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 혁명이 인류를 '신세계(新世界)'로 안내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클라우드가 모든 산업의 근간을 뒤흔들고 5세대 통신이 현실과 가상현실(VR)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인간 두뇌와 컴퓨터를 연결해 정보를 주고받는 기술도 진화를 거듭한다. 200억개가 넘는 사물의 연결, 급속한 클라우드화, 일상화된 인공지능, 가상화폐와 가상현실의 보편화 등이 특징인 고도의 정보화 사회가 성큼 다가온 것이다. 조선비즈 특별취재팀은 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4차 산업 혁명이 이끄는 고도의 정보화 사회, 이른바 '매트릭스(matrix)'로 불리는 세계를 집중적으로 취재했다. 진화의 방향을 알면 우리의 대응 방법이 보이기 때문이다. [편집자주]

※ 참고로 이번 기사는 ‘로그인 투 매트릭스’ 시리즈의 5번째 연재 기사이며 제2부 ‘극단의 사회 분리'편의 첫 번째 연재 기사다. 독자들이 이전 기사와 연결해 볼 수 있도록 숫자 ⑤를 붙였다.

⑤ 개인이 갈고닦은 재주도 무의미해지는 시대..."장인(匠人)이 몰락한다"

“이 사진들 중에는 실제 고양이가 아니라 인공지능(AI)이 임의적으로 만들어낸 이미지가 있습니다. 이 중에 어떤 이미지가 합성인지 알 수 있나요?"

이언 굿펠로우(Ian Goodfellow) 구글 리서치과학자가 5월 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에서 열린 ‘GTC 2017’에서 생성적 적대 신경망(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s)을 소개하고 있다.

2017년 5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엔비디아 GTC 2017'의 기조강연 무대. 이언 굿펠로우 구글 리서치과학자가 청중들 앞에 몇 장의 사진을 공개하며 질문을 던졌다. 각양각색의 고양이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었다.

청중들은 이언 굿펠로우가 화면에 띄운 사진들을 살펴보며 가장 인위적인 느낌의 사진을 골라내려고 애썼지만, 좀처럼 찾아낼 수 없었다. 사실 그 사진들 중 실제 고양이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었다. 이언 굿펠로우가 고안한 생성적 적대 신경망(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s) 알고리즘을 통해 AI가 무작위로 그려낸 ‘진짜 같은’ 고양이 사진들이었다. 청중들은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무너지고 있다”며 탄식을 쏟아냈다.

1850년대 산업 혁명으로 기계는 인간의 육체 노동을 대체했고 블루 칼라의 일자리는 사라졌다. 오늘날 AI는 인간의 두뇌 노동을 대체하며 화이트 칼라의 일자리를 위협한다. 그렇다면, AI 시대 창의적인 인간은 살아남지 않을까. 실제로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은 ‘창작(創作)’ 분야가 될 것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창의성 함양 교육 열풍이 불고 있다.

하지만, 조선비즈 4차 산업 혁명 특별취재팀의 취재 결과는 이런 인간의 기대와는 어긋난다. 개인이 갈고닦은 재주도 AI는 쉽게 모방할 뿐만 아니라 확대 발전시켜 나가는 방법까자 터득했다. AI의 진화 때문에 인간의 창작활동도 ‘재정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AI, 디자인·언어 등 창작 분야도 거침없이 파고들어

지난 2015년 시드니에서 열린 'TEDx Youth' 무대에서 스웨덴의 작가인 오스카 슈워츠는 "컴퓨터가 시(詩)를 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은 다시 컴퓨터는 무엇이며 시는 무엇인가, 그리고 창작이 무엇인지 보다 광범위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사람이 쓴 시, 그리고 컴퓨터가 생성한 시를 비교하며 청중에게 물었다. “어느 쪽이 사람이 쓴 시이고 어느 쪽이 컴퓨터의 결과물인가?”

