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중국 국영 원전(原電) 기업 중국광핵그룹(CGN)이 영국 북서부 무어사이드 원전 프로젝트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17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2025년까지 이 지역에 원전 3기를 짓는 프로젝트로, 사업비가 150억파운드(약 21조원)에 달한다. 원래 이 사업은 일본 도시바가 지분 100%를 갖고 있는 원전 개발사 '뉴젠'이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원전 부문에서 7조원에 달하는 손실을 본 도시바가 원전 사업 철수를 추진하면서 무어사이드 원전 사업이 매물로 나온 상태다.

뉴젠 인수를 먼저 추진한 것은 한국전력이었다. 올 초부터 모회사인 도시바와 뉴젠 지분 인수 협상을 벌였다. 지분 인수로 시공까지 맡는다는 계획이었다. 한전의 참여가 확정되면 한국으로서는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 이후 8년 만의 해외 원전 사업 진출이다. 하지만 협상이 장기화하는 사이 중국이 끼어들어 한국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막강한 자금력과 자국 원전 운영을 통해 쌓은 노하우를 앞세워 세계 원전 시장을 빠르게 장악해가고 있다. 원전 수주는 국가 대항전 성격이 강한 만큼 '탈(脫)원전'을 추진하는 한국이 '원전 굴기(崛起·우뚝 서는 것)'를 내세운 중국에 주도권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 2030년 세계 1위 원전대국 목표

지난 12일 중국 국영 원자력 기업인 중국핵공업그룹(CNNC)은 캄보디아 정부와 원자력 분야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국가가 주요 사업을 주도하는 중국 체제의 특성상 이번 MOU는 실질적으로 중국 정부가 체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선 의료·공업 분야에서 협력하지만 이후 원전 건설 등 분야로 협력 범위를 확대할 방침이다. 8일에는 파키스탄 펀자브 지역에서 중국이 기술·재정 지원을 해 건설한 파키스탄 5번째 원전 준공식이 열렸다. 파키스탄 아바시 총리는 "중국 정부 협력이 없었다면 원전 건설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자체 기술로 개발한 원전을 파키스탄에 2013년 처음 수출한 이래 아르헨티나·루마니아 등 국가에서 원전 10기를 완성했거나 건설하고 있다. 2015년에는 안전성을 강화하고 부품 자급률을 90% 이상 높인 원전 '화룽(華龍) 1호'를 선보이면서 원전 수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중국은 시진핑 주석이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전략의 하나로 원전 수출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주로 신흥국 위주로 수출을 진행했던 중국은 중국광핵그룹이 작년 영국 남서부 서머싯주 힝클리포인트에 원전 2기를 짓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선진국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중국광핵그룹은 뉴젠 인수에 성공하면 영국 원전 4곳의 지분을 갖는다. 중국 입장에서 선진국 진출은 중국 원전이 가격 경쟁력뿐만 아니라 품질에서도 인정을 받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중국은 2030년까지 자국에 110기의 원전을 운영해 세계 1위 원전 대국이 된다는 계획이다. 심각한 대기오염에 시달리고 있는 중국은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자국 내 원전을 늘리고 있다. 중국은 자국에서 원전 건설 경험을 축적하면서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중국의 자금력은 원전 수출을 위한 무기가 되고 있다. 2013년 파키스탄에 원전을 수출할 때 당시 건설비 95억달러의 82%를 장기 저리로 융자해주는 혜택을 제공했다.

한국은 2009년 이후 원전 수주 제로

중국이 해외 원전 시장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한국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에 한국형 원전 4기를 수출한 이후 8년째 수주 실적이 '제로'다. 한국은 수주 가뭄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국·체코·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원전을 수출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곳곳에서 중국과 경쟁해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르면 다음 달 2.8GW 규모의 원전 2기 입찰 공고를 낼 것으로 알려졌다. 외신들은 한국과 중국의 경합을 예상하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는 아랍에미리트에 원전을 수출한 경험이 있어 유리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하지만 변수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 때에는 청와대가 전면에 나선 게 주효했지만 현 정부가 탈원전 논리에 얽매여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지 않을 경우 이길 확률이 낮아진다"며 "원전을 차세대 수출 품목으로 육성하려던 우리가 중국이라는 강력한 경쟁자를 만난 상황에서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수출 전략이 동력을 잃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