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P 대비 국가 채무 40%대 관리
40%대 안팎 빚 늘릴 여력은 있어
문재인 정부 다음 정부들이 문제
전문가들 "노후 준비 없는 지출"

‘큰 정부’를 표방하는 문재인 정부의 과감한 재정 정책이 시동을 걸고 있다. 정부는 당초 5년간 178조원의 공약 이행 재원을 투입할 예정이었지만 최저임금 인상분 보조, 건강 보험성 강화 방안 등 추가 정책을 발표하며 최대 수백 조원의 정부 돈을 더 풀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당장 내년 재정 지출도 6~7%로 과거 정권 보다 대폭 올린다.

정부는 필요한 재원을 자연 세수 증가분(60조원), 초고소득자·초대기업 증세(24조원), 세출 구조조정(60조원), 여유 기금 활용(35조원) 등을 통해 마련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나랏돈’을 투입해야 할 정책들을 추가로 계속 발표하고 있으며, 재정 지출도 늘림에 따라 세입과 3%의 경제 성장률 예측이 틀어질 경우 적자 재정 운용이 불가피하리라 예상되고 있다. 정부도 어느 정도 범위 내에서는 ‘빚’을 용인하는 분위기다.

사진=연합뉴스

① 빚 증가 재정 버틸 수 있을까

올해 8월 20일 기준 국가 채무는 666조3569억원이다. 정부가 발표한 2016∼2020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보면 국가 채무는 올해 682조7000억원을 기록하며, 내년에는 722조5000억원으로 사상 처음 700조원을 넘는다. 올해 국내총생산(GDP) 약 1710조원 기준으로 보면 국가 채무는 GDP대비 40%대다. 내년 700조원을 돌파해도 GDP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40.9%다. 정부의 총수입에서 총 지출과 사회보장성 기금(국민연금, 고용보험 등)을 제외한 관리재정수지는 올해 6월까지 기준 24조1000억원 적자다. 지난해 관리재정수지는 GDP 대비 -1.4%를 기록했다.

정부와 전문가들은 현재 수치만 놓고 보면 어느 정도의 적자는 재정이 감당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한국의 국가 채무가 많은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2015년 기준 일본의 국가 채무는 GDP 대비 200%가 넘는다. 미국은 GDP 대비 126%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도 GDP대비 116%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은 비교적 여유가 있는 상황이다. 관리재정수지도 일본은GDP 대비 -5.2%, 미국도 GDP 대비 -5%를 나타내고 있다. 한국은 GDP 대비 -1.4%로 OECD 평균 -3.1% 보다 낮은 편이다.

출처=국회예산정책처

정부는 2016∼2020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발표할 때 연 평균 재정 지출을 3.5%로 예상했다. 문재인 정부는 5년간 재정 지출을 경상 성장률(올해 4.6% 수준) 보다 높게 유지할 예정이다. 재정 지출이 더 늘어난 만큼 국가 채무 증가 속도는 당초 계획 보다 빠르게 증가할 예정이다. 정부는 재정 지출이 늘어도 5년간 GDP 대비 국가 채무를 40%대로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매 해 GDP가 100조 안팎으로 증가한다고 가정하면 국가 채무도 연간 40조 안팎에서는 늘려도 괜찮다는 이야기가 된다. 여기에 최근의 세수 호황도 나라 빚 증가를 보완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정부는 당시 향후 국세 수입 연 평균 증가율이 5%가 되리라 예상했지만, 지난해와 올해 10%를 넘어서고 있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5년 동안 ‘빚’을 더 져도 재정은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이태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국가 채무 증가는 문재인 정부 5년 동안은 괜찮을 것”이라며 “관리재정수지도 GDP 대비 -2%까지 늘어나는 건 양호하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이번 문재인 정권 내에서는 국가 채무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기백 서울시립대 교수도 “경제 성장을 하면 GDP가 늘어난다. GDP 대비 40%를 유지해도 상당히 국가 채무를 늘릴 수 있는 여력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② 문재인 정부 다음이 문제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끝난 후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의 재정 적자 증가에 대해 “20대에 돈이 좀 더 들어오고 대출 능력이 생겼다고 해서 돈을 물 쓰듯 쓴 후 노후 준비를 전혀 안하는 것과 같다”라는 비유를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5년 뒤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은 OECD 회원국에 비해 현 시점의 재정 건전성은 양호해 보이지만, 증가 추세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국가 채무 연 평균 증가율이 11.5%로 9.1%인 미국이나 3.6%인 일본과 비교해 상당히 높다. 잠재 성장률이 둔화되는 반면 저출산 고령화의 사회적인 문제가 겹치면서 지금대로 유지해도 빚이 빠르게 폭증하게 된다. 정부의 장기 재정 전망에 따르면 GDP 대비 국가 채무는 오는 2050년에는 OECD 평균 보다 높은 137.7%를 기록한다. 국회예산정책처도 오는 2060년 GDP 대비 국가 채무가 218.6%로 확대되고, 오는 2034년 이후 재정의 지속 가능성 확보가 어렵다고 전망하고 있다.