3개의 예시 중 첫 번째는 비교적 쉬웠다. 사람이 쓴 시와 컴퓨터가 쓴 시가 확연하게 구분됐기 때문이다. 청중들은 압도적인 비율로 사람의 쓴 시를 정확하게 구분해 냈다. 하지만 다른 예시에서는 청중들의 의견은 반반으로 갈렸다. 고도의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통해 학습한 이후 AI가 시를 창작했기 때문이다. 오스카 슈워츠에 따르면 약 65%의 사람들이 진짜 시인이 쓴 시와 AI가 쓴 시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언 굿펠로우는 "특정한 문장 스타일이나 화법을 기계에 공부시키면 이를 학습해 사용자보다 훨씬 풍부하고 정교한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유명작가인 마크 트웨인(Mark Twain) 특유의 문장 전개 방식을 공부시킨 뒤에, 글쓰기 과정에서 자신의 글을 마크 트웨인 스타일로 변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인공지능(AI) 알고리즘 ‘RACTER’가 지은 시(Poem1)와 미국의 시인 프랭크 오하라가 지은 시(Poem2).

지난 4월 25일 게임업체 넥슨이 주최하는 국내 최대 게임 지식공유의 장(場)인 ‘2017년 넥슨개발자컨퍼런스(NDC)’가 경기도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막을 올렸다. 아날 기조강연자는 ‘게임 대작 개발'이라는 청운의 꿈을 안고 모여든 개발자에게 청천벽력(靑天霹靂)과도 같은 전망을 내놓았다. AI 덕분에 비 전문가도 게임을 개발하는 시대가 온다는 게 그의 핵심 메시지였다.

강연을 맡은 이은석 넥슨 디렉터는 “AI의 등장으로 게임 개발자와 게임 플레이어 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질 수 있다”면서 “AI 알고리즘이 자동화하면, 자동으로 게임 레벨을 디자인하고, 배경아트를 제작할 수 있으며, 고해상도 3차원(3D) 디자인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IT업계 한 관계자는 “진짜와 구분하기 힘든 ‘가짜들’은 결과적으로 콘텐츠 생산과 관련된 수많은 산업 생태계를 바꿔 놓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수십년 갈고닦은 재주도 무소용….장인이 몰락한다

전문직의 대명사로 꼽히는 의료 분야에서도 AI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도신호 하버드대 교수는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신장결석 등 비교적 잦은 질병을 판별하는 AI 시스템의 경우 정확도가 99.9% 수준에 달했다"고 설명했다.

기자와 만난 존스홉킨스 대학 관계자는 “여러 연구자들이 많은 논문을 통해 AI가 환자의 상태를 진단하고 솔루션을 제시하는 과정을 검증했다”며 “이미지를 중점적으로 영상의학 분야에서 수십 년간 실력을 쌓아은 많은 의사들이 실직할지도 모를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도 교수는 "같은 상황에서 진단을 내린다고 할 때 이미지를 분석하는 수준은 AI가 의사를 뛰어넘었다"며 "문제는 AI를 어떻게 활용할 지, 즉 어떻게 상용화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뿐"이라고 말했다. 도 교수는 "영상의학에 이어 병리학, 마취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가 의사의 역할을 대체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경향에 대해 AI가 첨단 의료서비스를 민주화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AI가 의사들의 진단 능력을 상향평준화한다는 것이다. 가령, 지난 2013년에 열린 의학 컨퍼런스인 스탠포드 메디슨-X(Stanford Medicine-X)에서는 대장암 진단과 관련한 의사들의 판단에 편차가 매우 크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했다. 또 한 해 미국 병원 응급실에서만 4만명을 훨씬 상회하는 환자들이 잘못된 진단 때문에 사망한다는 결과도 있다.

비노드 코슬라 대표는 지난 2013년 스탠포드 메디슨-X에서 발표에서 대장암 관련 의사들의 판단에 편차가 매우 크다는 점을 지적했다.

장동경 삼성서울병원 교수는 지난 6월 대한의사협회 제35차 종합학술대회에서 "AI로 병원 규모와는 상관없이 모두가 같은 데이터를 갖게 되고 전문가들의 영향력이 자연스럽게 붕괴되고 있다. 결국 의료민주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 창작자와 장인을 위협하는 AI 알고리즘은 무엇?

