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인 초이 제일기획 전무(부산국제광고제 필름 부문 심사위원장) 인터뷰

“좋은 광고는 사람의 심장을 흔들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 24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17 부산국제광고제'에서 만난 웨인 초이 제일기획 전무(CCO, Chief Creative Officer, 54세)는 “기술을 그저 멋있게 소개하는 건 의미가 없다”며 불변의 광고 원리는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올해 10해째를 맞은 부산국제광고제에서 필름(영상) 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초이 전무는 앱, VR(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한 광고로 세계 3대 광고제인 칸 라이언즈, D&AD, 더 원쇼(The One Show)에서 상을 휩쓴 한국 광고계의 스타로 꼽힌다. 캐나다 국적의 초이 전무는 1963년생으로 9세에 캐나다로 이민간 교포 1.5세다.

국내 최대 광고대행사 제일기획의 제작1본부장으로 삼성전자, 한국타이어, GM 등 주요 광고주의 광고 제작을 총괄한다. 해외에서 일하던 시절엔 코카콜라, 나이키, 도요타 등 세계 유수의 기업 광고를 제작했다. 최근엔 D&AD, ADFEST 등 세계 유수의 광고제 심사위원장을 맡았으며 세계 최대의 광고제인 칸 라이언즈에서도 단골 심사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웨인 초이 제일기획 전무.

이번 부산국제광고제는 크리에이티브와 기술의 시너지를 뜻하는 ‘Creativity +-×÷ Technology’를 테마로, 행사 전반을 ‘4차 산업혁명’, ‘애드텍(AD tech)’ 관련 주제로 꾸몄다. 그러나 ‘올해의 그랑프리(Grand Prix of the Year)’를 거머쥔 ‘그레이엄을 만나다(Meet Graham)’와 ‘자식을 대신한 유기견(Pedigree Child Replacement Programme)’은 특별한 기술 없이 감동을 자아낸 작품이다.

초이 전무는 “기술을 테마로 내건 광고제에서 전통적인 작품이 최고상을 받았다”며 “모바일 환경에 맞는 색다른 광고를 만들어가야 하지만, 결국 광고의 핵심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초이 전무와 일문일답이다.

-1992년에 광고 일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당시에는 인터넷도 보급되지 않은 시절이다. 광고업계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처음 광고업을 시작할 때와 지금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

“1992년부터 일을 시작해 캐나다에서 10년, 벨기에에서 4년, 한국에선 2007년부터 10년간 일했다. 가장 큰 차이는 미디어 채널의 변화다. 1992년 당시엔 ATL(Above The Line, TV·라디오·신문·잡지 등 4대 매체)에만 주력하면 됐지만 현재는 채널이 굉장히 많다. 과거엔 기업이 만들어 온 제품의 광고를 만들어 4대 매체에 집행하면 됐다. 그러나 이제는 제품을 기획하는 단계부터 광고대행사와 광고, 마케팅 방안 등에 관해 협의한다. 더 깊은(In depth)관계가 된 것이다. 광고주와 대행사가 ‘DNA’를 함께 가져가야만 하는 환경이 됐다.

내가 처음 일을 시작할 땐 광고업이 굉장히 ‘섹시’한 직업이었다. 한국에 처음 왔던 10년전 만해도 그랬다. 그러나 이젠 20대들이 게임, SNS 등 IT업계에 관심을 많이 가진다. 광고회사가 이런 회사들과 경쟁을 펼쳐야 하는 상황이 됐다. 똑똑한 친구들의 선택지가 많아졌다.”

-20대인 기자도 10대의 유행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광고인은 '젊은' 감각을 유지해야 하는데, 크리에이터로서 변화에 적응하기 어렵지 않나.

“자녀들이 20대다. 자식들에게 배우는 게 많다. 자녀 세대의 새로운 음악, 영화를 접해야 유행을 따라갈 수 있다(Up to date). 또 내가 자녀들에게 80년대 영화나 음악을 소개해주면 그들도 ‘쿨’하다고 생각한다. 밀레니얼들에게 도리어 배운다. 국제광고제에서 심사위원 활동을 하며 봉사활동 하는 젊은이들과도 대화를 자주 나눈다. 문화적인 교류를 많이 해야한다.

내가 한국에 온 2007년 스마트폰이 탄생했다. 그때부터 우리가 하는 행동이 많이 바뀌었다. 이제는 모두가 길거리에서 ‘기도하는’ 듯 핸드폰을 본다. 식사 자리에서도 SNS용 사진을 찍고 먹는다. 자신의 행동을 즉각 리포트하는 것이다. 최근 한 음악 페스티벌에 갔다. 모두가 공연은 안보고 ‘셀카’만 찍고 있었다. 다들 나르시스트가 된 거 같다. 내가 어떻게 생겼는가, 내 목소리가 어떤가, 어떤 옷을 입는가 등에 신경을 많이 쓰는 문화가 됐다. 광고인으로써 이런 문화의 변화를 계속 주시해야 한다.”

-트렌드의 변화는 주어진 조건이다. 광고의 크리에이티브도 트렌드를 따라야 할 텐데.

“트렌드를 따라가면 항상 늦는다. 자신감을 가지고 트렌드가 오기 전에 먼저 시작해야 한다. 이런 경우가 결과 또한 더 좋다. 광고제에서도 현재의 스타일을 바꾸려는 시도가 좋은 평가를 받는다.”

