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지난 21일 파리바게뜨의 가맹점에서 근무하는 협력업체 소속의 5378명 제빵기사를 ‘불법파견’ 근로자로 간주하고 파리바게뜨 본사의 직접 고용을 지시하면서 프랜차이즈 업계는 물론 용역서비스, 제조업체 등 비슷한 형태의 근로 계약을 맺고 있는 산업계로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도급과 파견 근로의 경계선과 법해석이 모호해 통상임금 이슈와 같이 소모적인 갈등 및 혼란을 키우고 산업계의 비용 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논란의 여지가 많았던 하청 근로 개입과 관련해 파리바게뜨 본사가 실질적 고용주로 지목되면서 도급이나 파견 근로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는 기업이나 사업장이 혼란에 빠지고 있다.

24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사후관리서비스(A/S), 유통, 공공서비스 등 분야에서 도급·파견 관련 법정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재계는 노동부의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판단이 향후 관련 소송에서 재판부 판단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서울 시내 한 파리바게뜨 점포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대리점 고용 체계로 운영하는 삼성전자서비스는 근로자 지위 확인 1심 소송에서 승소했지만 이번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시정 지시로 향후 소송의 결과를 판단하기 어려워졌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소속 서비스 기사 1300여명은 2013년 “원청(삼성전자서비스)과의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를 인정해 달라”며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 서비스 기사들의 채용에 관여했으나 이는 컨소시엄 운영기관으로서 참여기관인 협력업체로부터 위탁받은 업무를 수행한 것’이라며 근로자의 불법파견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불법파견 문제로 법적 분쟁을 벌이고 있는 현대·기아차도 고용노동부의 이번 지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대·기아차 사내하도급 비정규직 1941명은 2010년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2월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유지해 현대·기아차 비정규직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현대·기아차는 즉각 상고해 이 소송은 대법원에 계류돼 있다.

비슷한 고용형태지만 각 소송 또는 심급에 따라 재판 결과가 달라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산업 현장에서 원청업체의 하청업체 근로자에 대한 개입이 적법한 업무 검수 과정인지, 불법 파견 행위인지 판단하기가 매우 까다롭다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이 관계자는 또 “파리바게뜨의 경쟁사인 뚜레쥬르 등 프랜차이즈 업체는 물론, 대리점 고용 체계인 LG전자서비스, LG유플러스, 홈플러스 역시 언제라도 '불법파견'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도급·파견근로 개념 대혼란...제2의 통상임금 되나

이번에 문제가 된 파리바게뜨는 11개 협력업체와 협정을 맺고 협력업체 소속 제빵기사를 교육, 훈련하고 있다. 협력업체는 가맹점주와 도급계약을 맺고 이들 제빵기사를 공급한다. 형태상으로는 가맹점과 협력업체간 도급 계약이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이들 제빵기사가 실질적으로는 가맹점 본사인 파리바게뜨의 직원이라며 불법 파견으로 판단했다.

파리바게뜨가 제빵기사의 채용·평가·임금·승진 등에 대해 일괄적인 기준을 마련해 협력업체에 공유하고 파리바게뜨 소속 품질관리사들이 제빵기사에 업무 지시를 해왔다는 것이다. 도급법상 원청사업자는 도급 근로자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등 ‘근로감독'을 할 수 없다. 근로감독을 한다면 도급이 아니라 근로자 파견에 해당한다. 고용노동부는 파리바게뜨 사례를 도급 계약을 가장한 본점의 제빵기사 불법파견으로 간주한 것이다.

그러나 파리바게뜨 등 업계에서는 너무 엄격하고 지나친 해석이라는 불만을 드러낸다. 우선 도급 계약이 협력업체와 가맹점주 사이에 체결된 것이고 파리바게뜨 본사는 제3자라고 강조한다. 가맹점주가 제빵기사에게 지시를 하는 것인데, 불법파견 논란의 책임을 가맹점주도 아닌 제3자인 본사가 지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한다.

파리바게뜨 본사가 가맹점 제빵기사 근로 과정에 개입했다고 해도 불법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가맹사업법 제6조 제4호에 따라 가맹본부가 제시한 품질기준을 가맹점주가 준수하지 못할 경우 가맹본부가 제공하는 용역 등을 사용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허용하고 있다.

또 신제품 출시 등 특별한 시기에 조기 출근을 요구하는 것은 ‘영업의 통일성’에서 불가피하고 제빵기사 소속 협력업체에 파리바게뜨가 제공한 인사기준 등도 참고 자료에 불과하다고 파리바게뜨는 반박하고 있다.

제빵업체 한 관계자는 “가맹사업법에 따라 가맹본부는 상품과 용역의 품질관리를 위해 노력하고 직원을 교육·훈련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고용부는 파견법상 이를 불법으로 판단했다”며 “현실에 적용하기 힘든 애매모호한 법 조항 때문에 일상적인 업무 관련 대화조차 불법파견의 근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서비스센터.

재계는 불법 도급·파견을 판단하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을 문제로 지적한다. 최근 불법파견 관련 법리 다툼에선 외주를 준 원청 대기업이 PDA 등 전자장비를 사용하도록 지시했는지, 일률적 서비스 매뉴얼을 나눠줬는지 등이 ‘하청 근로자에 대한 불법적 지휘·감독'의 근거로 거론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사실상 서비스 관리와 직원 교육을 포기하라는 뜻”이라고 전했다.

◆ 잇따르는 친노동정책… 기업 비용부담 급증

파리바게뜨는 노동고용부의 공문을 받은 뒤 영업일 기준 25일 안에 시정명령을 이행해야 한다. 고용노동부의 시정명령에 따라 직접고용해야 할 제빵기사는 5378명이다. 이는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파리크라상의 총 직원 5296명을 넘어선다. ㈜파리크라상은 지난해 영업이익(655억원)에 육박하는 연간 약 600억원의 인건비를 추가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본사 인원보다 더 많은 수를 25일 안에 직접고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만약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못하면 사법처리와 행정처분을 동시에 받게 된다. 현행 파견법에 따르면 파리바게뜨 대표와 회사는 징역 3년 이하, 벌금 3000만원 이하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과태료는 약 530억원이다. ㈜파리크라상은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 등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기아차 노동조합이 지난 7월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흉상을 세워놓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유사한 형태의 파견 근로자를 사용하는 프랜차이즈 업계는 초비상이 걸렸다. 업계 관계자는 “프랜차이즈 파견 근로자들이 본사를 상대로 연장근로 및 휴일근로 수당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관련 다툼이 법정 공방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바게뜨가 제빵기사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한다고 해도 모든 문제가 풀리는 것도 아니다. 현행 파견법상 제빵업무는 인력 파견 가능 대상 업종이 아니다. 이에 따라 파리바게뜨 본사와 가맹점주가 도급 계약을 맺는다고 해도, 가맹점주가 제빵기사에게 직접 업무 지시를 하면 불법 파견 문제가 또다시 불거질 수 있다.

한편 문재인 정부 들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대폭 인상, 근로시간 단축, 통상임금 이슈, 불법 파견 문제 등 친노동정책 및 이슈가 잇따르고 있어 재계의 비용 부담이 급증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 부담이 가중되면 신규 고용은 오히려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규제 완화와 노동시장 유연화로 투자가 활성화돼야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