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 하반기 중소·벤처기업에 투자하는 '한국모태펀드'에 역대 최대 규모인 8300억원을 신규로 투입하면서 벤처캐피털(VC) 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한국벤처투자가 총괄하는 한국모태펀드는 중소벤처기업부 등 10개 부처·기관의 벤처 투자금을 펀드 형태로 모두 합친 것이다. 한국벤처투자가 사업 부문별로 민간 VC들을 선정해 자금 운용을 맡긴다.

27일 중소벤처기업부와 벤처투자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달 말 국회를 통과한 추가경정예산(추경) 8000억원을 포함 총 8300억원을 한국모태펀드에 배정하고 올 하반기 모태펀드에서 지원할 VC와 사업 선정에 대한 심사 작업에 들어갔다. 한국벤처투자의 구형철 팀장은 "올해 전체 정부 벤처펀드 신규 투자 금액은 총 9750억원으로, 예전 가장 많았던 2009년의 4380억원보다도 배 이상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번 벤처펀드 운용사 모집에는 국내 200여 VC 중에 101개 운영사가 지원했다. VC 업계 관계자는 "VC 업계 절반이 이번 펀드 모집에 지원한 것"이라며 "정부 자금은 민간 자금보다 수익률 부담이 적은 데다 이번 펀드 규모가 예년의 세 배이기 때문에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국모태펀드 모집 마감일인 지난 16일 서울 서초구 서초역 근처의 한국벤처투자건물 지하 1층에는 200여 명이 몰려 온종일 북새통이었다. 한국벤처투자 관계자는 "VC 관계자들이 한꺼번에 몰려, 접수 대기자를 위한 사무실만 2개를 따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VC 업계에서는 돈이 흘러넘치면 기술력 없는 벤처업체에 무리한 투자가 이뤄지는 부작용이 나올 것이란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나랏돈 최대로 풀린다" 들썩

서울 테헤란로의 한 벤처 투자회사에 근무하던 김모씨는 정부의 벤처펀드 확대 소식을 듣자마자 지난달 직장 후배 3명과 함께 작은 사무실을 얻었다. 9월 말로 예정된 모태펀드 운용사 선정을 앞두고 직접 회사를 차린 것이다. 김씨는 "이번 기회가 아니면 큰돈을 만질 기회가 다시 찾아오기도 힘들 것 같아 모험을 감행했다"고 말했다. 한 VC 업체 임원은 "투자 경력이 많고 실적이 좋은 베테랑 운용 인력들이 이번 모태펀드 사업을 노리고 회사를 떠나 독립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VC들은 모태펀드 운용사로 선정되면 정부 자금을 받은 뒤 민간 자금을 추가로 조달해 펀드를 조성한다. 이후 펀드 자금을 7~8년 운용하며 수익을 정부와 나눈다. 이번 모태펀드는 청년 창업 분야에 3300억원, 재기 지원과 4차 산업혁명 분야에 5000억원이 배정됐다. 만약 100억~300억원 규모의 펀드 운용을 맡게 될 경우 연간 2억~6억원의 운용 보수를 받을 수 있어 초기 인건비·사무실 운영비를 확보하는 데 부담이 없다. 게다가 정부는 이번 모집에 1개 펀드당 정부 출자 비율을 60~80%로 상향 조정했다. 지금껏 진행된 출자사업에서 정부 출자 비율은 40~60% 수준이었다. 펀드 조성을 위해 VC가 민간 자금을 끌어와야 하는 부담을 낮춰준 것이다. VC 관계자는 "민간에서 유치되는 투자금을 포함하면 전체 투자금은 1조3000억원가량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력 스카우트 경쟁이 벌어지면서 기존 VC 업체들도 부랴부랴 인력 충원에 나서고 있다. 조만간 예정된 15분짜리 프레젠테이션(PT) 발표를 앞두고 발표 자료를 보기 좋게 꾸미기 위해 외부 디자인 업체에 500만원을 주고 용역을 맡기는 업체도 있다.

심사 제대로 될까 우려 목소리도

한국벤처투자는 9월 말 VC를 선정해 발표할 계획이다. 40여일 만에 업체 심사와 선정을 완료하는 것이다. 그래야 올해 말까지 펀드 조성을 끝내고 추경 예산을 모두 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VC 업계에선 "예산 규모와 신청 업체 수가 급격히 늘어났는데 심사가 제대로 될지 걱정된다"는 반응도 나온다. 한국벤처투자에 심사 인력이 13명에 불과해 다른 부서에서 인력을 충원해 30여명 규모의 심사팀을 구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금을 확보한 VC 업체들이 내년 초부터 동시에 투자에 나서면 벤처 거품이 일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VC 업체 관계자는 "돈을 써야만 하는 VC들이 경쟁적으로 투자처를 찾게 될 것"이라며 "단기적으론 벤처 기업들이 수혜를 입겠지만 한꺼번에 투자가 몰리는 탓에 경쟁력 없는 회사가 기업 가치만 높아지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