-부산국제광고제 심사위원장을 처음 맡게 됐다. 심사위원으로는 여러번 참여했는데, 지난 10년간 부산광고제에서 가장 크게 느껴지는 변화는 무엇인가.

“부산국제광고제가 2007년 처음 조직위원회를 구성했다. 내가 한국에 돌아온 해다. 당시엔 미흡한 점이 많았지만 현재는 조직위의 진행, 심사위원과 출품작의 수준 모두 매우 높아졌다. 과거엔 고를만한 작품이 없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칸 라이언즈, 원쇼 등 세계 최고의 광고제에서 상을 받을만한 작품이 부산국제광고제에서도 상을 받는다. 거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해외 광고제 심사위원을 여러번 맡았다. 부산국제광고제만의 특징은 무엇이 있을까. 제일기획 비롯한 국내 대형 광고회사들은 도리어 해외보다 부산에서 수상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도 한다.

“부산국제광고제만이 가지는 매력이 있다. 부산 시민들이 광고제를 찾는 외국인들을 매우 환대해준다. 기분 좋은 경험을 갖고 돌아가는 심사위원, 참가자들이 많다. 항구도시라는 관광지적 매력도 있다. 부산시와도 협업이 잘 된다.

국내 광고대행사 입장에선 다른 국내 광고제와 달리 국제적인 작품들과 경쟁해야 한다. 최고의 작품들이 세계적인 수준에서 경쟁하니 도리어 수상하지 못할 확률이 더 높다. 하지만 10년전과 비교하면 국내 대행사들이 많이 치고 올라왔다. 금상이나 그랑프리에서도 기회가 많아졌다.”

-필름 부문 심사위원장으로서 심사 기준은 무엇인가.

“독창성(Originality), 관련성(Relevant), 실행력(Execution) 3가지를 중요시 한다. 독창성은 말할 것도 없다. 광고의 대상과 연관이 없는 생뚱맞은 광고라면 안 된다. 광고를 실제 제작하는 단계에서 완성도 또한 중요하다. 최후엔 머리로 작품을 판단하지 않는다. 심장을 흔들 수 있는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모바일 시대 필름 광고는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TV, 컴퓨터, 모바일은 화면 크기에서 차이를 보인다. 모바일의 경우 화면이 세로다. 지난해 부산국제광고제 그랑프리 수상작 중 걸그룹 뮤직비디오를 세로 포맷에 맞춰 핸드폰으로 채팅을 하듯 만든 사례가 있었다(KING RECORDS 의 NATIVE MOBILE MUSIC VIDEO). 모바일의 특성을 광고에 녹여낸 것이다. 앞으로는 모바일 환경에 맞는 색다른 광고를 만들어가야 한다.”

-삼성전자 론칭피플 프로젝트(기술과 혁신을 통해 삶의 장애물을 극복하도록 돕는 캠페인. 2013년부터 총 20개국에서 실시)의 일환인 '룩앳미(Look At Me)', '비 피어리스(#BeFearless)' 캠페인으로 국제광고제를 휩쓸었다. 앱과 VR기술을 사용한 것이 특징인데, 어떤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하나.

“기술을 그저 멋있게 소개하는 건 의미가 없다. 기술로 어떻게 사람들끼리 가깝게 만들어줄 수 있는가를 담았다. 룩앳미 캠페인에선 자폐를 겪는 어린이의 눈맞춤과 소통을 돕기 위해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었다. 기술로 아들과 엄마를 가깝게 만든 것이다. 비 피리어스의 경우 고소공포증, 발표불안 등을 겪는 이들이 VR체험을 통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왔다. 사람과 사람이 더욱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차갑게 느끼는 ‘기술’을 따듯하게 볼 수 있도록 노력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었다.”

-국내 대기업 계열 광고대행사들은 비계열 광고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세계 유수의 광고대행사들과 맞서기 위해선 '제일기획만의 크리에이티브'가 있어야 할텐데.

“제일기획은 삼성의 핸드폰과 가전 광고를 맡아왔다. 런칭피플 캠페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기술을 따듯한 시선으로 풀어갈 수 있는 강점이 있다. 최근 해외 광고 수주에서도 이런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좋은 광고란 뭘까. 미디어가 변해도 영속하는 광고의 가치는 무엇인가.

“마음을 흔드는 광고가 좋은 광고다. 국제광고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작품들은 몇년 뒤에 봐도 괜찮다. 그런 광고들은 지금 봐도 마음이 흔들린다.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작품들이다.”

-당신의 기준에 맞는 최근 광고 사례가 있다면.

“GM코리아의 ‘스파크’ 광고다. 그동안은 차의 ‘기능’에 대해 많이 얘기했다. 광고주 측에서 감성을 더 불어넣어보고자 했다. 일반적인 15초 TV 광고로는 감성을 넣기 힘들다. 그래서 롱포맷으로 만들었다. 광고에서 할아버지가 수 없이 매장을 찾아 깐깐하게 차량을 살핀다. 딜러들은 매번 찾아오는 할아버지를 성실하고 친절하게 응대한다. 결국 할아버지가 만족스런 웃음을 지으며 차를 구매해 손녀에게 선물한다. 손녀가 탈 차이기에 얼마나 안전한지 꼼꼼히 점검한 것이다. ‘안전성’이라는 기술을 광고하고 있지만 이를 할아버지의 ‘사랑’으로 풀어간 것이다. 소비자에게 연결되기 위해선 이런 쪽으로 가야만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