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한진해운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 이후 한국 해운업계가 쇠퇴를 넘어 파산 수준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한진해운 사태의 반성과 원양정기선 해운 재건 방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한진해운 파산 이후 단기적으로 한국 해운이 벌어들이는 운임수입 3조원을 잃었다”고 8일 밝혔다. KMI는 한진해운 사태로 인한 실업자는 전국적으로 1만명 수준인 것으로 추정했다.

한진해운 물동량을 대부분 외국 선사들이 흡수해 국내 운임수입 3조원이 증발됐고, 이와 동시에 수출 해상운임 상승이 발생했다는 분석이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물동량 점유율 합계는 2015년 연간 평균 11.9%에서 2017년 1~7월 평균 5.7%로 6.2%포인트 하락했다. 현대상선은 한진해운 물동량 가운데 1%포인트 정도 흡수하는데 그쳤고 나머지는 외국 선사들이 가져갔다.

중소기업의 물류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국적선사 영업망이 사라지면서 중소기업 수출상품 경쟁력도 약화됐다. 이외에도 미국 롱비치터미널, 해외 주재 인력, 1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이상 초대형 컨테이너 선박 등 알짜배기 자산들도 대부분 해외 선사들에게 매각됐다.

KMI는 “현대상선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전용선 사업부와 터미널의 매각 등 경쟁력 악화가 계속됐다”며 “한진해운 파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해운산업의 발전 역량이 후퇴됐다”고 평가했다.

한진해운 컨테이너선

◆ KMI “금융위가 해운 산업 역할 간과…한진해운 사태에 대해서도 공감 못 해”

KMI는 글로벌 선사들의 ‘치킨게임(죽기살기식 경쟁)’으로 인한 해운경기 침체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미흡하게 대응했기 때문에 한진해운 사태가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대표적인 해운 시황 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해 3월 사상 최저치인 400포인트까지 떨어졌다. 이 때 정부의 해운업 금융지원이 단기 유동성 지원에만 그치면서 경영정상화를 위한 실효적 지원이 미약했다는 지적이다. 단기 유동성 지원은 한진해운 등 선사들에 채무 상환 부담으로 되돌아왔다.

KMI는 “한진해운 구조조정 당시 정부는 금융위원회 중심의 정책을 통해 한국경제와 산업구조 관점의 구조조정을 간과한 측면이 있다”며 “한진해운 법정관리 전후로 나타난 세계 물류대란과 수출입 물류 병목 현상에 대해 금융위가 충분히 공감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했다.

한진해운 파산에 따른 선복량 변화

◆ 유럽 노선 추가 물류비 발생…“해운업은 한국경제에 필요한 산업”

한진해운 사태 직후 국내 화주들이 국적 선대 규모 축소로 추가 부담했던 해상 운임은 동서 항로에서 1FEU(1FEU는 40피트 컨테이너 1개)당 최소 500달러 이상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북미 노선에서는 지난 4월 해운 얼라이언스(동맹) 가입과 SM상선 출범으로 물류비 부담이 사라졌다. 하지만 유럽 노선에서는 현대상선이 투입하던 1만TEU 선박이 해운 얼라이언스 2M 가입 이후 사라지면서 추가 물류비가 발생했다.

KMI는 한국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정기선해운산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의하면 2060년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국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해운업은 제조업 수출물류의 인프라로서 반드시 육성해야 하는 산업이라는 것이다.

KMI는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부 역할과 책임 강화가 이뤄져야 한다”며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긴급하게 필요한 자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정부 예산을 확보하고, 민간금융기관에서도 대출을 허용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