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타이어 매각을 둘러싸고 정치권과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기업회생’이라는 매각 작업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 특히 산업통상자원부가 정치권의 반대 여론을 의식해 매각 승인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꼬여버린 매각 작업의 실타래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방위산업기업으로 분류되는 금호타이어를 인수하기 위해선 산업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와 관련 업계에서는 산업부가 금호타이어 매각을 승인하지 않으면 국제적 망신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중국계 국영기업 더블스타보다 우선매수청구권을 가진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인수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도 있지만, 매각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4일 “산업부가 금호타이어 매각에 있어 방산 매각 승인 키(KEY)를 쥐고 있다”며 “금호타이어 매각에 따른 정치적 영향과 경제적 영향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어 고민”이라고 말했다.

◆ 상표권은 마무리…‘방산 매각 승인’ 새로운 논란

조선DB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및 금호산업은 지난 1일 산업은행의 상표권 수정안을 수용했다. 금호타이어 매각에 장애물이었던 상표권 논란은 일단락 된 것이다.

앞서 채권단은 박 회장이 제안한 상표권 사용료율로 연매출의 0.5%, 의무사용 기간 20년을 모두 수용했고 이를 박 회장 측에 전달했다. 박 회장은 당초 상표권 사용에 대한 독소조항을 달아 사실상 매각을 반대하겠다는 뜻을 전달했지만, 이에 대한 비판이 빗발치자 한 발 물러났다.

다만, 산업부의 방산 매각 승인 문제가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금호타이어 매각에 새로운 쟁점이 된 방산 매각 승인 논란은 백운규 산업부 장관이 불을 지폈다. 백 장관은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대회실에서 열린 자동차업계 간담회 참석 직전 기자들과 만나 "더블스타에서 가격을 인하해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에 박 회장에게 우선매수청구권이 생겼다"며 "최고 좋은 것은 그쪽(박 회장)에서 컨소시엄 형성해서 (인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방산 승인의 열쇠를 쥔 산자부 장관이 금호타이어를 박 회장이 인수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이다.

시장에선 백 장관이 더블스타의 금호타이어 인수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지난 1월 금호타이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더블스타는 지난달 16일 우리 정부에 방산산업 인수를 위한 매매 승인을 신청했다.

채권단과 더블스타는 곤혹스러운 분위기다. 금호타이어가 가진 방산 부문은 사실상 높은 수준의 보안을 요하는 기술이 아니며, 실제 금호타이어의 방산 매출은 전체 매출의 약 0.2%에 불과하다. 금호타이어의 한해 평균 매출이 2조3000억~2조4000억원 수준인데, 방산 부문 매출은 30억~40억원 정도다.

정부에서도 ‘금호타이어를 방산 업체로 볼 수 없다’는 기류가 강하다. 금호타이어의 방산 부문을 이유로 중국 기업으로의 매각에 반대하는 것은 ‘국제 망신’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산업부 관계자는 "금호타이어 매각을 방산 문제로 산업부가 승인내주지 않으면 국제적인 망신을 당할 수 있다"며 "금호타이어 매각에 서로 정치권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백 장관의 발언은 정치적 문제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연일 정치권이 개입해 금호타이어의 중국 기업 매각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고 특히 호남 기반의 국민의당은 지난 대선 운동에서 금호타이어를 직접 방문해 해외 매각을 반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산업부가 금호타이어 매각을 승인할 경우 오는 10월에 있을 국정감사에서 정치권의 질타를 맞을 수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금호타이어 매각에 대한 박 회장의 정치권 입김이 너무 강해, 여기저기서 매각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며 "실제 금호타이어의 정상화를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 호도되고 있다"고 말했다.

◆ 채권단-더블스타, 고용보장 기간 연장 '관건'

채권단과 더블스타의 매각가 협상도 난제다. 앞서 더블스타는 금호타이어 실적이 나빠졌다며 매각가격을 9550억원에서 8000억원으로 16.2% 낮춰달라고 요구했다. 채권단은 더블스타와 매각가 협상 등을 마무리 짓는 대로 주주협의회에서 매각가 인하안을 정식 상정한다.

산업은행은 더블스타와 종업원 고용 보장 2년 연장, 국내사업장 보전 등 협상도 진행 중이다. 금호타이어의 매각가를 낮추는 대신 종업원들의 고용보장을 늘려달라는 것이다.

채권단이 고용보장 기간 연장을 요구하는 것은 정치권과 광주 지역사회가 ‘고용보장 문제’를 해외매각 반대 논리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고용보장 기간을 연장할 경우 해외 매각 반대 논리가 다소 희석될 수 있다는 것이 채권단의 복안이다. 채권단은 최근 중국으로 건너가 더블스타와 고용연장에 대해 협상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더블스타는 고용보장 연장에 반대하는 입장이어서 협의가 원만히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채권단과 더블스타의 협상이 타결된다 해도 채권단은 박 회장 측과 우선매수청구권 협상을 또 진행해야 한다. 채권단은 올해 초 1차 매각 때 불허했던 박 회장의 컨소시엄 구성을 통한 인수를 이번에 허용했지만, 양측의 계약 과정에서 협상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채권단 관계자는 "구체적인 매각 협상에 대해 진행사항을 말할 수는 없다"면서 "다만, 채권단 입장에서는 매각가를 낮추는 대신 매각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고용보장를 기존보다 더 연장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