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잘 날 없던 10년이었다.

김정호 케이피에스 대표(사진)는 2006년 공동 투자를 계기로 케이피에스(KPS) 대표직을 맡게 됐다.

공동 투자는 디스플레이 장비업체 디엠에스와 김정호 대표, 송준호 대경창업투자 대표, 그리고 지금은 회사를 떠난 김중원 전 케이피에스 대표 등이 각각 케이피에스의 지분을 25%씩 갖는 조건으로 추진됐다.

하지만 투자가 결정되자 마자 예기치 않은 봉변을 당했다. 2000년 회사 설립 초창기부터 케이피에스를 운영했던 김중원 전 대표가 갑자기 회사를 떠났다. 연구인력을 비롯해서 영업, 경리 등 직원 대다수를 데리고 나가 경쟁사를 차렸다. 회사에 남은 인력은 기존의 절반도 채 안됐다.

그래도 회사는 그럭저럭 돌아갔다. 투자가 이뤄진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자금 여력은 충분했다. 기존 거래처들과의 거래도 계속 이뤄졌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고 ‘진짜’ 위기가 왔다. 유동성이 얼어붙어 투자가 뚝 끊겼다. 경기가 위축되며 거래도 줄었다. 새로운 공급 계약은 진행되지 않았다. 직원들 월급을 줄 형편도 되지 못해 사실상 회사가 잠시 쉬기도 했다.

김정호 케이피에스 대표이사

◆ 삼성디스플레이 만나 기사회생…초정밀 스테이지 기술력 인정받아

정말 이러다 회사가 문 닫겠구나 싶던 순간 김정호 대표는 뜻밖의 기회를 잡게 된다.

삼성 SMD(삼성디스플레이의 전신)와의 인연이 계기가 됐다. 삼성SMD에서 케이피에스가 생산하는 초정밀 에어베어링 스테이지의 기술력을 인정해 갤럭시 S1 생산을 위한 마스크 인장기 공급을 맡긴 것이다.

김정호 케이피에스 대표가 마스크를 들고 마스크 인장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초정밀 스테이지는 기계 장비가 사용자의 의도에 맞게 오차 없이 작동하도록 해주는 일종의 설비 플랫폼이다. 스테이지를 기반으로 다양한 기계 장비를 응용해서 제작할 수 있다.

삼성SMD가 케이피에스에 요청한 마스크 인장기는 휴대폰 디스플레이 제작에 쓰이는 마스크를 적정한 힘으로 당기는 역할을 한다. 마스크를 정확하게 당겨야만 디스플레이에 RGB(빨강·초록·파랑)가 서로 섞이지 않고 균일하게 배열될 수 있다. 마스크 인장기는 케이피에스의 초정밀 스테이지를 토대로 만드는 것이다.

당시 국내에서 초정밀 에어베어링 스테이지를 통해 마스크 인장기를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은 케이피에스를 포함해서 4개 뿐이었다. 그 중에서도 케이피에스는 생산의 처음부터 끝까지 외부업체의 부품 없이 독자적으로 설비를 제작할 수 있는 유일한 업체였다.

케이프에스의 초정밀 에어베어링 스테이지

처음에는 케이피에스처럼 규모가 작고 인지도 없는 기업이 초정밀 에어베어링 스테이지를 만든다는 데 업계의 의구심이 많았다. 또 설사 만들었다고 해도 이를 공업화해서 대량 생산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케이피에스가 ‘일생일대작’을 만들었다고 비아냥 거리는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삼성SMD가 케이피에스를 찾아가 기술력과 생산 역량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케이피에스의 가능성을 믿어 보기로 한 삼성 SMD는 곧바로 계약을 추진했다. 그렇게 1년 매출액이 10억원 수준이던 케이피에스는 2010년 48억원, 2011년 78억원으로 매출액이 급성장하며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 케이피에스 기술력의 중심에는 김정호 대표…호랑이 잡으러 야스카와전기 입사

삼성이 인정한 케이피에스 기술력의 중심에는 김정호 대표가 있었다.

김 대표는 1985년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해 그 해 효성중공업에 입사했다. 그리고 그가 회사생활을 한창 왕성하게 하던 1989년 효성은 일본 야스카와전기와 서보모터(servo moter) 기술제휴를 맺었다.

서보모터는 기계가 명령에 따라 원하는 속도로 목표한 위치에 정확하게 이동하고 작업을 수행하도록 하는 제어 기구다. 사람으로 치면 일종의 관절과 근육 역할을 한다. 케이피에스가 생산하는 초정밀 스테이지의 핵심 부품도 서보모터다.

