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에 취직하는데 4년제 대학 학위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IBM 직원의 3분의 1은 대졸 미만 학력이다. ··· 우리는 사이버보안, 데이터 과학, 인공지능(AI) 등의 분야에서 완전히 새로운 역할을 하는 뉴칼라(new collar)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

IBM은 (뉴칼라 인력 양성을 위한) 새로운 교육 모델을 선도해왔다. 5년전 뉴욕에서 관련 학교가 처음 문을 열었고, 조만간 100개로 늘어날 예정이다. 당신이 도와준다면 미국이 필요로 하는 뉴칼라 IT 인력 양성에서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다.”

지니 로메티 IBM 회장이 작년 11월 미국 대선 직후 트럼프 당선자에게 보낸 공개서한이다. ‘블루칼라(생산직)’와 ‘화이트칼라(사무직)’가 아닌 ‘뉴칼라’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례로 알려져 있다. 뉴칼라는 디지털 혁명 시대에 필요한 컴퓨팅 능력을 갖춘 새로운 인재나 직종을 가리킨다.

로메티 회장이 언급한 학교는 2011년 9월 뉴욕 브루클린에서 처음 문을 연 P-테크(TECH) 학교다. IBM이 뉴욕시 교육청, 뉴욕시립대, 뉴욕시립기술대와 손잡고 만들었다. P는 진로(pathway)를 뜻하고, 테크는 고등전문기술대(Technology Early College High School)’의 약자다. 고등학교 4년과 전문대 2년을 통합한 과정이라는 의미다.

P-테크 학교 학생은 9학년(한국의 중학교 3학년)부터 시작해 6년 과정을 마치면 고교 졸업장과 함께 2년제 대학 졸업자에게 수여하는 준학사 학위를 받을 수 있다. 5년 또는 그 이전에 조기 졸업할 수도 있다. 2011년 첫 입학생 97명 중 30여명이 조기 졸업했다.

IT 인력 양성 취지에 맞춰 STEM(과학·기술·엔지니어링·수학)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 빠르면 10학년 때부터 후원 기업에서 현장 실무교육을 받고, 여름방학 때는 인턴십 과정을 밟는다. 학생들이 졸업 후 곧바로 현장에 투입돼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게 목표다.

P-테크 학교는 올 상반기까지 미국 내에서만 55개교로 늘어났다. 재학생은 모두 1만2000명에 이른다. IBM 뿐만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 시스코 등 300여개 기업이 실무 교육과 인턴 채용, 신입사원 채용 우대 등의 지원을 하고 있다. 호주에 7개 학교, 모로코에 2개 학교가 문은 연 것을 비롯해 국제적으로도 P-테크 학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 학교의 또 다른 특징은 기술 발전에서 소외되기 쉬운 계층을 우선적으로 선발한다는 것이다. 학생의 70% 이상이 저소득층 출신이고, 학비는 무료다. 오바마 전(前)대통령은 2013년 뉴욕 P-테크 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이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것을 도와주는 티켓”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P-테크 학교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기업이 교육시스템 혁신에 주도적으로 나서고, 교육 당국이 이를 적극 수용한 것이다. 미래의 인재를 키워내는 데 대한 기업의 관심과 아이디어,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 운영의 유연성이 돋보인다. 한국에선 기업들이 교육 개혁에 적극 나서지도 않지만 고등학교와 전문대 과정을 통합하는 것같은 새로운 시도도 불가능하다.

IBM만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06년 필라델피아에 미래학교(School of the Future)를 설립해 학업 성취도와 의욕이 낮은 저소득층 주거지역 학생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학습모델을 제시했다. ICT 기술 교육과 함께 토론과 문제해결식 수업을 도입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구글 임원 출신이 설립한 알트스쿨(Alt school)과 무료 온라인 강의로 유명한 칸아카데미의 칸랩스쿨(Khan Lab school)도 주목된다. 알트스쿨은 4~14세, 칸랩스쿨은 5~12세를 대상으로 ICT 기술을 활용한 개인 맞춤형 교육을 하고 있다. 나이와 학년이 아니라 학생의 관심사에 따라 반을 편성하고, 프로젝트 단위의 수업을 하는 등 파격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부부가 교육용 소프트웨어 개발에 뛰어든 것을 비롯해 실리콘 밸리 유명 인사들의 교육 투자 사례도 끝이 없다. 많은 미국 기업인들이 인공지능 시대에 맞춰 교육의 틀을 혁신적으로 바꾸고 새로운 인재를 키워내는 것을 자신들의 사명으로 여기고 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여러 차례 한국의 교육열과 교육 경쟁력을 언급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거꾸로 한국이 미국의 교육 혁신을 배워야 한다. ‘기·승·전·대학 입시’인 한국의 교육 시스템과 정책으로는 미래에 대비할 수 없다. 인재 수요자인 기업의 관심과 함께 기업 주도 교육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정책과 제도의 개혁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