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개 팹리스 상장사 중 46%가 흑자전환·실적개선
"일시적 현상일뿐, 벼랑 끝 구조는 여전해"

전 세계적인 반도체 시장 호황에 힘입어 국내 팹리스(반도체 제조 공정 중 하드웨어 소자의 설계와 판매만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의 실적도 좋아지고 있다. 올해 1분기까지만 해도 팹리스 상장사의 절반이 적자였지만, 하나둘씩 흑자전환에 성공하며 희망의 싹을 틔우고 있다.

21일 조선비즈가 국내 팹리스 상장사 15개 회사의 2분기 실적을 분석한 결과 15개 회사의 46%인 7개사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흑자전환하거나 영업이익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실리콘웍스 등 일부 업체들은 전년 동기 대비 실적 개선에는 실패했지만, 시장 전망치보다 나은 실적을 내놓으며 선전하기도 했다.

제주반도체의 낸드플래시 MCP 제품.

우선 슈퍼 사이클(Super Cycle)이 이어지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 팹리스의 선전이 두드러진다. 제주반도체(080220)의 경우 전 세계적인 공급부족이 심화되고 있는 낸드플래시 멀티칩패키지(Multi-chip Package, MCP) 매출과 S램, CRAM 판매를 늘리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매출 역시 지난해 2분기(114억원)보다 두 배 이상 늘린 270억원을 기록했다.

메모리 설계 업체인 에이디테크놀로지(200710)역시 2분기에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에이디테크놀로지의 2분기 매출은 77억8000만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98.8%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800만원, 당기순이익은 4000만원을 기록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하반기에도 메모리 컨트롤러 양산을 늘리며 매출 규모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모바일용 메모리 시장이 주력 분야인 피델릭스(032580)도 2분기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피델릭스는 2분기에 매출 134억원, 영업이익 5억원을 기록했다. 흑자폭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모바일 일변도의 매출 구조를 사물인터넷(IoT), 오토모티브 등의 분야로 넓히기 위해 연구개발(R&D)에 적잖은 비용을 쏟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미 있는 성과다.

디스플레이용 반도체 분야의 강자들도 좋은 성적표를 내놓고 있다. 동운아나텍(094170)은 올해 2분기에 매출 149억원, 영업이익 4억원을 기록하며 전분기 대비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동운아나텍은 최근 사업을 본격화한 햅틱(Haptic) IC에 대한 시장 수요가 점차 커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하반기 실적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T-Con(타이밍 컨트롤러)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아나패스(123860)도 1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전년보다 소폭 성장했다. 국내 최대 팹리스 중 하나인 실리콘웍스의 경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의 절반 수준인 65억원에 그쳤지만, 하반기에 LG디스플레이의 OLED 패널용 칩 공급이 확대되며 매출 성장이 전망된다.

한편 업계에서는 2분기 국내 팹리스 업체의 실적 성장에 대한 엇갈린 시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메모리 반도체, OLED 디스플레이 분야에 대한 한국 기업의 지배력이 강력해지면서 동반 성장 효과가 발생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업계 호황에 비해 국내 팹리스 업체들이 누리는 수혜는 오히려 지나치게 미미해 보인다"며 "이렇다 할 육성 정책도 없이 R&D에 매출의 30%를 쏟아부어 가며 벼랑 끝에서 사업을 겨우 유지하는 국내 팹리스 사업 구조는 여전하며, 이 와중에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받고 있는 중국계 팹리스와의 힘겨운 경쟁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