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드리머(Dreamer·꿈꾸는 사람)를 짓밟지 마라.’

미국을 넘어 세계 기술 혁신의 중심지인 실리콘밸리가 다시 한 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충돌하고 있다.

이번 갈등은 지난 6일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불법체류 청소년 추방유예(DACA·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프로그램’ 폐기 결정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2012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불법 입국한 부모를 따라 미국에 온 청년들이 걱정없이 학교와 직장을 다닐 수 있도록 추방을 유예한 행정 명령이다.

페이스북, 애플, 구글 등 실리콘밸리 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을 접한 직후 긴급 청원과 성명을 통해 즉각 프로그램 폐기를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갈등이 깊어 지면서 리드 호프만 링크드인 창업자 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방지를 위해 본격 정치 운동에 참여하는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 창업자들도 늘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트럼프 대통령의 ‘불법체류 청소년 추방 유예프로그램’ 폐기 결정에 반대, 드리머 3명을 자택에 불러 직접 대화했다.

◆ 실리콘밸리, 입법 청원 운동 등 격한 반발

경제전문지 ‘포춘’ 등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DACA 폐기 결정에 대해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 수전 보이치키 유튜브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등 실리콘밸리 대표 기업 최고경영자들이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포춘’은 “DACA 프로그램 폐지에 반대하는 공개 서한에 서명한 기업인이 500명이 넘는다”며 “상당수가 실리콘밸리의 기술 기업인”이라고 보도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드림 법안(Dream Act)’ 등 초당적인 새 입법으로 드리머들이 미국 시민권을 얻을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커버그 CEO는 자신의 집에 드리머 3명을 초청,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페이스북으로 생중계하기도 했다.

저커버그 CEO는 또 공개 영상을 제작, DACA 프로그램 폐기로 미국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드리머 80만여 명을 구제할 방안을 마련할 수 있게 의회를 압박하자고 주장했다.

팀 쿡 애플 CEO는 "드리머의 미래가 위험에 처해선 안 된다. 드리머들을 보호해야 한다"며 ‘긴급 청원’을 냈다. 애플에는 ‘다카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아 근무하는 직원이 250여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는 소련계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이민자 가정 출신이다.

◆ 링크드인·징가 창업자, “트럼프 대항마 찾자” 정치 운동 시작

실리콘밸리와 트럼프 대통령과의 갈등은 시간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유력 기업인들은 파리기후협약 탈퇴 결정, 버지니아주 샬롯 빌의 백인 우월주의 유혈 시위 등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정책과 발언에 대해 성명과 광고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반대해왔다.

지난 8월 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일어난 백인 우월주의 유혈 사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양비론에 항의, 실리콘밸리 최고 경영자들이 줄줄이 대통령 경제자문회의 위원직을 사퇴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지난 6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파리기후 조약 탈퇴를 결정하자 “합리적인 대화가 안된다”며 대통령 경제자문회의 위원직을 사퇴했다.

스티브 워즈니악 애플 공동 창업자 등 실리콘밸리 유력 인사 100여명은 작년 대선 기간 중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미국의 미래가 위기 처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공화당 후보였던 트럼프와 경쟁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가장 큰 돈 줄과 지지 기반도 실리콘밸리였다.

올해 1월 이슬람권 국가 국민들의 입국을 제한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과 외국인 전문인력을 대상으로 한 전문직 취업비자(H-1B) 규제를 강화한 조치에 가장 강하게 반대한 곳도 실리콘밸리였다.

리드 호프만 링크드인 창업자와 마크 핀커스 징가 창업자는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막아야 한다며 디지털 정치 플랫폼을 만드는 등 아예 본격 정치 운동에 나섰다. 미국 독립기념일(7월 4일)에 맞춰 ‘미래를 거머 쥐자’는 뜻에서 프로젝트 이름을 ‘WTF(Win the Future) 프로젝트’라 지었다.

작년 대선 직후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내 일생 최악의 사건”이라고 탄식했던 실리콘밸리 최대의 인큐베이팅 기업인 Y콤비네이터의 샘 올트먼 CEO도 최근 “다음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이길 정치 후보가 있다면 아끼지 않고 자금과 조직, 기술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 혁신의 아이콘’으로 부상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스페이스X CEO는 남아공, 캐나다, 미국 등 3개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 “실리콘밸리는 드리머들의 작품”··· 유니콘 기업 51% 이민자가 설립

실리콘밸리에는 유독 외국 이민자나 이민자 가정 출신 경영자들이 많다. ‘포춘’은 “기업 평가액이 10억 달러(1조1300억원) 이상인 스타트업을 뜻하는 '유니콘 기업'의 51%가 이민자에 의해 설립됐다”고 보도했다.

‘포춘’이 선정하는 ‘미국 500대 기업’ 중 40%의 창업자 가운데 1명 이상이 이민자 또는 이민자 가정 출신이라는 통계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유니콘 기업의 71%가 이민자를 주요 임원으로 두고 있다.이민자 없이는 실리콘밸리가 돌아 가지 않을 정도”라고 보도했다.

실제 내로라하는 실리콘밸리 기업의 수장이나 창업자 가운데는 이민자 가정 출신 인사들이 많다.

‘실리콘밸리의 전설’이 된 스티브 잡스는 시리아계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잡스를 입양한 양부모는 아르메니아 이민자의 후손이다.

‘실리콘밸리 혁신의 아이콘’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스페이스 X CEO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이다. 머스크 CEO는 캐나다에서 대학을 다녔고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현재 남아공화국, 캐나다, 미국 등 3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의 공동 설립자로 현재 지주회사인 알파벳의 사장인 세르게이 브린은 옛 소련의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1979년 미국으로 이민했다.

최근 ‘세계 최대의 자동차 공유 기업’ 우버의 신임 CEO가 된 다라 코스로샤히(Dara Khosrowshahi·48) 전 익스피디아 CEO도 이란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 미국에 난민 신분으로 입국했다.

피차이 구글 CEO,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인도 출신, 야후 공동 설립자인 제리 양은 대만 태생이며, 제프 베조스 아마존 창업자의 계부도 쿠바 출신이다. 보이치키 유튜브 CEO의 부모는 러시아와 폴란드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