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최근 생리대 가격 거품 논란을 계기로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정부의 가격 규제를 거론하고 나섰다. 지난 22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이런 발언을 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가격 통제권을 거론하면서 정부의 시장 가격 개입을 둘러싼 논란에 10년 만에 다시 불을 붙였다. 김 위원장은 지난 22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독과점 기업 등)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가격 결정 남용 행위를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을 허락해준다면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가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일부 생리대의 유해성 논란이 가격 거품 논란으로 번진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다. 국내 생리대 시장은 유한킴벌리, LG유니참이 80% 가까이 차지하고 있는데 생리대 평균 가격이 미국·일본의 2배 수준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김 위원장의 발언은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경제의 '보이지 않는 손'인 가격을 공정위라는 '보이는 손'이 간섭하는 것은 안 된다는 시각과 독과점 기업들의 무분별한 가격 인상을 막아 소비자들의 권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견해가 맞서기 때문이다.

공정위의 가격 통제권 강화는 10년 전 노무현 정부 시절 추진됐던 적이 있다. 공정위는 2007년 독과점 기업 상품의 가격을 정부가 직접 규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시행령안을 입법예고했지만, "지나친 시장 개입"이라는 여론에 밀려 무산됐다.

공정위의 가격 통제 허용할 것인가?

현재 시장 가격에 대한 규제는 방송통신위원회 등이 특정 산업에 대해 예외적으로 하고 있다. 일반적·포괄적 가격 규제는 공정거래법 시행령에 규정이 있다. 하지만 '비용이나 수급의 변동에 따른 가격 변화'만 규제 대상으로 하고 있다 보니 신제품의 가격이 지나치게 높을 경우 규제할 방법이 마땅치않다. 가격 결정을 남용했다고 하려면 기준이 되는 적정 가격이 얼마이고 얼마나 올려야 남용한 것인지가 나와야 하는데 그 기준도 제시돼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이 규정에 따라 시장 가격을 규제한 사례가 IMF 외환위기 이후 전무한 실정이다.

공정위는 작년 5월 '깔창 생리대'가 사회적인 이슈가 되자 직권 조사에 착수했지만 아직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당시 업계 1위인 유한킴벌리가 일부 제품의 가격을 올리겠다고 하자 생리대를 살 돈이 없는 저소득층에서 신발 깔창에 휴지를 덧대 사용한다는 '깔창 생리대' 사연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다.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는 공정위가 시장 자체에 손을 대려는 것은 과도한 개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 위원장 본인도 지난 6월 공정위 현장조사로 치킨 업계가 치킨 값을 내리기로 하자 "공정위는 물가 관리 기관이 아니다. 시장에 개입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했었다.

노무현 정부 이후 10년 만에 재점화

공정위는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독과점 기업의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이 비용에 비해 지나치게 비싸거나 동종업계 평균에 비해 높을 경우 정부가 직접 규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시행령안을 입법예고했다. 시행령은 국회를 거칠 필요없이 정부 독자적으로 고칠 수 있지만 "정부가 세계적인 규제 완화 흐름을 거스르고 사실상 가격 통제를 하려고 한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면서 개정 작업은 무산됐다.

10년 만에 다시 생리대 논란을 계기로 다시 이런 주장이 나온 것이다.

전문가들 의견은 나뉜다. 서울의 한 대학 A교수는 "공정 당국이 시장 가격에 개입하는 것은 일부 유럽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일"이라며 "공정위가 사실상 물가 조절 기관 역할까지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작 시행령을 개정한다고 하더라도 집행 과정에서 갈등이 클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업의 원가·비용, 적정 가격, 남용 여부 등을 판단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 측이 소송을 내면 법원에서 공정위가 이기기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도 "정부가 물가를 관리하던 1970년대로 다시 돌아가자는 얘기"라며 "시장점유율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소비자들의 선택을 많이 받은 것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한 사립대 B교수는 "이번 기회에 독과점 폐해가 심한 경우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