진짜 고양이 사진을 찍은 것처럼 깜쪽같은 고양이 모습을 그려낸 AI는 ‘생성적 적대 신경망(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s·GAN)’이라는 알고리즘을 이용한다. 지난 2014년 이언 굿펠로우가 GAN 논문을 발표했을 때 컴퓨터 과학계는 찬사가 쏟아졌다. 딥러닝의 창시자로 불리는 제프리 힌튼(Geoffrey Hinton) 토론토대 교수가 GAN을 두고 “최근 10여년간 가장 매력적인 이론”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수동적으로 인식하는’ 기존의 AI와 달리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AI를 위한 초석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GAN에는 스스로 이미지를 만드는 ‘생성자(generator)’와 이미지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감별하는 구분자(discriminator)’가 있고 둘은 경쟁한다. 생성자는 화폐 위조꾼처럼 최대한 진짜에 가까운 콘텐츠를 만들고 구분자는 경찰처럼 진짜와 가까운지 아닌지를 감별한다. 생성자와 구분자가 경쟁 과정을 거치면, 사람이 지도학습을 해주지 않아도 기계 스스로 ‘정답 같은 정답'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언 굿펠로우는 "생성자는 제한된 입력 데이터에 따라 이미지를 새로 만들고 구분자는 이미지가 진짜인지 판단하는데, 둘이 서로 반복적으로 경쟁을 하면서 구분자는 더 잘 구별하게 되고 생성자는 구분자를 속일 수 있도록 더욱 정확하게 이미지를 생성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방식으로 인공지능의 신경망을 확장시켜 나간다면 굳이 사람이 일일이 정답을 알려주지 않으면서도 기계가 학습하는 것이 가능하다. 인간의 지도학습의 한계를 벗어나 스스로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는 AI로 작동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굿펠로우는 "GAN은 이미지 분석을 통한 손상 이미지 복원, 이미지를 통한 예측 등의 애플리케이션뿐만 아니라 신약 개발 등 더욱 창의적인 영역에서도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생성적 적대 신경망(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s)에 데이터를 입력한 이후 생성된 이미지들.

영상 의학 분야에서는 이미 기술적 성숙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 받는 합성곱 신경망(Convolutional Neural Network·CNN) 알고리즘을 쓴다.

CNN은 인간의 시신경이 사물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차용한 것이다. 2016년 이세돌 9단과 세기의 대결을 펼친 AI ‘알파고’가 CNN으로 무장한 AI다. CNN은 페이스북의 얼굴인식 기술인 ‘딥페이스(DeepFace)’에도 적용된 기술이다.

CNN은 입력 이미지를 작은 구역으로 나누어 부분적인 특징을 인식하고 이것을 결합하여 전체를 인식한다. 바둑에서는 국지적인 패턴과 이를 바탕으로 전반적인 형세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알파고가 CNN을 활용하는 것이 적절한 선택이었다.

도신호 하버드의대 교수는 AI가 전문가를 넘어 장인과 창작자의 영역까지 파고드는 것에 대해 “사람과 AI와의 대결 구도로 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교환수를 통해서 전화 연결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없어졌다. 대신 휴대폰의 확산으로 여러 직업이 생겼다”면서 “누가 누구를 대체한다는 표현보다는 그냥 삶의 방식이 달라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영상의학 역시 의사와 AI의 경쟁이 아니라 AI를 쓰는 의사와 쓰지 않는 의사의 대결이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성로 서울대 전기·정보 공학부 교수는 "최근 많은 IT 업체 및 연구기관이 인간의 한계를 한참 뛰어넘은 강력한 성능의 딥러닝 솔루션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실리콘밸리의 최고 수재들도 이 같은 AI 솔루션이 왜 작동하는 것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AI의 추론 과정에 대해 이해하고, 경우에 따라 변수를 감안해 최적의 알고리즘을 적용하는 '휴먼 터치(Human Touch)'가 병행되어야만 AI를 더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