 강한 대구지역의 정서를 감안하면 권 시장은 대구에서만큼은 완벽한 아웃사이더였다. 게다가 권 시장이 비관료 출신이라는 점까지 생각하면 3년 전 지방선거에서 권 시장이 당선된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권 시장은 역대 대구시장 중 유일한 비관료 출신이다.

하지만 취임 3년이 지난 지금은 권 시장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 대구의 여론주도층이나 경북고 출신을 중심으로 한 기존 지도층에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역대 어느 시장보다 역동적이고 투명하게 시정을 수행하고 있다”거나 “지금 다시 시장을 바꾸면 대구시민에게 오히려 손해가 될 것”이라는 평가들이다.

실제로 권 시장이 시정을 맡은 이후 대구에서는 변화의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다. 특히나 다른 지역에 비해 낙후됐다고 평가받는 대구의 경제와 산업에서 변화의 바람이 확실히 불고 있다.
기존의 섬유·기계산업만으로는 청년들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불가능했다. 권 시장은 일자리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청년들의 발걸음을 붙잡지 않고서는 대구의 미래도 없다고 여겼다.

권 시장이 대안으로 주목한 건 로봇을 비롯해 사물형인터넷(IoT)과 미래형 자동차, 에너지, 의료, 물산업이다. 이들 분야는 성장 가능성이 크고 무엇보다 대구의 주력 산업인 섬유, 기계 분야와 관련성이 컸다. 권 시장은 “기존 대구의 주력산업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경쟁력의 한계에 직면하고 있었다”며 “성장 가능성이 큰 첨단산업 분야에서 강소기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 시장의 5대 첨단산업 육성 전략은 대구국가산업단지, 첨단의료복합단지, 수성의료지구 등 신성장 동력 산업의 전초 기지를 바탕으로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물산업클러스터, 에너지 자족도시, 사물인터넷 테스트베드 구축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한 친환경 도시로의 전환도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고 있다.

9월 20일 오후 대구시 중구 공평로에 있는 대구시청 시장실에서 권 시장을 만나 그간의 성과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었다. 인터뷰를 마친 권 시장은 중국 이싱(宜興)시에서 온 물산업 관계자들을 만나러 바쁘게 이동했다.

5대 첨단산업 육성의 성과가 궁금하다.
"대구의 경제·산업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들을 하고 있다. 산업구조를 혁신하는 것이다. 변화와 혁신의 씨는 뿌렸고, 어느 정도 싹을 틔웠다고 생각한다. 대구 안에서보다 밖에서 이런 변화에 더 관심을 보인다. 예컨대 미래형자동차 육성 사업이 진행되면서 전기차 사업을 하려는 기업들이 대구에 먼저 찾아온다. 디아이씨(DIC), 대창모터스, 센트랄모텍 같이 다른 지역에 있던 기업들이 속속 대구에 자리잡고 있다. 로봇산업에서도 국내 산업용로봇 1위 업체인 현대로보틱스가 대구로 본사를 옮기면서 협력업체들까지 따라오고 있다. 물산업 분야에서도 롯데케미칼을 비롯해 전국에서 알아주는 기업들이 대구 물산업클러스터에 입주하기로 했다."

아직까지는 성과들이 눈에 띄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일들은 3~4년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단기 성과에 집착하기보다 10년 뒤를 내다보고 추진하는 일이다. 취임 이후 지금까지 153개 기업을 대구에 유치했는데 이들 기업의 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하는 시점이 2019년 말에서 2020년 정도다. 그때가 되면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이다. 그 이후에는 일자리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되고 전국에서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이 꼴찌라는 불명예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권 시장은 취임 초에 일자리 창출을 위한 ‘3355 공약’을 내세웠다. 글로벌 대기업 3개, 중견기업 30개, 중소·강소기업 500개를 유치해 5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공약이었다. 지금까지 대구는 현대로보틱스, 롯데케미칼, 쿠팡, 보쉬와 경창의 합작회사들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고, 월드클래스 300 기업에 대구지역 기업 28개사가 포함되기도 했다. 권 시장은 “3355 공약을 아직 100퍼센트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기업 성장정책과 스타기업, 월드클래스 300 기업 육성 등을 통해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유치가 쉽지 않았을 텐데 비결은.
"시장이 직접 발로 뛰어야 한다. 지방도시 시장은 정말 고달픈 자리다. 지방도시 시장이 기업 유치하고 일자리 만들려면 서울시장의 10배를 뛰어다녀도 될까 말까하다. 현대로보틱스도 중국에 가려고 했지만 대구로 오게 했다. 현대로보틱스가 대구를 택한 중요한 이유는 노사문화다. 대구는 노사평화 도시를 만들기 위해 시장과 부시장이 일주일에 한 번씩 노조 지도자를 만나 대화를 나눈다. 노조 지도자들을 만나면 늘 이야기하는 부분이 지역 경제가 어려워지면 결국 손해보는 건 노동자라는 부분이다.

