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계란 섭취가 인체에 미치는 유해성은 낮다는 전문가 견해가 나왔다.

시중에 유통되는 계란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드러난 살충제 5종 중 1종을 제외한 4종의 ‘반감기’는 약 7일로 짧은 편이기 때문에 계란에서 검출된 유해 물질이 몸 속에 잔류해 인체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반감기란 인체에서 물질이 절반 가량 빠져나가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플루페녹수론만 반감기가 약 1달이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18일 오전 11시 서울 이촌동 대한의사협회 3층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살충제 검출 계란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의료 전문가의 견해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18일 오전 현재까지 부적합 판정을 받은 농가는 총 45곳으로 늘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17일 오후 10시 기준 전체 조사 대상 1239개 산란계 농가 가운데 1155곳에 대한 조사를 완료한 결과 45곳의 농가에서 나온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이 과다 검출돼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성분별로는 피프로닐 7곳, 비펜트린 34곳, 플루페녹수론 2곳, 에톡사졸 1곳, 피리다벤 1곳이다.

◆ “살충제 계란 인체 유해 가능성 낮아...장기 섭취 영향 연구 없어 예단 어려워”

대한의사협회 소속 백현욱 국민건강보호위원회 식품건강분과위원장은 “걱정할 수준은 아니기 때문에 당장 계란을 먹는 건 문제가 안된다”면서도 “다만 문제는 장기 누적 섭취도 안전하다는 근거 연구 자료가 전혀 없기 때문에 더욱 철저한 감시와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8일 살충제 검출 달걀에 대한 대한의사협회 입장 발표 기자 회견

홍윤철 국민건강보호위원회 환경건강분과위원장(서울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과 교수)은 “검출된 5개 살충제 중 플루페녹수론만 반감기가 2~3달 정도이고 나머지 4종의 반감기는 약 7일로 짧다”며 “인체 독성의 경우 5개 살충제 모두 잔류에 따른 인체 유해 가능성은 낮다”고 밝혔다.

홍 위원장은 5개의 살충제가 인체에 유해할 가능성이 낮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미치는 급성 독성을 수치로 만든 기준을 토대로 한 연구를 제시했다.

그는 “현재 잔류 기준치를 초과해 문제가 된 ‘피프로닐’과 ‘비펜트린’의 경우 이 두 성분에 가장 취약한 10kg 미만 영유아가 2개의 성분이 최대치로 검출된 달걀 2개를 하루에 섭취해도 위험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화학물질의 독성 분야에서 이미 연구가 돼 참고자료로 활용하는 ‘인간 급성 독성 기준’과 비교 분석한 결과 독성이 20% 이하 수준으로 낮게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즉, 살충제 계란이 체내에서 급성 독성을 일으킬 가능성은 낮으므로 인체 유해성을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는 얘기다. 홍 위원장은 “살충제 섭취에 따른 특이적 질환은 ‘신경 독성’인데 살충제 달걀 섭취 후 인체에서 급성 독성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이후 만성적으로(늦게) 독성이 나타날 가능성도 낮다”고 설명했다.

의협은 또 ‘발암 물질’로 알려진 살충제 성분 ‘피프로닐’은 엄밀히 말해 발암물질로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미국 환경보호청은 피프로닐을 인체에 암을 일으키는 발암 물질이 아니라 ‘발암가능물질 C’로 분류하고 있다. 이는 인체 발암을 일으켰다는 근거 데이터는 없고 동물에서 발암성에 대한 제한적 증거가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 홍 위원장은 “일부 언론이 이를 발암 물질로 잘못 표현하고 있다”며 “발암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WHO)는 “만약 사람이 피프로닐을 ‘과다 섭취’할 경우 어지럼증, 구토, 복통, 두통, 현기증 등 흔히 나타나는 독성물질 오염 증상이 나타난다”며 “심한 경우 간장, 신장 등 인체 내부 장기가 손상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살충제 계란을 섭취한 사례에 대한 연구 및 인체 사례 보고 자체가 현재 학계에 없기 때문에 장기 누적 섭취에 따른 유해성, 만성질환 유발 위험성 등을 예단하기는 어렵다는 게 의협의 견해다.

방역당국 관계자들이 17일 대전 유성구 산란계 농장에서 계란을 회수하고 있다. 이 농장에서는 식물 살충제 성분인 에톡사졸이 검출됐다.

◆ “동물 사육 환경 근본 개선하고 관리 체계 정비해야”

의협은 정부가 그동안 동물약품 관리에 소홀했다는 비판과 함께 의약품과 동물약품의 통합관리제도를 촉구했다.

추무진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살충제 성분을 사용하지 않고도 동물을 사육할 수 있도록 동물 사육 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며 “현재 의약품과 동물약품(농약)의 관리를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농림식품부 2개 부처에서 각각 분리해 관리하고 있는데, 동물약품은 사람이 섭취하는 동식물을 통해 인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안전한 먹거리 확보를 위해 동물약품에 대한 안전성, 유효성이 확실하게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추 회장은 “살충제 달걀 파동으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며 “정부는 식품위해정보 신속대응에 미흡했고, 발표 내용을 번복하는 우왕좌왕식 행정으로 위기 관리에 난맥을 드러냈다”며 “산란계 농장은 물론 현재 유통되고 있는 달걀에 대해서도 반드시 안전을 보장해야 하며 문제를 조기에 발견, 대응할 수 있는 통합 관리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영록 농림식품부 장관은 오후 4시 산란계 농가에 대한 최종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 피프로닐(Fipronil)
피프로닐은 개·고양이의 벼룩이나 진드기를 없애거나 바퀴벌레·흰개미를 구제할 때 쓰는 살충제 성분이다. 국제 식품 농약잔류 허용규정 기준치는 kg당 0.02㎎이다. 닭과 같이 육류로 섭취하는 동물에 사용이 금지돼있다.

☞비펜트린(Bifenthrin)
허용기준치는 ㎏당 0.01㎎로 피프로닐과 마찬가지로 살충제의 주요성분으로 쓰이고 있다. 사람이 섭취했을 경우 두통과 울렁거림, 복통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 에톡사졸(Etoxazole)
'독성이 강하지 않은 물질로 분류돼 있으며, 1인당 1일 최대섭취허용량(ADI)은 국내 기준으로 0.04㎎/㎏이다.

☞ 플루페녹수론(Flufenoxuron)
동물 실험에서 빈혈을 일으키는 것으로 관찰됐다. 반감기가 상대적으로 길어 체내에 상대적으로 잔류하는 기간은 길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약독성이다.

☞ 피리다벤(Pyridaben)
기본적으로 '약독성'을 띄며, 에톡사졸, 플루페녹세론과 비슷한 독성을 갖는다. 인체에서 배출되는 정도를 보여주는 반감기도 짧은 편이며, 몸에 쌓일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적다. 하지만 인체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신경계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체중 감소 등의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 사람의 1일 섭취 허용량은 체중 kg당 0.01mg. 에톡사졸과 플루페녹세론보다 낮은 수치로 그만큼 독성이 약하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