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의 상황에서 전세금을 지키기 위해 보험에 가입하는 건데 보증회사 입장에서 위험하다고 보험 가입을 안 받아주는 건 이상하지 않나요?"

회사원 신모씨(37)는 얼마전 전세금 1억4000만원짜리 빌라로 이사할 계획을 세웠다. 집주인이 6000만원의 주택 담보대출을 받은 상태인 매매가 1억7000만원 상당의 빌라였다. 신씨는 "집주인이 갭투자(매매가와 전세금 차액만 투자해 아파트를 사는 방식)를 하는 것 같아 전세금을 떼일 것을 걱정해 전세보증금 보험에 가입하려 했다"고 했다. 하지만 보증 기관은 '이사하려는 집 대출이 지나치게 많다'며 신씨의 보험 가입을 거부했다. 전세보증금 보험에 가입하려면 전세금보다 먼저 갚아야 하는 빚(선순위 채권)과 전세금을 합친 금액이 집값을 넘지 않아야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세 수요 증가로 인한 전세금 상승으로 전세보증금 보험 가입이 빠르게 늘고 있지만, 선순위 채권과 전세금을 합친 금액이 집값을 초과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정작 전세금보장 보험이 필요한 세입자들이 보험 가입을 못 하고 있다. 정부의 잇단 부동산 대책 발표에 따라 당분간 집값이 내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전세금 보장을 확대·다양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깡통 전세' 우려에 전세금 보험 가입 늘어

전세금 보장 보험은 전세보증금과 계약 기간에 따라 보험료를 내면 전세보증금 전액 또는 일부를 보장해주는 상품이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할 경우 보증 기관에서 대신 전세금을 지급해준다. 전세 3억원짜리 아파트라면 주택도시보증공사의 경우 연 38만4000원(보험료율 0.128%), SGI서울보증은 57만6000원(보험료율 0.192%)을 내면 전세금을 보장받을 수 있다.

전세금 보장 보험 가입은 지난 몇 년간 크게 늘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의 경우 2015년 3941건(가입액 7220억원)이던 가입 건수가 올 상반기에만 1만8616건(3조9957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시세 차익을 노리려는 투자자들이 무리하게 빚을 내거나 전세를 끼고 집을 산 뒤 세를 주는 경우가 늘어난 만큼 조금이라도 집값이 내려가면 '깡통 전세(집값이 전세금 이하로 하락)'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탓이다.

전세금 떼일 가능성 큰 세입자는 정작 가입 안 돼

문제는 전세보증금 보험이 비교적 '안전한' 세입자만 보호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도시주택보증공사, SGI서울보증 모두 전세금보다 먼저 갚아야 하는 빚(선순위 채권)이 집값의 60%를 넘지 않고, 또 선순위 채권과 전세금을 합친 금액이 집값을 넘지 않는 경우에만 가입을 허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재무 건전성과 낮은 보험료를 동시에 유지하기 위해서는 '깡통 전세' 우려가 있는 고객까지 가입을 받아줄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보증 기관이 까다로운 기준을 내세우는 탓에 정작 전세금을 떼일 확률이 높은 세입자는 오히려 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작년 말 기준 전체 주택 담보대출 중 주택담보인정비율(LTV) 60% 이상 대출 비중은 35.9%(금액 기준) 수준이다. KB국민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KB 주택 가격 동향에 따르면 전국의 아파트 집값 대비 전세 가격 비율은 75.3%, 서울은 72%에 달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초 보고서에서 "주택 가격이 5% 하락하면 LTV 60%를 초과하는 한계 가구 비중이 10.2%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전세 보험 부분 가입도 허용해야

전세 보증 보험 부분 가입을 허용하는 등 범위를 다양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SGI서울보증의 경우 세입자가 전세금 전액에 대해 보증을 요청하는 경우에만 가입을 받고 있다. 시중 은행이 세입자에게 전세금 대출을 해주면서 이미 보증 보험에 가입했는데도 세입자가 자신의 돈뿐 아니라 은행 대출금도 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구조다. 예를 들어 은행에서 2억원을 빌려 4억원짜리 전세를 얻은 세입자의 경우 전세금 4억원 전체에 대해서 보험을 신청해야 가입이 가능하다. SGI서울보증 측은 "전액 보장 가입을 전제로 설계된 상품이기 때문에 (일부 금액 가입 같은) 특수한 경우까지 고려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했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심교언 교수는 "지금같이 불안한 부동산 시장에서 전세금 보장 보험을 확대해 세입자를 보호해야 한다"며 "보증회사의 위험이 크다면 전세금 보장 보험료를 올리는 등 보험료 산정 방식을 다양화하는 대책을 마련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