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관계자들을 만나면 이렇게 얘기합니다. ‘젊은이들에 대해 알고 싶다면 KCB(코리아크레딧뷰로) 신용 등급을 볼 게 아니라 그들의 휴대전화를, 카카오톡 앱을 보라’고요.”

글로벌 핀테크(fintech·금융과 기술의 결합) 업체 ‘렌도(Lenddo)’에서 대안신용평가 모델 알고리즘을 개발한 신경과학자 나빈 아그니호트리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서울 중구 신한퓨처스랩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아그니호트리 CTO는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신경과학 석사를 마치고 메사추세스공대(MIT)에서 컴퓨터 신경과학 연구를 이어갔다. 그는 컬럼비아대에서는 200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에릭 캔델 교수와 함께 ‘뇌에 나타나는 패턴이 어떻게 기억의 저장으로 이어지는가’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던 신경과학자다.

렌도가 지난 2014년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올해의 혁신적인 스타트업’으로 선정된 데는 그가 개발한 대안신용평가 알고리즘의 영향이 컸다. 렌도는 문자, 전화통화 등 통신 데이터, 페이스북 계정 활동, 이메일 계정 활동 등 비(非) 전통 금융 데이터를 기반으로 대안신용점수인 ‘렌도 점수’를 매긴다.

글로벌 핀테크(fintech·금융과 기술의 결합) 업체 ‘렌도(Lenddo)’에서 대안신용평가 모델 알고리즘을 개발한 신경과학자 나빈 아그니호트리 최고기술책임자(CTO).

아그니호트리는 “렌도 점수는 곧 ‘좋은 사람’ 점수”라면서 “과거에 쌓인 금융 관련 데이터가 없어도, 행동 양식을 점수화해 개인의 성실함이나 꾸준함 등을 평가한 상환 가능성을 평가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아그니호트리 CTO와의 일문 일답.

―신경과학자가 어쩌다가 렌도 점수를 개발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석사를 컬럼비아대에서 하고, MIT에서 연구를 이어갔는데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내가 하는 일들이 ‘진짜 세상’에서 누군가를 직접적으로, 실용적으로 도와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MIT를 2005년에 떠나 기계학습과 인공지능을 활용한 기술로 사진을 인식해서 자동으로 분류해주는 스타트업 ‘밀라브라’를 차렸다. 이 기술로 당시 미국 FBI가 실종 어린이를 찾는 데 공조하기도 했다.

이후 회사를 매각하는 시점에 렌도의 공동창립자 제프 스튜어드로부터 대안신용평가 사업을 제안받았다. 그가 설명하는 렌도는 내가 꿈꾸던 ‘진짜 세상’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회사였다.

인도의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오면서 내가 개발한 알고리즘으로 수혜를 볼 수도 있었던 사람들을 많이 지켜봤다. 신 파일러(Thin Filer·과거 신용거래가 없어 낮은 신용등급을 부여받는 사람들)나 상환능력이 충분하지만 낮은 신용등급을 보유한 사람들 말이다.”

―렌도 알고리즘은 어떤 면에서 전통적인 신용 평가 방식과 다른가.

“기존 신용평가 모델은 이전 금융거래 데이터로 미래의 금융 활동을 예측한다. ‘지금까지 잘 갚았으면 다음 번에도 잘 갚겠지’하고 추측하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 데이터가 없는 사람은 어떻게 심사할 것인가.

렌도는 ‘평판’을 활용하기로 했다. 1982년 쯤, 과거에 신용거래내역이 없는 ‘김민정’이라는 사람이 카드를 발급받고 싶어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금융기관 사람들은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김민정씨를 아시는 분, 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하고 물어보고 다닐 것이다. 금융사 사람은 김씨의 금융거래 내역에 대해 궁금한 것이 아니다. 김씨가 향후 카드값을 꼬박꼬박 납부할만큼 성실한지를 따지는 것이다.

렌도 점수의 원리가 이와 같다. 렌도 점수는 일종의 ‘좋은 사람’ 점수다. 금융거래에 대한 점수가 아니다. 한 사람의 행동 패턴에 대한 것이다. 휴대전화 사용 내역을 보면, 이 사람이 몇시에 일어나고 몇시에 잠드는지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리고 자기 직전까지 휴대전화를 만지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기존 신용평가모형이 이미 우수하게 작동, 대안 신용평가가 필요 없다는 지적도 있는데.

“전 세계 어디든 신 파일러가 수두룩하다. 미국에는 7000만명, 인도에는 아마 8000만명정도가 신용거래내역이 없어 낮은 신용등급을 부과받은 신파일러로 추정된다. 전통적인 데이터로 이사람들을 평가하면 이 사람들은 쓸데 없이 높은 금리를 부담해야 한다. 아예 대출 승인이 나지 않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은행 사람들을 만나면 이렇게 얘기한다. ‘점수를 매기는 것은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점수 매기고 싶다면, 이해하고 싶다면 그들의 휴대전화를 보라’고. 20대 젊은이가 돈이 필요해 은행을 찾아왔다면, 그들의 카카오톡 계정을 보라고 말이다.”

―사생활 침해 논란이 있을 수 있을 듯 한데.

“사업을 진행해보니 전세계 젊은이들은 자신의 행동 패턴 데이터가 값어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청년들에게 ‘당신의 데이터를 활용해 당신이 카드를 만들고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을 때 이들은 선뜻 페이스북 계정을 활용해 점수를 매겨도 좋다고 허용한다. 렌도는 이들의 데이터로 장사를 할 생각도 돈을 벌 생각도 없다.”

―국내 금융당국은 대출 증가를 반기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렌도 점수를 쓰면 대출을 더 많이 발생시킬 듯 한데.

“포용적 금융의 차원에서 말할 수 있겠다. 렌도 점수를 사용하면 현재 신용 등급으로는 고금리로 돈을 빌려야하는 사람들이 더 낮은 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2금융권에서 빌려야했던 사람들을 은행에서 대출받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CTO도 신 파일러라서 젊은시절 대출을 못 받았던 경험이 있는가.

“22세때 대학원 진학을 위해 미국에 왔을 때가 1994년이었다. 당시 주거래은행에서 카드를 만들고 대출을 받으려고 했다. 바로 승인 거절 당했다. 내가 학생이기 때문이었다. 미국 국적자들도 나이가 어리면 대출이 거절되던 시기였다. 은행에 항의했는데 담보가 없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은행의 책임자급이 내 수표장(check book)을 보더니 다시 나를 불러세웠다. 그는 “수표장에 적힌 내 글씨가 매우 깔끔했고, 누구에게 언제 얼마를 지불했는지 굉장히 꼼꼼하게 작성돼 있다”면서 “이렇게 꼼꼼한 사람은 우리 서비스를 이용해도 좋다”면서 승인을 내줬다.

이 일화는 렌도의 사업 방향과 정확히 일치한다. 한국, 미국, 인도 등 전 세계 젊은이들은 이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