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의정서가 17일 국내 정식 발효되면서 바이오 신약 원료가 되는 생물자원을 중국에서 들여오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에 적지 않은 타격이 예상된다. 중국을 포함한 생물자원 제공국에 국내 업체가 매년 600억~700억원을 지불해야 한다는 전망도 나온다. 바이오의약품 연구개발(R&D)도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나고야의정서는 생물자원을 이용하며 얻은 이익을 자원 제공국에 공정하게 나누도록 한 국제협약이다. 한국은 2011년 9월 서명, 올해 5월 19일 비준서를 유엔 사무국에 제출했다. 비준서 제출일 기준으로 효력이 발생하는 90일째인 8월 17일 나고야의정서 당사국으로 편입됐다. 해외 생물자원을 이용해 의약품을 개발할 경우 생물자원 제공국에 이익의 일부를 돌려줘야 하는 것이다.

조선 DB

◆ 규정 강화하는 중국…국내 제약바이오기업 타격 불가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현재 천연물의약품을 개발 중이거나 생산하는 국내 제약바이오 회사는 20여곳에 달한다. 또 국내에서 개발 중인 전체 238개의 신약 파이프라인 중 천연물의약품은 55개로 21.6%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천연물의약품은 바이오의약품의 한 종류로 자연 속 천연물 성분을 이용해 개발한 의약품이다.

이와 관련 생물자원 부국(富國)인 중국이 나고야의정서에 대비한 규정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3월 ‘생물 유전자원 접근 및 이익 공유(Access to genetic resources and Benefit-Sharing·ABS) 관리 조례’ 입법 예고를 통해 특허 출원시 출처 공개 의무, 생물자원 보유인과의 이익 공유와 별도로 기금 명목으로 이익발생금 0.5~10% 추가 납부 등을 규정했다. 최악의 경우 중국이 자국에 유리하게끔 한국 기업에 이익발생금의 최대치인 10%를 부과할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 중 절반이 천연물의약품 원료가 되는 생물자원의 절반 가량을 중국에서 들여온다는 점이다. 지난 6월 국립생물자원관이 160개 바이오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해외 유전자원 조달국에 대한 응답 결과, 중국이 49.2%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부는 자원 제공국과의 이익 공유 비율을 전체 부가가치 중 최대 3%로 가정하면 국내 제약 바이오 업계가 향후 부담해야 할 비용이 매년 600억~7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중국에서 들여오는 생물자원이 국내 수입 생물자원의 절반 가까이에 달해 나고야의정서 발효에 따라 일부 제약바이오 기업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이익 공유에 대한 분쟁이 생기거나 제 때 원료가 수입되지 않을 경우 자칫 천연물의약품을 비롯한 바이오 의약품 R&D에도 차질이 생길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장현숙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은 “생물자원 부국인 중국은 자국의 생물 유전자원을 보호하고 이용국들로부터 이익 공유를 받기 위해 발빠르게 법을 정비하고 있다”면서 “중국이 생물자원 주권 강화 일환으로 제정한 ABS 관리 조례(안)이 연내 시행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중국의 생물자원을 이용하는 대다수 업체에게 추가 부담 발생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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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산 대체 등 적극적인 대응 필요”

중국의 ABS 관리 조례(안)은 나고야의정서를 넘어선 조치들도 일부 포함하고 있어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장 연구위원은 “ABS 관리 조례(안)은 나고야의정서가 담고 있는 내용을 넘어선 자국 중심의 조치들도 포함하고 있어 중국 생물자원을 이용하는 국내 업체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라며 “생물 유전자원의 원산지와 대상 여부, 이익 공유에 따른 원가 상승폭을 파악하고 국내산으로의 대체 등을 면밀히 검토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제약사의 한 관계자는 “국내 제약사의 경우 합성의약품(화학물을 합성한 약)의 비중이 높아 나고야의정서 발효에 따른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면서도 “생물자원 보호 조치 강화에 따른 자원 수급 불안정, 유전자원 사용료(로열티) 상승, R&D 지연 등의 어려움에 적극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편 현재까지 식약처로부터 허가를 받은 국내 천연물 신약은 ‘스티렌정·모티리톤정(이상 동아에스티)’, ‘신바로캡슐(녹십자)’, ‘조인스정(SK케미칼)’, ‘시네츄라시럽(안국약품)’, ‘유토마외용액(영진약품)’, ‘아피톡신주(구주제약)’, ‘레일라정(한국피엠지제약)’ 등 8개가 있다.

☞ 나고야의정서(Nagoya protocol)

특정 국가의 생물·유전 자원을 상품화하려면 해당 국가의 승인을 얻어야 하며 이익의 일부도 나눠야 한다는 국제협약. ‘생물다양성협약(1992년)’의 부속 협약으로 생물 다양성 보전과 지속 가능한 생물자원 이용에 기여하고자 2010년 10월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제10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의정서가 채택됐고, 2014년 10월 정식 발효됐다.

한국은 지난 2011년 9월 나고야의정서에 서명했으며, 올해 5월 19일 나고야의정서 비준서를 유엔 사무국에 제출했다. 나고야의정서는 비준서를 낸 날을 기준으로 90일째에 당사국으로서 효력이 생기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8월 17일부터 정식 발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