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사업에 재정 연(年) 2조원"(4월, 대통령 선거 전)→"8000여억원"(7월 28일)→"4638억원"(8월 29일)→?

문재인 대통령의 대표적 선거 공약 중 하나였던 '총액 50조원 규모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현실의 벽 앞에서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정부가 8·2 부동산 대책을 통해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서울을 올해 도시재생 대상지에서 제외한 데 이어, 이번에는 총사업비의 70%를 충당해야 하는 정부 예산과 주택도시기금이 5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에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용두사미로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임대주택 건설도 도시재생"이라는 정부

국토교통부가 29일 발표한 2018년도 예산안을 보면, 도시재생사업 예산은 4638억원으로 책정됐다. 올해 예산(1452억원)의 3배 수준으로 대폭 늘었다. 이와 별도로 국토부 소관 기금인 주택도시기금을 통해 도시재생 사업에 8534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는 소규모 주택정비사업에 4500억원을 지원하고, 복합개발에 3448억원을 출자·융자하고, 상가 리모델링 등 수요자가 원하는 형태의 도시재생 프로그램에 470억원을 지원한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도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삶의 질 개선을 위한 도시재생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 647번지 일대 봉제공장이 모인 골목길에 만들어진 ‘봉제거리 박물관’. 1970년대 우리나라 산업의 중심지였지만 이후 봉제산업이 쇠퇴하면서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가 됐다. 2014년부터 도시재생사업이 추진되면서 보도와 간판, 전선을 깨끗하게 정리했고, 건물 주변을 정비했다. 지금은 재봉틀 소리를 들으면서 봉제산업의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살아 있는’ 거리 박물관이 됐다.

하지만 이날 발표된 재정 투입 계획은 애초 대통령 공약 안(案)에서 크게 후퇴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이던 4월 초 "연간 10조원씩을 투입해 매년 100곳씩 임기 내 500곳에 대해 도시재생 사업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사업에 필요한 재원 마련 계획으로 ▲재정 2조원 ▲주택도시기금 5조원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SH(서울주택도시공사) 사업비 3조원 등을 제시했었다. 이 계획을 내년 예산안과 비교하면 재정은 20%로, 기금은 17% 수준으로 각각 축소된 것이다. 여기에 공기업 사업비 역시 채무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작년 말 기준 LH와 SH의 부채 규모는 각각 80조원, 16조원 수준이다.

국토부는 "사업 축소는 아니다"는 입장이다. 도시재생사업기획단 측은 "재정 2조원은 정부 예산에 지방비 부담, 각 부처 도시재생 관련 사업 지원금을 합친 금액"이라고 했다. 여기에 국토부 주택기금과 실무자는 "공적 임대주택에 13조원을 쏟아붓는데, 그중에는 도시재생 지역에 지어지는 임대주택도 있다"며 "이 물량을 도시재생 지원 기금에 포함하면 5조원이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도시재생 지역에서 부동산과 관련해 집행한 돈은 모두 공약한 10조원에 포함된다'는 논리인 셈이다.

실망 속 "이 기회에 속도 조절" 의견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 논리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최막중 서울대 교수는 "도시재생은 죽어가는 지역을 활성화하는 것인데, 거기에 공공임대주택을 짓는 것은 도시재생과는 다른 문제"라며 "애초 '도시재생'의 의미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학계에서도 아직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밀어붙이는 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기금에서 도시계정과 주택계정은 엄연히 분리돼 있는데 정부가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한다. 그런 식이면 연간 10조원이 아니라 20조원도 뚝딱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실망과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우선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재정이 튼튼하고 도시재생에 적극적인 서울시조차 올해 도시재생 예산 규모가 2300억원인 상황에서, 총 1조5500억원을 지자체에 부담시키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비수도권 한 지자체 도시재생 부서 관계자는 “공약에는 분명히 재정을 2조원 투입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이제 와서 ‘4000억원만 낼 테니 나머지는 지자체 등이 알아서 하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대통령 후보가 자신의 권한 밖인 지자체 재정을 공약에 이용한 것밖에 더 되느냐”고 말했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정부가 정권 초기에 무리하게 숫자나 규모에 집착하지 않기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미 국토부도 지난달 새 정부 도시재생과 관련, “대상 지역 절반 이상을 1000가구 규모(5만㎡)의 소규모 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하며 사실상 사업 축소를 시사했었다. 5만㎡는 가로·세로 200여m의 ‘동네’ 수준이다.

이 기회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자금 문제로 애초 목표 달성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은 커졌지만, 어디를 어떻게 재생할 것인가를 먼저 정하고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