2016∼2020년 국가재정운용계획

문재인 정부가 5년 동안 빚을 빠르게 늘릴 경우 재정 위기도 그만큼 앞당겨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더구나 정부는 3%대 경제 성장을 예측하고 있지만, 관련 기대도 달성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지난달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에서 올해 GDP 성장률을 3.0%로 전망했지만, 최근 5년 동안(2012∼2016년) 2014년 을 제외하곤 모두 2%대 성장률에 머물렀다는 점을 고려할 때 3%대 성장률을 달성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적자 재정이 가져올 수 있는 후폭풍이 만만치 않은 셈이다.

이태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국가 부채는 성장을 하면 문제가 안된다. 하지만 잠재 성장률과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정책에 들어가는 돈이 점점 커지는 걸 우려하는 것이다"라며 "올해와 내년은 괜찮다고 하지만 다다음 정권부터 과도한 부담을 질 수 있다"라고 밝혔다.

③ 숨어 있는 빚 ‘시한폭탄’

한국이 현재 OECD 국가에 비해 정말 재정 건전성이 좋은지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OECD 국가간 국가 부채를 산정하는 기준이 다르고, 세금 제도도 다른 만큼 현재 상황을 단순 수치로 비교해 ‘빚’을 더 늘려도 된다는 분석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표에 포함되지 않는 숨어 있는 빚이 엄청나다는 이야기다.

정부는 국가 채무를 국가 채무(D1), 일반 정부 부채(D2), 공공 부문 부채(D3)로 공개하고 있다. D1은 중앙 및 지방 정부의 회계와 기금을 감안한 것이다. 지난해 627조1000억원으로 GDP 대비 38.3%다. 정부는 OECD 등 국제 비교를 할 때 D2를 쓴다. D1에 비영리공공기관의 국가 부채가 포함되며 GDP 대비 40%대를 유지하고 있다. D3는 D2에 한국전력, 토지주택공사 등의 비금융 공기업 부채가 추가로 포함된다. D3를 보면 국가 채무는 지난 2015년 결산 기준 1003조5000억원으로 훌쩍 증가한다. D3로 계산하면 국가 채무는 GDP 대비 64.2%에 달한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지난 18일 보고서에서 “2016년 기준 GDP의 약 30%를 차지하는 비금융 공공기관 부채가 한국의 재정 건전성을 제한할 가능성은 있다”라고 분석했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OECD 국가와 비교해 국가 채무 증가 여부를 결정하는 건 맞지 않다”라며 “나라마다 경제 규모가 다르고 국가 채무 산정 비율이 다른 만큼 단순 비교하는 건 위험하다”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가 공무원 증가를 약속한 만큼 연금 충당 부채를 추가로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연금 충당 부채는 공무원·군인연금 가입자에게 장래 연금 수급 기간에 지급할 연금을 현재 가치로 평가한 금액이다. 연금 충당 부채는 지난 2015년 659조9000억원에서 지난 2016년 752조6000억원으로 뛰었다. 공무원 연금 부채는 600조5000억원으로 전년보다 68조7000억원 늘었다. 공무원 숫자가 늘어나면 연금 충당 부채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오정근 건국대 교수는 “공공기관 부채와 연금 충당 부채 등을 고려하면 한국의 GDP대비 국가 채무는 이미 100%를 넘어설 수도 있다”라며 “국가 신용 등급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라고 말했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정부가 5년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향후 재정에 대한 예측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