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년전만 하더라도 모터쇼에 나오는 모든 신차는 디젤로 통한다는 말이 있었다. 메르세데스-벤츠, 폴크스바겐그룹, BMW 등 독일차 브랜드는 물론 르노와 푸조, 시트로엥 등 다른 유럽차 브랜드도 연비와 친환경을 앞세워 디젤차를 매년 주력 모델로 내세웠다.

그러나 디젤의 본고장에서 열리는 '2017 프랑크푸르트 모터쇼(IAA)'는 디젤시대의 몰락과 전기차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자리가 됐다. 폴크스바겐 디젤게이트 이후 전기차가 대안으로 부상했음을 전시장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12일(현지시각) ‘2017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언론 사전 공개 행사가 열렸다.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는 제네바 모터쇼와 파리 모터쇼, 디트로이트 모터쇼, 도쿄 모터쇼와 함께 세계 5대 모터쇼로 꼽힌다. 최근에는 베이징 모터쇼와 상하이 모터쇼가 급성장하면서 세계 5대 모터쇼에서 도쿄 모터쇼가 제외되기도 한다.

전 세계에서 모인 기자들과 회사 관계자들이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올해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는 40여개국 1000여개 업체가 참가했다. 특히 독일 브랜드의 안방에서 열리는 모터쇼인 만큼 벤츠, 폴크스바겐, BMW 등 독일차 3사가 세계 최초 공개(월드프리미어) 차량을 대거 출품하면서 풍성한 볼거리를 마련했다. 이와 함께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등 미래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양산차와 컨셉트카가 출품돼 관람객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 전기차가 대세…디젤 시대 갔다

이번 모터쇼에서 벤츠, 폴크스바겐, BMW 등 독일차 업체들이 전기차를 최전선에 앞세웠다. 폴크스바겐 디젤게이트로 클린디젤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서 하이브리드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전기차, 수소연료전지차 등이 디젤을 대신하는 친환경차로 떠올랐다.

폴크스바겐 그룹과 메르세데스-벤츠는 전기차 부문에 각각 200억유로(27조원)와 100억유로(13조5000억원)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독일차 3사 중 전기차 시대에 가장 빠르게 대응했던 BMW는 양산형 전기차를 공개했다.

전날 ‘2017 프랑크푸르트 모터쇼(IAA)’의 전야 행사인 ‘폴크스바겐 그룹 나이트’에서 컨셉트카 '세드릭'을 타고 등장한 마티아스 뮐러 폴크스바겐 그룹 회장은 "2025년까지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80종을 개발하고, 이를 위해 향후 50억유로(6조8000억원) 규모의 배터리 구입하겠다"고 밝혔다.

폴크스바겐 컨셉트카 '세드릭'.

세드릭은 핸들과 브레이크페달, 가속페달이 없는 ‘레벨 5’ 완전 자율주행 기술을 적용한 전기차다. 전통적인 차와 달리 보닛과 엔진룸이 없고 차체가 바퀴까지 덮고 있다. 또 대형 윈도우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만 있는 라운지형 실내는 기존 내연기관차와 DNA부터 다른 차라는 것을 보여준다. 세드릭은 사용자가 폴크스바겐 원버튼 (One Button)이나 애플리케이션 등을 통해 언제든 문 앞까지 호출할 수 있다.

같은 날 열린 '메르세데스-벤츠 나이트' 분위기도 비슷했다. 디터 제체 다임러AG 회장은 "소형 자동차 브랜드인 ‘스마트’를 2020년까지 미국과 유럽에서 완전 전기차 브랜드로 전환할 것"이라고 말했다. 벤츠는 2020년까지 50개 이상의 친환경 모델을 생산한다는 전기차 로드맵도 공개했다.

르노 레벨4 자율주행 콘셉트카 '심비오스'.

르노 역시 이번 모터쇼에서 자율주행 콘셉트카 '심비오스'를 선보였다. 100% 전기를 동력으로 사용하는 심비오스는 완전 자율주행을 목표로 개발된다.

