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까지만 해도 별난 신종 금융상품 정도로만 여겨졌던 가상통화가 급격히 몸집을 불리면서 전 세계 금융 당국의 규제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주요 가상통화 가격이 급등하고, 새로운 가상통화가 물밀듯 시장에 쏟아져 나오면서 올해 초 182억달러이던 가상통화 시가총액은 9월 초 현재 1771억달러로 10배 가까이 커졌다. 가상통화의 대표주자인 비트코인 가격이 안전자산의 대명사인 금(金) 가격을 넘어선 것도 상징적인 사건이다. 2년 전만 해도 금 1온스 가격의 6분의 1에 불과했던 비트코인 한 단위 가격은 올해 처음 금 가격을 넘어선 후 지금은 금값의 3배에 달한다.

국내에서도 가상통화 하루 거래량이 코스닥을 넘어서며 주류 금융시장을 위협하는 존재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1일 '가상통화 관계기관 합동 태스크포스(TF)' 회의를 갖고 "가상통화의 부정적 영향에 적극 대응하겠다"며 본격적인 규제에 나섰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지 못한 이 새로운 '물건'을 두고 어떤 방향으로 접근해야 할지 각국 정부 사이에서도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가상통화는 돈일까, 상품일까, 아니면 일종의 유가증권일까. 가상통화를 정의하는 시각에 따라 각국의 규제도 각각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가상통화, 정체가 뭘까

가상통화는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기존 금융제도에 대한 불신과 반감으로 탄생했다. 기존의 중앙집권적 통화 시스템 대신 평등하고 분산적인 새로운 통화 시스템을 만들어보자는 구상이었다. 중앙은행이 독점적으로 발행량을 조절하는 기존 통화와 달리 가상통화는 전체 발행량이 미리 정해져 있고, 참여자들이 암호화된 데이터를 풀어내는 '채굴'이란 과정을 통해 화폐(가상통화)가 발행된다. 가상통화의 또 다른 특징은 거래 시 중개기관이 없다는 점이다. 현재의 통화를 온라인으로 다른 사람에게 보내려면 은행처럼 신뢰성 있는 중개기관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가상화폐는 이런 중개기관 없이도 사용자끼리 거래할 수 있는데,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 블록체인이다. 거래 정보를 기록한 장부를 특정 중개기관의 중앙서버에 보관하는 대신 네트워크에 분산시켜 공동으로 기록하고 검증·관리하는 기술이 바로 블록체인이다.

러시아의 가상통화 거래소 비트코인 등 가상통화 가격이 급등하면서 이를 규제하려는 각국 정부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러시아 재무장관은 최근 비트코인을 “위험성 높은 금융 피라미드”로 규정하고, 인가받은 투자자에게만 거래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9일 모스크바에 있는 한 가상통화 거래소에서 투자자들이 모니터를 들여다보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처럼 가상통화는 기존의 통화를 대체한다는 목표로 탄생했지만, 아직까지는 제대로 된 통화로 인정받지 못한다. 통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3가지 기능이 결여돼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모든 경제학 교과서에는 통화가 세 가지 본질적 기능, 즉 가치의 척도 기능, 가치의 저장 기능, 교환의 매개 기능을 수행한다고 돼 있다. 이를 위해서는 대중적으로 널리 쓰일 수 있도록 수량이 충분해야 하고,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를 측정할 수 있도록 가치가 안정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가상화폐는 아직까지 지급 수단으로 활용되기보다는 주로 투기 목적으로 거래되는 데다 가격 변화가 매우 심하고 언제까지 존속할지 장담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대부분 국가는 가상통화를 통화가 아닌 상품(commodity), 금융투자 대상, 자산, 전자적으로 표시된 유가증권 등으로 간주한다. 한국에서는 금융위원회가 가상통화를 "블록체인에 기반해 가치를 전자적으로 표시한 것으로, 현 시점에서 화폐나 통화로 보기 어렵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가상통화라는 용어도 법정통화나 화폐라는 인식을 가져오므로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가상통화의 통화 기능을 인정하는 나라들도 하나 둘 생기고 있다. 일본은 올해 4월 자금결제법을 개정해 가상통화를 통화의 일종으로 인정했고, 미국도 일부 주(州)와 판례에서 비슷한 사례가 나오고 있다.

통화냐 자산이냐… 문제는 세금

가상통화의 정체에 논의가 분분한 까닭은 그 정의에 따라 가상통화를 둘러싼 많은 규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령 가상통화가 통화로 인정되면 자금세탁방지법이나 외환거래법 등 통화와 관련된 각종 규제를 받게 된다. 가상통화를 둘러싼 여러 규제 중 가장 큰 관심거리는 세금이다. 가상통화를 정식 통화로 인정한다면 이를 거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차익에 세금을 부과할 근거가 없다. 이에 따라 일본은 가상통화의 화폐성을 인정하면서 가상통화 거래에 따른 소비세를 폐지하고 비과세로 전환했다. 가상통화를 민간통화로 분류한 영국도 부가세를 없앴다.

반면 가상통화를 상품이나 재화 또는 자산으로 분류하는 나라들은 그 거래 과정에서 발생한 이익에 대해 부가세나 양도소득세 등을 부과한다. 미국 국세청은 가상통화를 자산으로 규정해 자본이득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고, 중국은 비트코인을 상품의 일종으로 분류해 개인소득세를 매긴다. 한국에서는 아직 가상통화에 세금이 붙지 않지만, 금융 투자로 발생한 이익에 세금을 부과하듯 가상통화에도 비슷하게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승희 국세청장은 지난 6월 "가상화폐에 대해 양도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안전성·투명성 부족이 규제 불러

지금까지 전 세계 금융 당국은 가상통화를 규제하고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기보다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강했다. 하지만 가상통화 시장이 급속히 커지고 이로 인한 부작용도 속출하자 규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가상통화 특유의 익명성 때문에 가상통화가 범죄나 테러, 마약 자금 등의 거래에 사용되는 것이 이런 부작용의 일부다. 최근 국내에서는 마약 대금이나 불법음란물 사이트 이용 요금을 비트코인으로 받은 일당이 검거되기도 했다.

거래의 안전성도 문제다. 가상통화의 장부(블록체인)는 분산 보관되기 때문에 해킹으로부터 상당히 안전하다고 하지만, 가상통화 매매를 중개하는 거래소들은 신생·군소업체가 많아 보안에 취약한 경우가 많다. 지난해 8월에는 세계 최대 가상통화 거래소 중 하나인 홍콩의 비트파이넥스가 해킹당해 6500만달러어치 비트코인이 도난당했고, 한국에서는 국내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이 해커들에게 뚫려 고객 3만명의 개인 정보가 유출되는 사고가 터졌다. 가상통화 가격이 급등하며서 이를 미끼로 한 유사수신행위나 다단계 사기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국 금융 당국이 이번에 가상통화에 대한 규제의 칼을 빼든 것도 이 때문이다. 러시아 정부도 최근 "피라미드 사기를 방지하기 위해 자격을 갖춘 투자자에게만 가상통화 거래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호주 정부는 지난달 17일 "범죄자가 숨을 곳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선언과 함께 가상통화에 대한 규제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