여기에 더해 값싸고 교통 여건이 좋은 산업용지와 시민들의 적극적인 지원도 큰 도움이 됐다. 대구의 첨단산업단지들은 도심 근처에 있어서 정주여건이 좋은 데다 용지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생각은.
"한국은 대기업이 움직이지 않으면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해외로 나가는 대기업들을 불러들이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과거에는 인건비 때문에 어려웠지만 이제는 공장 자동화, 스마트 팩토리 같은 기술 덕분에 한국에서도 공장을 돌릴 수 있다. 현대로보틱스 대구 공장만 해도 옛날 같으면 3000명이 해야 할 일을 250명이 하고 있다. 일자리 숫자는 줄어도 하나하나는 양질의 일자리다. 여기에 연관 기업과 산업이 발전하면서 생기는 일자리 효과도 있다.
미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든 제조업 기반을 만들려고 용지를 공짜로 주는 등 파격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 우리도 규제를 과감히 풀고 노사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대구국제공항 이용객이 많이 늘었다.
"하늘길을 여는 건 대구의 체질을 바꾸는 작업이다. 대구를 내륙의 닫힌 도시가 아니라 세계에 열려 있는 도시로 만들려면 하늘길을 더 열어야 한다. 취임 전에는 대구국제공항 국제선 노선이 3개뿐이었는데 이제는 14개로 늘었다. 공항 이용객이 급증하면서 수용한계에 곧 다다를 것이다. 대구통합공항 이전 문제를 원활하게 매듭지어서 미래 항공 수요에 적극 대응하겠다."

대구가 비수도권 최대 창업 기지가 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창업이 아니면 신기술을 개발하기 어렵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갈 신기술이나 소프트웨어, 콘텐츠의 70% 정도를 대기업이 아닌 벤처, 스타트업이 만들고 있다. 한국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뒤처진 이유가 이런 벤처기업이 나올 수 있는 창업 생태계를 제대로 조성하지 못해서다. 예컨대 이스라엘이나 실리콘밸리에서는 세번, 네번까지 창업에 실패해도 재도전이 가능하다. 한국에서는 한 번만 실패해도 실패자로 낙인찍히고 빚쟁이가 돼서 내몰린다. 대구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도전이 가능한 창업 생태계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창업 재기 기금을 30억원 규모로 조성해서 창업가들을 지원하고 있다. 또 대구에 있다고 해서 대구지역 스타트업만 지원하지 않는다.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입주 스타트업만 해도 60%가 외지에서 온 기업들이다. 창업에 성공할 생각이 있다면 누구든 대구로 오라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청년과 관련한 정책을 많이 내놓고 있다.
"대구가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가 됐다. 1990년대 섬유산업이 무너지면서 청년들이 일할 직장이 없어졌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대구가 청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답답한 도시가 됐다.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부지런히 청년들을 만나고 다닌다. 한 손에는 일자리, 한 손에는 청년 문화를 들고 다니는 셈이다. 지금 어렵고 고달프다고 삶의 터전을 버리는 건 답이 아니라고 설득한다. 대구에서 전국 최초로 청년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는 '대구청년위원회'를 만들고, '청년기본조례' '대구청년주간' 등을 제정한 것도 같은 이유다. 내년부터는 대구지역 청년들이 시야를 넓힐 수 있도록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와 실리콘밸리에 대구지역 대학생 30명을 선발해 보낼 생각이다."

인생에 영향을 준 책으로 박정희 대통령 전기와 '삼국지'를 꼽은 적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깡촌에서 자랐다. 읽을 책이 없었는데 교직에 있던 아버지가 가져다 준 책이 그 두 권이었다. 읽고 또 읽으면서 굉장히 깊은 인상을 받았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지만, 지금도 제가 생각하는 당당한 나라, 행복한 공동체의 꿈은 박 전 대통령의 영향을 받은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구시장 다음 꿈은 무엇인가.
"지방의 꿈은 지방 리더의 꿈과 함께 커나간다. 성공한 대구를 통해서 성공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하지만 그릇이 따라가지 않는데 욕심만 가지고 되는 건 없다. 개인적인 좌우명이 큰 꿈을 가지고 멀리 바라보되 현실은 낮게 살고 지금 있는 곳에 충실하자는 것이다. 초선 대구시장이 대권 행보하는 것도 대구 시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재선 시장이 되어서 대구 시민들이 더 큰일을 하라고 요청하고 국민들이 불러준다면 성공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꿈은 있다."

