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김병성(37)씨는 이달 들어 입출금 업무를 은행 지점이 아닌 동네 세븐일레븐 편의점에서 해결하고 있다. 지난달 말 인터넷 전문 은행 카카오뱅크에 개설한 계좌를 사실상 주거래 계좌로 이용하고 있는데, 편의점 ATM(자동입출금기)을 이용하면 건당 최대 1300원인 출금 수수료도 면제받고 은행 지점들보다 가깝기 때문이다. 김씨는 "입출금을 위해 편의점에 간 김에 생필품을 살 수도 있어 기존 은행 계좌를 이용할 때보다 효율적"이라고 했다.

인터넷 은행과 손잡은 편의점… 공과금 납부는 기본, 대출 업무도 추진 중

'24시간 물건을 파는 가게'였던 편의점이 은행 업무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합 서비스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최근 인터넷 전문 은행이 출범하면서 ATM 기기를 갖춘 편의점이 인터넷 은행의 '지점' 역할을 하고 있다. 대출금리가 저렴하고 계좌 개설도 쉬워 최근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인터넷 전문 은행의 최대 약점은 '지점'이 없다는 것. 인터넷 은행 이용 고객은 올해 연말까지는 일부 시중 은행 ATM에서도 수수료 면제 혜택을 누리지만, 당장 내년부터는 출금을 할 때마다 수수료를 내야 한다. 인터넷 은행이 시중 은행과 협약을 맺어 기존 은행 ATM 기기를 이용하며 발생한 수수료를 올해까지는 인터넷 은행에서 전액 부담하기로 했지만, 내년에는 수수료 면제 협약을 맺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편의점 업체들은 인터넷 은행과 협약을 통해 수수료를 지속적으로 면제해 소비자들이 편의점을 인터넷 은행의 '지점'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한다는 전략을 짜고 있다.

22일 오후 서울 송파구의 세븐일레븐 매장에서 카카오뱅크 체크카드를 소지한 고객이 ATM기를 통해 현금을 입금하고 있다. 세븐일레븐 측은 “ATM을 이용하려 매장을 찾은 고객이 상품도 사는 경우가 많아 점포의 매출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현재 전국 편의점에 설치된 ATM은 약 5000대로 이 중 4000여대가 세븐일레븐 매장에 있다. 김성철 세븐일레븐 매니저는 "일반 은행 고객의 경우 해당 은행의 ATM을 주로 이용하지만, 인터넷 은행 고객은 상대적으로 편의점 ATM을 많이 이용한다"며 "인터넷 은행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늘며 이들이 입출금을 위해 편의점을 방문하게 되면 편의점 매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씨유(CU)도 지난해 6월 신한은행과 손을 잡고 점포에 '디지털 키오스크'를 설치했다. 디지털 키오스크에서는 신한은행 지점에서만 할 수 있던 체크카드 발급, 계좌 비밀번호 변경 등의 업무도 가능하다. 수도요금·지방세 등 공과금 납부도 편의점에서 할 수 있다. 고지서를 들고 점포를 찾아가면 계산원을 통해 24시간 수납을 할 수 있다. 유억권 씨유 과장은 "현재 TV 수신료, 휴대폰 요금 등 119개 항목의 공과금 납부를 씨유 매장에서 할 수 있다"고 했다.

편의점의 전국 지점망 활용해 금융 서비스 다양화

GS25K뱅크와 함께 입출금, 카드 발급은 물론 대출 업무도 가능한 '스마트ATM'을 설치하고 있다. GS25 측은 "현재 K뱅크가 시스템 개발 중인 이 ATM이 운영되면 기존 은행에서 할 수 있는 대부분 업무가 편의점에서도 가능해질 것"이라며 "올해 스마트ATM을 1500대 설치하고, 2021년까지 5000대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마트24는 지난해 10월부터 전국 16개 점포에서 '캐시백 서비스'를 시범 운영 중에 있다. 고객이 체크카드로 편의점에서 상품을 구매하면서 현금 인출도 할 수 있는 서비스다. 예컨대 5000원짜리 음료를 구매하며 현금 5만원을 출금하고 싶은 고객은 편의점 계산대에서 5만5900원(수수료 900원 포함)을 결제하면 음료와 현금 5만원을 받을 수 있다.

일본의 편의점들은 2000년대 이후 금융 서비스를 확대해왔다. 일본 세븐일레븐은 지난 2001년 인터넷 전문 은행 '세븐뱅크'를 설립하고 전국 매장에 2만여대의 ATM 기기를 설치했다. 지난해엔 일본 편의점업계 3위 로손도 은행업 진출을 선언했다. 전국 곳곳에 있는 편의점의 지점망을 이용해 소비자들에게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기 용이해서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택배 서비스, 세탁물 수거, 카셰어링, 전기차 충전 등 다양한 서비스로 영역을 넓히며 편의점이 온라인 유통업체들은 제공할 수 없는 다양한 서비스의 창구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며 "인터넷 은행과 고객이 빠르게 급증하고 있는 만큼 편의점도 새로운 금융 서비스 인프라의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