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복을 입은 남성이 집에서 실내 자전거에 오른다. 자전거 앞 터치 스크린에서 45분짜리 운동 코스를 선택하자 현재 진행 중인 수업 목록이 뜬다. 전문 강사들이 실시간으로 진행하고 있는 원격 수업이다. 수업에 참여하면 화면 속 강사가 운동 프로그램에 맞춰 페이스를 조절할 수 있게 구령을 넣어준다. 현재 이 수업을 듣고 있는 접속자는 400여명. 모두 각자 집에서 실내 자전거를 타고 있을 뿐이다.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펠로톤 인터랙티브는 운동할 때 강사의 지도를 받으려면 피트니스 센터로 가야 한다는 상식을 깨뜨려 '대박'을 쳤다. 이 '원격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매달 39달러(4만4000원)를 내는 회원만 전 세계에 30만명이 넘는다. 기업가치는 12억5000만달러(약 1조4100억원). 최근까지 3억2500만달러(약 3700억원) 투자를 유치했다.

펠로톤 인터랙티브의 성공은 헬스케어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준다. 스타트업 정보 업체 CB인사이츠에 따르면 올 상반기 미국에서 탄생한 '유니콘' 12개 중 3개가 헬스케어 업체였다. 기업가치 10억달러(약 1조1300억원)를 넘으면서 아직 상장되지 않은 초기 벤처인 유니콘을 보면 요즘 뜨는 산업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헬스케어 외에 사이버 보안, 핀테크, 우주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유니콘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 여성이 자신의 집에서 헬스케어 스타트업 펠로톤 인터랙티브의 원격 트레이닝 강의를 들으며 실내 자전거를 타고 있다.
25월 24일(현지 시각) 뉴질랜드 마히아반도의 로켓 발사장에서 로켓랩의 초저가 로켓 일렉트론이 시험 발사를 앞두고 있다.

◇헬스케어 산업 혁신으로 수천억원 투자 유치

올 상반기 미국에서 몸값이 가장 비싼 유니콘은 기업가치 50억달러(약 5조6400억원)를 기록한 헬스케어 스타트업 아웃컴헬스로 나타났다. 아웃컴헬스 시스템이 적용된 병원에 간 환자는 대기실에서 전용 태블릿PC를 받는다. 태블릿PC로 문진표를 작성하면 의사에게 전송되고, 진찰실에선 벽면에 설치된 모니터에 3차원 인체 해부도를 띄워놓고 치료 방법을 상의한다. 의사의 처방과 약 먹을 때 주의사항 등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환자의 태블릿PC에 뜬다. 이 회사 시스템은 현재 미국에서 23만여명의 의료인들이 사용하고 있다. 아웃컴헬스는 2020년이면 미국 전체 의료 인력의 70%가 자신들의 서비스를 사용할 것으로 본다. 이유는 바로 공짜이기 때문. 이 회사는 의사나 환자로부터 요금을 받지 않는 대신 서버에 연간 5억8500만 건씩 쌓이는 환자 진료 기록 빅데이터를 보험사와 제약사에 팔아 수익을 올린다. 지난해 매출은 1억8000만달러(약 2000억원)였다. 구글의 지주회사인 알파벳, 세계 1위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지난 5월 5억달러(약 5600억원)를 투자하기도 했다.

미국 뉴저지주에 사는 노인들은 병원에 잘 가지 않는다. 실제 병에 걸리거나 쓰러지기 전에 먼저 간호사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뉴저지주 노인의료보험 가입자 2만5000명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스타트업 클로버헬스는 회원들이 평생 낸 보험금 청구서 기록을 활용한다. 심혈관계 질환을 앓은 적이 있고 고혈압이 있는 노인이 고혈압 약을 타간 빈도가 줄어든 것이 나타나면, 클로버헬스는 집으로 간호사를 보내 예방 조치를 한다. 의료비가 비싸기로 악명이 높은 미국에서 각광받는 서비스. 알파벳과 세계 4위 벤처 투자 업체 세쿼이어캐피털이 미리 가치를 알아보고 1억3000만달러(약 1500억원)를 투자했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2013년 57억달러(약 6조4300억원)였던 헬스케어 시장은 5년 새 2배 이상으로 커져 내년에는 126억달러(약 14조2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데이터 보호와 백업, 복구를 손쉽게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루브릭의 소프트웨어 화면
병원 진찰실에서 의사와 환자가 아웃컴헬스 모니터에 표시된 3차원 인체 해부도를 보며 치료 방법을 상의하고 있다.

◇IoT에서 우주개발까지… 유니콘 등장 분야 다양해져

과거 유니콘이 가장 많이 나온 사업 분야는 온·오프라인을 연계하는 이른바 O2O(online to offline)였다. 택시와 승객을 모바일 앱으로 연결해주는 우버(기업가치 77조원)·디디추싱(기업가치 56조원), 묵을 곳을 찾는 사람에게 여유 공간을 찾아주는 에어비앤비(기업가치 34조원) 같은 걸출한 유니콘을 낳았다. 그러나 올해는 O2O 기업을 찾아보기 힘들다. 당장 실현 가능한 O2O 모델 대부분은 이미 사업화되어 새로운 기업이 등장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반면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신기술 분야에서 새로운 유니콘이 등장하고 있다.

핀테크 스타트업 로빈후드가 출시한 주식거래 앱 화면. 사용자가 주식거래 수수료를 부담하지 않아도 되는 혁신적 서비스다.

기업에 주문과 송장 작성, 결제를 온라인으로 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주는 어비드익스체인지나 기존 기업들이 IoT 기술을 적용한 운영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게 해주는 C3 IoT 등이 그 예다. C3 IoT는 제조·물류업체 사업장 곳곳에 IoT 센서(감지기)를 달아 본사에서 사업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토록 하고,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해서 제공한다. 사이버 보안도 화두로 등장했다. 머신러닝(기계학습)을 활용해 차세대 바이러스 백신을 만든 크라우드스트라이크는 지난해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벌어진 해킹 사건의 범인을 밝혀내 각광을 받았다. 데이터 보호와 백업, 복구를 손쉽게 할 수 있게 하는 소프트웨어를 내놓은 루브릭도 랜섬웨어 '워너크라이' 사태를 계기로 1억8000만달러(약 2000억원) 투자를 유치했다.

사물인터넷 전문 업체 C3 IoT의 센서가 설치된 스마트 빌딩의 지하실 모습

로켓랩은 민간 우주개발 시장에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한 초저가형 로켓을 내놔 주목을 받고 있다. 로켓랩은 로켓 엔진을 3D 프린터로 만들어 제작비를 절감해 150㎏ 화물을 500㎞ 고도에 올려놓는 비용을 500만달러(약 56억원) 이하로 낮추는 것이 목표. 지난 5월 1차 시험 발사에서 일단 로켓을 우주 공간에 보내는 데 성공하면서 7500만달러(약 846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일론 머스크가 세운 우주 발사체 기업 스페이스X의 경쟁자가 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쿼라는 한 사용자가 질문을 올리면 다른 사용자들이 자유롭게 답변을 달 수 있는 사이트를 만들어 18억달러(약 2조300억원)짜리 기업이 됐다. 월 순방문자 수는 2억명이 넘는다. 지난해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오바마 케어' 등 자신의 정책과 관련된 질문에 직접 답을 달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