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아이코스, 글로 등 궐련형 전자담배에 대한 개별소비세를 인상하는 내용의 세법 개정안을 전체회의에서 의결하는 데 실패했다.

왼쪽부터 필립모리스의 ‘아이코스’ 충전기와 본체, BAT의 ‘글로’. 앞의 담배는 각각 아이코스 ‘히츠’와 글로 ‘네오스틱’.

28일 기재위는 전체회의를 열고 김광림 자유한국당 의원이 발의한 개별소비세법 개정안을 상정해 의결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개정안은 개소세를 현재 1갑당 126원에서 594원으로 올리고 비(非)궐련형 담배는 1그램당 51원의 개소세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막판에 여야가 개소세를 400~500원 수준으로 낮추는 방향의 수정안을 마련하면서 전체회의 의결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일부 의원들이 끝까지 반대 입장을 고수하면서 재논의를 하기로 했다.

개소세 인상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반대 입장을 밝힌 조경태 기재위원장은 "간접세는 직접세에 비해 보편적인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누진세가 적용되지 않아 소득이 낮은 사람의 세 부담이 더 큰 만큼 담뱃세 인상에 대해 좀 더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담배 중과세 여부를 결정할 때 외부 불경제가 얼마나 심각하냐를 봐야 한다"면서 "담배의 유해성은 타르와 니코틴 함량이 아니라 발화를 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는데, 그런 면에서 아이코스는 발화가 없는 제품"이라고 말했다.

여야는 지난 22일 국회 조세소위에서 이 같은 내용의 개정안에 만장일치로 합의했고 23일 전체회의에서 의결할 예정이었으나 조경태 기재위원장을 비롯한 일부 의원이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28일로 논의가 미뤄졌다.

이날 전체회의에서도 여야가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서 합의가 순탄치 않았다. 여야가 제시한 의견은 ①일반 담배와 같은 개별소비세(1갑 당 594원)를 부과할 것 ②일반 담배보다 낮은 개소세를 부과할 것 ③유해성 분석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과세를 연기할 것 ④개소세 인상 반대 네 가지다.

◆ 정부, 왜 아이코스 증세 주장했나

정부와 김광림 의원이 궐련형 전자담배에 대한 세금 인상을 주장하는 이유는 일반담배와 다를 바 없으면서도 현저히 낮은 세금을 내고 있어 조세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궐련형 일반 담배는 한 갑에 4500원이고, 이중 담배소비세, 지방교육세, 건강증진부담금, 부가가치세 등 제세부담금이 3318원이다. 궐련형 전자담배는 스틱 한 팩(20개비)에 4300원인데 제세부담금이 1730원이다. 궐련형 일반 담배는 1177원, 궐련형 전자담배는 2561원이 남는다.

아이코스 출시 직전까지 국내에는 액체형 전자담배에 대한 과세 기준만 있어 정부와 국회가 급하게 현행 담배 과세체계를 참고해 궐련형에 대한 과세 기준을 만들었다. 그런데 현행법상 담배는 가격이 아니라 중량에 비례해 세금을 매기고 있어, 상대적으로 무게가 가벼운 궐련형 전자담배에 가벼운 세금이 매겨지게 됐다.

전자담배가 기존 일반담배 시장을 대체하면 과세 공백이 심해질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앞서 아이코스와 글로가 출시된 일본 사례를 보면 빠른 속도로 일반 담배 시장을 대체할 것으로 추정된다. 궐련형 전자담배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게 아니라 기존 시장을 대체한다면 세수 감소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국회 조세소위에서 궐련형 전자담배에 대한 개소세 인상에 만장일치로 합의한 것도 과세 공백을 최소화 하자는 데 의견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 쟁점 3가지…유해성·가격인상·특혜 여부

기재위에서 여야 국회의원의 의견이 엇갈린 지점은 크게 세 가지다. 궐련형 전자담배의 유해성과 과세를 연관지어 볼 것인지와 세금 인상이 전자담배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지, 그리고 외국계 담배회사에 특혜를 줘야 하는지 여부다.

① 아이코스, 일반담배보다 유해성 낮다는데

필립모리스와 BAT코리아 측에선 궐련형 전자담배를 출시하면서 일반 담배보다 인체에 덜 유해하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필립모리스 측은 "54가지 유해물질을 분석한 결과 아이코스 증기 속 유해물질은 일반 담배 연기의 평균 10%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반면 스위스 베른대 연구팀은 아이코스 증기에서 살충제 원료인 아세나프텐이 일반 담배의 3배 수준으로 검출됐다는 연구 결과를 최근 내놓았다. 국제적으로도 궐련형 전자담배에 대한 유해성은 아직 확실하게 검증되지 않아 아이코스가 출시된 주요국에선 세금을 제각각 부과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최근 자체 조사에 착수했지만 언제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덜 유해하다'가 '무해하다'는 뜻은 아니다. 이런 이유로 보건복지부 등 보건당국은 궐련형 전자담배를 금연보조기구로 지정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일단 과세를 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만약 아이코스가 일반담배보다 덜 유해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더라도, 세금을 낮게 부과할 근거가 되진 않는다. 현행법은 담배의 유해물질 함량이 아니라 태우는 방식과 무게에 따라 과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② 세금 올리면 아이코스 가격도 인상되지 않나

아이코스에 대한 세금이 오르면, 제조사에서 가격을 인상해 소비자 부담으로 고스란히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일각에선 아이코스 증세 시도에 '서민 증세'라고 이름을 붙여 비난하고 있다.

그런데 필립모리스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제품 가격과 세금 간 상관관계가 크지는 않은 것처럼 보인다. 세금이 높다고 필립모리스가 가격을 무조건 올리는 것도, 반대로 낮다고 무조건 내리는 것도 아니었다.

예컨대 이스라엘은 최근까지 궐련형 전자담배를 담배로 보지 않아 세금을 안 매겼는데, 일반담배와 궐련담배 가격이 같았다. 반대로 러시아는 일반 담배에 비해 아이코스 세금 비중이 57%로 주요 유럽국가에 비해 높은 편이었는데, 아이코스가 일반 담배보다 싼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제조사가 담배가격을 매길 때 각 국의 조세체계 뿐 아니라 흡연율 등 국가별 다양한 여건을 고려한다는 의미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우리나라가 아이코스에 궐련과 비슷한 세금을 매긴다고 가격이 오를 거라고 단정하는 건 성급하다"고 말했다.

③ 외국계 담배회사에 특혜 줘야 하나

궐련형 전자담배에 대한 현행 과세체계를 그대로 유지하는 건 외국계 담배회사에 대한 특혜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아이코스와 글로의 제조사는 각각 필립모리스와 아메리칸 브리티시 타바코(BAT코리아)다.

이들 회사는 정부에 아이코스와 글로 판매량이 얼마나 되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내부 영업기밀이라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과세당국인 기재부에선 관세청 통관 자료를 통해 현재까지 2000만갑이 팔렸다고 추산하고 있을 뿐이다. 향후 세수 감소가 얼마나 될 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한다.

김성식 국민의당 의원은 "문제의 핵심은 궐련형 전자담배 판매로 인한 이익을 필립모리스가 더 가져가느냐 아니면 국가 재정으로 가져와 제대로 쓰도록 하느냐"라면서 "과세 결정을 미루는 만큼 특정 다국적 기업은 앉아서 저율의 개소세를 자기 이윤으로 가져간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