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출범한 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일자리 창출 등을 강조하자 아웃소싱(outsourcing·위탁) 업계가 생존을 걱정하며 불안해하고 있다. 기업들은 경영 효율화를 위해 모든 직원을 직접 채용하지 않고 일부를 외주로 돌리는데, 정부가 직접 정규직으로 고용하라며 기업을 압박하고 나서자 외주업체와의 기존 계약을 해지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최근 제과·제빵업체 파리바게뜨 협력업체 소속으로 가맹점에서 근무하는 제빵기사 5378명을 파리바게뜨 본사가 직접 고용하라고 지시하자 프랜차이즈 등 도급 인력을 많이 쓰는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일부 대기업들은 SK브로드밴드처럼 협력업체와 도급 계약을 해지하고 이들 직원을 직접 채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 24일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 설치된 일자리 상황판 모니터를 보면서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 일자리 창출 압박에 불법파견 감독까지 강화

고용부가 파리바게뜨 가맹점 제빵기사의 고용 형태를 ‘불법 파견’으로 본 것은 파리바게뜨 본사가 협력업체 소속의 제빵기사 채용·평가·임금·승진 등에 관한 일괄적인 기준을 마련해 시행했고 업무를 전반적으로 지시, 감독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형식적으로는 파리바게뜨와 협정을 맺은 협력업체가 가맹점에 제빵기사를 공급해 파리바게뜨와 제빵기사는 아무 계약 관계가 없지만, 실질적으로 파리바게뜨가 업무를 지시, 감독했기 때문에 불법 파견으로 본 것이다.

업계에서는 고용부의 이번 결정에 대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는 하청업체와 도급 계약을 맺은 원청업체가 해당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결정하고 업무를 지휘·감독하면 불법 파견으로 보고 있는데, 실제로는 현장에서 원청업체의 ‘지휘·감독’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일부 대기업(원청업체)들은 현장에서 근무하는 하청업체 직원의 인사(人事)에도 관여한다. 대기업과 도급 계약을 맺고 현장에 인력을 공급하는 한 기업의 관계자는 “원칙대로 하면 원청업체는 현장 근로자를 지휘, 감독할 수 없지만 실제로는 원청업체 말 한마디에 현장 직원을 해고하거나 승진하는 게 가능하고 현장과 관계없는 본사 인사에도 관여한다”며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협력업체에 개입을 안 하는 원청업체는 단 한 곳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005930), 대한항공(003490), 신세계(004170), SK이노베이션(096770)등 대부분의 대기업은 공장 등 생산현장에서 도급 인력을 쓰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가 불법 파견 감독을 강화하면 외주 계약을 끊고 직접 고용에 나서는 사례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아웃소싱 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일자리 현황판을 만들고 불법 파견 기준까지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은 대기업에 ‘알아서 많이 뽑으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 아니겠느냐”며 “실제 일부 거래처들은 우리와 계약을 해지하고 직접 고용에 나서려는 움직임을 보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정부가 파리바게뜨 본사에 가맹점 소속 제빵기사 5378명을 직접 고용하라고 지시하면서 가맹점에 제빵기사를 공급하던 11개 협력업체 중 상당수는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다.

◆ 정부 압박, 일자리 창출에 도움 될까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대기업의 직접고용을 압박하고 나서자 아웃소싱 업계는 일감이 줄면서 생존을 걱정하는 모습이다. 당장 파리바게뜨 본사가 제빵기사를 직접 고용하면 20년 가까이 가맹점에 제빵기사를 공급했던 11개 협력업체 중 상당수는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다. 앞서 지난 5월 SK브로드밴드가 협력업체 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고 밝히자 협력업체 대표들은 “인력 유출로 회사 존립이 위태롭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첫 외부 행사로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강조한 인천공항공사는 아웃소싱 노동자들을 공사 직원으로 고용하기 위해 50여개 아웃소싱 업체들과 계약을 해지할 방침이다. 이들 아웃소싱 업체는 최대 2020년까지 인천공항공사에 인력을 공급하기로 돼 있는데, 공사는 잔여기간에 대한 이윤 30%만 보상하기로 해 아웃소싱 업체들은 매출액 및 영업이익이 크게 줄어들게 됐다.

정부가 강조하는 ‘대기업의 정규직 직접고용’이 일부 근로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일자리 창출에는 큰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외주 인력을 대기업이 직접 고용하는 것은 신규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근로자의 ‘명함’만 바꿔주는 것이고, 아웃소싱 업계에서 줄어드는 일자리까지 고려하면 전체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통계청이 6월에 발표한 ‘2015 경제총조사 확정결과’ 자료에 따르면 청소업이나 인력공급·고용알선업(직업소개소) 등이 포함된 ‘사업시설관리·사업지원업’의 업체 수는 2010년 3만6000개에서 2015년 5만2000개로 늘었다. 종사자 수는 이 기간에 78만명에서 107만명으로 증가했다. 사업시설관리·사업지원업은 대부분 아웃소싱 업체다.

한 아웃소싱 업체 관계자는 “대기업들의 외주 인력은 대부분이 ‘협력업체의 정규직’인데, 이들을 대기업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게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며 “아웃소싱 업체도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정부는 (아웃소싱을) 없어져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