◆ PLUS POINT
"김부겸과 리턴매치하고 싶다… 소명으로 정치한다"
권영진 대구시장의 정치 인생은 오뚝이 그 자체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17대부터 19대 총선까지 세 차례에 걸쳐 서울 노원구을 선거구에서 맞붙었다. 17대에서는 낙선, 18대에서는 당선 그리고 19대에서 다시 낙선했다. 이후 열린 지방선거에 대구시장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당시 맞붙었던 상대는 현 행정안전부 장관인 김부겸 의원이었다.

2014년 대구시장 선거에서 맞붙었던 권영진 대구시장(왼쪽)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낙선과 당선을 반복하는 오뚝이 정치인생을 견딜 수 있었던 비결로 권 시장은 ‘소명의식’을 꼽았다. 그는 “대한민국을 밖으로는 당당하고 안으로는 행복한 공동체로 만드는 것이 내게 주어진 소명이라고 생각한다”며 “소명의식이 있으면 일시적인 어려움이나 좌절에 포기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권 시장은 한국 최초로 ‘대학원 학생회’를 만든 주역이기도 하다. 대학원 학생회는 1987년 9월 고려대에 처음 생겼다. 당시 대학원 학생회의 초대 회장이 권 시장이었다. 고려대 영문학과 80학번인 권 시장은 북한정치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런 배경은 정치권에 입문한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권 시장은 정치권의 대표적 쇄신모임인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미래연대)’ 출신이다. 미래연대는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 소장파 쇄신모임으로 권 시장 외에도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정병국 의원, 김부겸 장관[a] 등이 참여했다. 당리당략과 눈치보기 같은 기성정치권의 구태를 비판하며 주목을 받았지만, 2004년 17대 총선 이후 해체됐다. 미래연대 리더그룹은 정치권의 쇄신, 혁신을 대변해 왔지만,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그런 이미지가 많이 희석됐다. 그나마 권 시장 정도가 확장성이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권 시장은 “386 세대가 이제는 586 세대가 돼 버렸는데, 대한민국 정치는 바뀐 것이 없다”며 “세상이 유연하고 다원화된 만큼 정치권도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내세우는 정치를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권 시장은 대구의 발전을 위해서는 본인과 김부겸 장관이 리턴매치를 벌여야 한다고 했다. 2014년 대구시장 선거에서 권 시장은 55.95%의 득표율로 40.33%를 기록한 김 장관을 눌렀다. 하지만 그 사이 정권이 바뀐 만큼 리턴매치가 펼쳐지면 접전이 예상된다. 권 시장은 승부가 치열할수록 본인이나 당은 힘들겠지만, 대구에는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한다. 그는 “치열한 경쟁이 있어야 대구가 역동적인 도시가 되고 발전할 수 있다”며 “개인적으로 편안하게 재선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권영진 시장은 현장소통시장실에서 직접 대구시민들을 만나 의견을 듣는다. 대구 수성대학교의 현장소통시장실을 찾은 권 시장이 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PLUS POINT
업무추진비 20% 자진 삭감… 추석연휴에 당직도
지난 19일 대구시청에서 열린 대구시 확대간부회의에서 권영진 대구시장은 내년도 시장 업무추진비를 20% 삭감하라고 지시했다. 시장이 자신이 쓰는 업무추진비 삭감을 직접 지시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권 시장은 "내년도 예산 편성에서 정부의 복지재정 확대에 따른 지방비 부담이 과도해 불필요한 예산을 줄일 수밖에 없다"며 "예산 다이어트의 일환으로 나부터 업무추진비를 20% 삭감하겠다"고 말했다.

업무추진비 자진 삭감은 권 시장이 어떻게 대구 시정을 이끌고 있는지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다. 역대 대구시장들과 달리 정치적으로 아웃사이더일 수밖에 없었던 권 시장은 주류 사회에 억지로 들어가려고 하기보다는 평범한 대구 시민들과의 소통과 현장을 택했다.

시민들이 많이 찾는 시장, 기차역 등에 현장소통시장실을 만들어 시민들의 애로사항을 직접 듣고, 시민원탁회의를 개최해 지역 현안에 대한 의견을 시민들에게 직접 들었다. 취임 이후 지금까지 받은 시민정책제안만 4000여건에 달한다. 시민들의 정책 제안은 최대한 환영하지만, 뒤로 들어오는 청탁은 철저하게 선을 그었다. 시민들이 원하는 사업을 공모해 지원하는 ‘주민참여 예산제’에도 95억원(261개 사업)의 예산을 배정했다. 권 시장은 “시민들이 만나자고 하면 누구든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다”며 “하지만 억지를 쓰거나 하는 경우는 절대로 들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번 추석 연휴에도 권 시장은 직접 시정을 챙길 계획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권 시장이 추석 연휴 당직 근무를 하겠다고 자진해서 말했다”며 “현장에 답이 있다는 생각으로 늘 현장에서 시민들을 만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