하지만 야스카와 전기가 제휴만 맺고 기술 이전이나 노하우 전수를 소극적으로 하자 결국 김 대표는 효성중공업을 그만두게 된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1996년 야스카와전기의 한국지사로 직장을 옮긴 것이다.

7년 동안 야스카와전기에서 일하던 그는 서보모터에 빠삭한 전문가가 됐다. 서보모터는 반도체, 자동차, 제철, 방산 등 모든 산업에 있어서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 덕분에 그는 산업 이곳 저곳에 몸담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2002년 야스카와전기를 그만뒀을 때는 반도체 장비업체 제이티(089790)에서 일하기도 했다.

케이피에스는 벤처 투자를 업으로 하는 송준호 대표와 인연이 닿아 뛰어들게 됐다. 동종 업계에서 알고 지내던 김중원 전 대표가 송 대표를 소개해줬고 송 대표와 뜻이 맞아 함께 케이피에스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송 대표는 김중원 전 대표가 케이피에스를 떠나고 회사에 위기가 왔을 때도 항상 김정호 대표 옆에 있어주며 든든한 버팀목에 돼줬다. 송 대표는 케이피에스가 어려울 때도 투자금을 더 밀어주며 회사에 애정을 갖고 직원들을 북돋아줬다.

현재 송 대표는 케이피에스 최대주주이자 비상무이사를 맡고 있다. 별도로 액정표시장치(LCD) 부품업체인 디씨피를 대표이사로서 운영하고 있다. 그는 디씨피를 통해 투자금을 출자해 케이피에스의 중국 진출을 돕기도 했다.

◆ OLED 시장 확대로 수혜 기대…“야스카와전기처럼 100년 가는 회사 만들 것”

경기도 화성시 케이피에스 본사 건물

김정호 대표가 들어오고 10년 동안의 우여곡절 끝에 케이피에스가 코스닥시장에 6일 상장한다.

케이피에스는 지난 8월 23~24일 이틀 동안 기관 수요예측을 통해 공모가를 1만4000원으로 확정했다. 공모 주식수는 총 107만9268주로 공모 총액은 약 151억원이다. 공모로 조달된 자금은 제 2공장 건설에 사용될 예정이다.

케이피에스의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175억4700만원과 27억2300만원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05.09%(89억9100만원) 늘었고, 영업이익은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했다.

또 올해 상반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42억4000만원과 42억6300만원을 기록하며 영업이익의 경우 이미 지난 1년 동안 벌어들인 규모를 넘어섰다.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38.25%(109억6300만원) 증가했다.

케이피에스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률은 30%에 달한다. 김 대표는 “장비 제작의 모든 공정을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데다 야스카와전기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회사 운영을 효율적으로 하기 때문에 비용 절감이 상대적으로 많이 된다”고 설명했다.

케이피에스는 지난 2014년부터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패널 제조사까지 매출처 확대하며 고객사를 다변화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034220)를 비롯해서 중국의 BOE, 티엔마(TIANMA), EDO 등이 주요 고객사로 있다.

케이피에스는 앞으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시장의 확대에 따라 수혜를 입을 것으로 기대된다. 케이피에스의 주력 제품은 마스크 인장기와 마스크 검사장비로 OLED 핵심 공정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하다. 4~6인치 스마트폰 OLED 패널 출하량은 올해부터 2021년까지 연평균 35%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 대표는 “야스카와전기가 2년 전에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며 “야스카와전기를 다녔을 때 직원들은 전쟁 후에도 회사가 딛고 일어서 세계 1위가 됐다는 데 대해 자부심을 가졌는데 이 점이 항상 부러웠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우리 케이피에스도 100년 동안 지속가능한 회사가 되도록 만들겠다”며 “핵심 기술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키워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액면가: 500원

▲자본금: 113억1400만원(2017년 상반기 기준)

▲주요주주(상장 전 기준): 송준호(17.60%), 김정호(10.30%), 최영남(6.50%), 메타-빅솔론 조합 1호(3.50%), 플래티넘-특허기술사업화펀드(1.80%), 디씨피(1.80%)

▲주관사(키움증권)가 보는 투자 위험

-디스플레이 산업의 경기변동에 케이피에스의 영업활동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며, 디스플레이 패널 가격의 변동성 또는 경제 침체의 장기화 등의 이유로 인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OLED 스마트폰의 성장세 둔화 및 매출감소 등이 발생할 경우 패널제조사의 설비투자가 감소될 수 있고 경영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