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지난 8일(현지시각)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 주력 3개사의 글로벌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일제히 하향 조정했다. 장기 신용등급은 'A-'로 유지했지만 등급 전망이 부정적이라는 것은 단기간내 신용등급이 한 단계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S&P는 "현대·기아차의 판매 실적과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고 중국 시장에서 판매 부진이 몇 개월간 지속될 것"이라며 "앞으로 12개월 안에 이런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의 최대 부품 제조사인 현대모비스의 경우 모듈사업이 현대·기아차의 중국 생산량 감소에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분석했다. S&P는 "모듈사업의 수익성이 현대·기아차의 중국 생산량 감소 등으로 인해 향후 12개월 동안 약화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현대차그룹과의 긴밀한 사업관계와 향후 12~24개월 그룹 완성차 사업의 불확실성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현대·기아차의 실적 악화로 울상 짓는 부품업체는 현대모비스 뿐만이 아니다. 현대위아, 현대제철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와 화신, 세종공업, 한국프랜지공업 등 다수의 부품업체의 올 상반기 실적은 급감했다. 특히 현대·기아차에 의존도가 높고, 중국에 동반 진출한 업체들의 실적 감소폭이 컸다.

현대자동차 베이징 공장 생산라인.

◆ 현대·기아차, 상반기 순이익 34.3% 줄어…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현대제철 줄줄이 감소

올 상반기 현대·기아차의 중국 판매량은 43만947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2.3% 급감했다. 현대차의 상반기 판매량은 30만1277대, 기아차는 12만9670대로 각각 42.4%, 54.6% 줄었다. 그 결과 현대·기아차의 올 상반기 순이익은 2조3193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34.3% 감소했다.

현대·기아차에 의존하는 수직 계열화된 부품사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현대모비스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1조1611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22.8% 줄었다. 특히 중국 사드 보복이 본격화된 2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3% 감소한 4924억원에 그쳤다. 상반기 매출은 17조5501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8.6% 감소했고, 당기순이익은 1조2441억원으로 24.3% 줄었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중국 내 완성차 물량 감소에 따른 고정비 부담 증가와 위안화 약세 등 환율효과로 주력 사업분야인 모듈·핵심부품 제조사업이 영향을 받아 매출과 손익이 모두 감소했다”고 밝혔다.

변속기, 엔진 등을 만드는 현대위아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732억원, 2분기 영업이익은 301억원으로 각각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7.1%, 66.8% 감소했다.

현대제철의 2분기 영업이익도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8.8% 줄어든 3510억원에 그쳤다. 이재광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현대·기아차 판매 부진에 따른 해외 스틸서비스센터(SSC)의 실적 부진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SSC는 현대제철이 현대·기아차의 해외 생산공장에 자동차용 강판을 공급하기 위해 세운 해외 판매법인이다. 이 연구원은 "현대·기아차 판매 회복 여부가 하반기 실적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사드 배치 후 중국 웨이보에 올라온 현대차 파손 사진

◆ 현대차와 중국 현지 동반 진출한 부품사들 영업이익 급감

현대차그룹 계열사가 아닌 1차 협력업체들의 올 상반기 실적도 줄줄이 급감했다. 자동차 범퍼와 도어 등 차체용 부품을 생산하는 주요 협력업체인 성우하이텍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249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 대비 66% 감소했다. 성우하이텍은 생산량의 86.5%를 현대차에 납품한다.

성우하이텍은 중국 등 현대차그룹의 주요 해외 생산거점에 동반 진출하면서 사업기반을 확대해 왔다. 기업경영평가사이트인 CEO스코어는 “2016년 기준 성우하이텍의 중국 매출 비중이 36.38%로 전체 매출의 3분의 1을 웃돌았다”며 “부품업체 중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성우하이텍 다음으로는 서연이화(32.02%), 평화정공(31.51%) 순이었다.

한국기업평가와 한국신용평가는 지난 7월 성우하이텍의 신용등급을 ‘A’로 유지했지만 등급 전망은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지속적인 해외 투자로 차입금이 증가한 상황에서 현대·기아차 판매 부진으로 재무부담이 해소되지 않아서다.

세종공업, 덕양산업, 화신, 한국프랜지 등은 올 상반기에 적자 전환했다. 머플러를 주력 생산하는 세종공업은 올 상반기에 150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세종공업의 현대·기아차 납품 비중은 77%에 달한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납품 비중이 98.5%인 덕양산업은 올 상반기 23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이들은 모두 현대·기아차와 함께 중국에 동반 진출한 기업이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덕양산업의 중국 매출 비중은 21.48%, 화신의 경우 20.79%다.

이지웅 한국기업평가 책임연구원은 "국내 부품사들은 현대·기아차 의존도가 높아 완성차 판매가 부진하면 매출 감소와 수익성 하락이 불가피하다"며 "대다수 국내 부품사들은 자동차 부품 중 일정 영역에 특화돼 있어 거래처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