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이 자동차 전장(電裝) 사업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LG전자는 지난달 23일 미국 자동차 산업의 중심인 디트로이트 인근에 전기차 부품 공장을 세우기로 한 데 이어, 29일 유럽 차량용 조명업체 인수전에 나선다고 밝혔다. LG디스플레이는 독일 벤츠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에 내년부터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조명 제품을 납품하기로 했고, LG이노텍은 자율주행차량 간 무선통신에 필요한 핵심 부품인 차세대 통신 모듈 개발에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고 밝혔다.

자동차 전장은 텔레매틱스(자동차 무선통신 기술), 인포테인먼트(정보 오락 장치), 디스플레이 등 자동차에 들어가는 다양한 전기·전자 부품 장치를 뜻한다. 시장조사 기관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는 전기차·자율주행차·커넥티드카(Connected Car) 등 스마트카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2015년 2380억달러(약 267조원)였던 전 세계 전장 시장 규모가 2020년엔 3283억달러(약 369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자동차 전장 중 하나인 인포테인먼트. 길 안내 등 운전자에게 필요한 정보인 ‘인포메이션(information)’과 음악 등 다양한 오락거리인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를 통합한 시스템이다.

LG그룹은 2013년 7월 자동차 부품 설계 기업 V-ENS를 LG전자에 합병한 이래 자동차 전장 분야 투자를 확대해 왔다. LG그룹 관계자는 "전장 사업은 미래 먹거리 육성 차원에서 구본무 회장이 힘을 싣는 분야"라며 "구본준 부회장도 LG전자 CEO(최고경영자)로 있을 당시 VC(자동차부품)사업본부를 신설했을 만큼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대규모 M&A 등 거침없는 투자 확대

그룹 전장 부문 주력 기업인 LG전자의 행보는 숨이 가쁠 정도다. 지난 석 달간 독일 벤츠에 자율주행 카메라 공급, 자율주행차 임시 주행 허가 획득, VC사업본부 인천 캠퍼스 증설 결정, 미국 전기차 배터리팩 공장 착공, 오스트리아 차량용 조명업체 ZKW 인수전 참여 등 굵직한 소식을 잇달아 쏟아냈다.

특히 ZKW 인수전 참여는 전장 사업에 대한 LG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줬다. 업계가 추정하는 인수 예상액은 1조원대. 성공하면 LG그룹 역대 M&A 중 최대 기록이 된다. ZKW는 독일 벤츠·BMW·아우디·포르셰, 영국 롤스로이스, 스웨덴 볼보 등 유럽 유명 자동차 업체들을 거래처로 두고 있다.

박강호 대신증권 연구원은 "자동차 전장 부품은 오랜 시간 신뢰성을 검증받아야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며 "ZKW 인수를 통해 LG는 단번에 유럽의 주요 자동차 업체들을 거래처로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뿐 아니다. 올해 LG전자는 VC사업본부 설비 투자에 회사 주력인 생활가전(5933억원)과 비슷한 규모인 5440억원을 쏟아붓고 있다. VC사업본부가 있는 인천캠퍼스는 내년 6월 준공을 목표로 증설 공사를 벌이고 있다. 근무 인력도 올해 1300명에서 내년 2440여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자동차과)는 "LG는 자동차를 '움직이는 가전제품'이라는 개념으로 접근, 다른 기업보다 몇 년 앞서 전장 사업에 뛰어들었다"며 "올해는 VC사업본부에서만 3조원 이상 매출을 낼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계열사 간 시너지도 기대

LG의 다른 계열사들도 자동차 전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LG화학은 올 상반기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일본 파나소닉에 이어 시장점유율 기준 2위(12.3%) 업체로 올라섰다. LG화학의 전기차 배터리 출하량은 지난해 상반기의 2.6배로 급증했다.

이를 통해 계열사 간 시너지도 기대된다. LG전자의 센서·전기모터, LG화학의 배터리 등이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카메라모듈 등 다른 부품 수주에도 긍정적 효과가 유발되는 것이다. 실제로 스위스 투자은행 UBS에 따르면 GM 전기차 볼트(Bolt)에 들어가는 부품 가운데 절반 이상이 LG 제품이다.

자동차 전장 사업 덕분에 LG 주요 계열사의 주가도 상승세다. LG전자의 주가는 8월 30일 ZKW 인수 기대감이 반영되면서 10% 이상 급등했다. LG화학과 LED(발광다이오드) 부품 업체인 LG이노텍의 주가도 올해 들어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이종욱 삼성증권 연구위원은 "자동차 부품에서 전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이면 40%를 넘게 된다"며 "LG는 스마트폰, TV, 생활가전 분야에서 쌓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며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