◆ 전기차 컨셉트카 양산차 잇따라 공개

벤츠는 이번 모터쇼에서 전기차 서브 브랜드 컨셉트카인 ‘스마트비전 EQ 포투’를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스마트 비전 EQ 포투는 핸들과 페달이 없는 완전 자율주행차로 순수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두 가지 전기차 기술을 적용했다. 또 공유용 차량으로 ‘연결성(자율주행), 유연한 사용(공유서비스), 전기구동시스템’을 추구하는 벤츠의 미래 자동차 비전을 그대로 담았다.

벤츠는 EQ 포투가 BMW i3의 경쟁모델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벤츠는 최근 수년간 미국과 일본차들이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동안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메르세데스-벤츠 스마트비전 EQ 포투.

이와 함께 벤츠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GLC 기반인 수소연료전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차량인 ‘GLC F-CELL EQ 파워’를 최초로 선보였다. 업계에서는 현대차, 도요타에 이어 벤츠까지 수소전기차 시장에 뛰어든 만큼 수소차가 차세대 친환경차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보고 있다.

BMW는 대표 전기차 i3의 고성능 모델을 완성했다. BMW가 최초로 공개한 뉴 i3s는 자사의 이드라이브(eDrive) 기술을 통한 즉각적인 동력 전달을 장점으로 내세운 모델이다. 미니도 양산형 전기차인 '미니 일렉트릭 컨셉트'를 세계 최초로 무대에 올렸다. 향후 미니가 출시하는 모든 전기차는 미니 일렉트릭 명칭으로 통합될 예정이다.

디젤게이트의 주범인 폴크스바겐도 전기차로 분위기 반전에 나섰다. 폴크스바겐은 양산형에 한층 가까워진 ID 크로즈를 출시했다.

전기로 구동되는 SUV 쿠페 아우디 일레인.

ID 크로즈는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으로 1회 충전 주행거리가 약 500㎞다. 급속 충전기로 30분이면 80% 충전할 수 있으며 최고출력은 302마력에 달한다. 폴크스바겐은 최근 글로벌 모터쇼에서 ID, ID 버즈, ID 크로즈 등 차세대 전기차 ID 라인업을 연이어 선보인 바 있다.

◆ 국산차 3사 SUV 전면에 내세워

국내 완성차업체들은 이번 모터쇼에서 눈에 띄는 신차를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유럽에서 인기리에 판매 중인 전기차 라인업 홍보에 힘을 실었다. 현대차는 순수 전기차 아이오닉 일렉트릭과 함께 하이브리드,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모델을 전시했다. 이와 함께 ‘i30N’과 ‘i30N 패스트백’ 등 고성능 모델을 일반에게 공개했다. 현대차는 2년 전인 2015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고성능 모델 N의 방향성을 제시한 바 있다.

현대차 ‘i30N’.

기아자동차는 컨셉트카 ‘KED-12’를 출품했다. ‘KED-12’는 기아 유럽디자인센터에서 제작됐다. ‘씨드’와 ‘프로씨드’ 등의 모델을 통해 기아차가 선보였던 디자인을 계승했다는 평이다. 세단보다는 SUV 중심으로 라인업을 강화하려는 모습도 엿보인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나란히 소형 SUV ‘코나’, ‘스토닉’을 공개했다. 소형 SUV의 유럽시장 공략을 선언한 것이다. 쌍용차도 이번 모터쇼를 통해 플래그십 SUV인 ‘G4 렉스턴’을 유럽 시장에 처음 공개했다. 특히 쌍용차는 유럽시장 출시에 앞서 신차의 내구성 및 상품성 검증 차원에서 G4 렉스턴 유라시아 횡단 행사를 진행하는 등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자동차 전장 사업을 차세대 먹거리로 키우고 있는 LG전자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처음으로 참가했다.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는 LG화학, 차량용 인테리어 원단 소재를 만드는 LG하우시스 등도 함께했다. LG전자는 최근 벤츠에 자율주행 카메라를 공급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