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개월간 국민 부담이나 재정 투입을 키우는 새로운 사업들을 잇따라 발표했다. 집권 5년간 178조원이 투입될 대선 공약 사업들과는 상당 부분 별개이다. 막대한 돈이 들어갈 새 사업 약속은 연일 이어지고 있지만, 재원 마련 대책은 미덥지 않다. 전문가들은 "결국 빚을 내서라도 하겠다는 건데, 5년 후 다음 정부는 빚더미에서 시작하라는 얘기 아니냐"고 비판하고 있다.

잇따른 선심성 사업 약속

문 대통령은 지난 9일 서울성모병원에서 "건강보험 하나로 (의료비)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건강보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30조6000억원이 필요한 사업이다. 정부 관계자는 "해당 재원 일부는 공약 추진 재원에 이미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른 관계자는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이는 데 필요한 돈은 공약 추진 재원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어떤 경우이든 정부 계획대로 하면 건강보험료가 해마다 2~3% 상승하면서 국민에게 추가 부담을 지우게 된다. 그래도 모자란 재원은 재정에서 채워야 하는데, 결국 국민이 세금을 더 내서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픽=김성규 기자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 중에 '핵 추진 잠수함' 도입을 언급했다. 핵 추진 잠수함은 1척(4000t급)을 건조하는 데 1조3000억원쯤 들어간다. 실제 운용을 하려면 작전용 1척, 대기용 1척, 정비용 1척 등 3척이 필요하기 때문에 4조원쯤 소요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공공 부문 비정규직 31만명에 대해 전원 정규직화를 선언했다. 이들의 절반인 16만명만 정규직 전환해도 6조40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관계자는 "여기에 필요한 재원이 얼마인지, 이 가운데 얼마를 정부가 부담해야 하는지 등이 파악되지 않아 공약 추진 재원 178조원에는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공약 재원 178조원도 버거운데…

문 대통령이 취임 이후 추가로 쏟아낸 새 사업들의 재원 조달 계획은 확실하지 않다. 재정학회와 연금학회 회장을 지낸 김원식 건국대 교수는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이려면 보험료 인상을 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저항이 조세 저항보다 강하다"고 했다. 보험료를 해마다 2~3% 올리면 될 것이라는 정부 계획에 허점이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또 "복지는 한 번 늘리면 줄이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런저런 지적이 잇따르자 문 대통령이 10일 직접 해명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재원 대책을) 기재부와 충분히 협의했다"면서 "건전 재정을 유지하면서 감당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관가에선 "대통령이 직접 발표하는 '어명(御命) 사업'인데 어느 공무원이 감히 토를 달 수 있겠느냐"는 얘기가 나왔다.

증세 못 하면 나랏빚 늘리겠다는 의미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새 정부는 세금으로 걷은 것보다 더 많이 재정 지출을 하겠다는 '적자 재정' 원칙을 이미 선언했다"며 "돈이 모자라면 증세를 하든지, 국채 발행을 통해 빚을 내든지 하겠다는 얘기"라고 했다.

정부는 향후 5년간 고소득층과 대기업 위주로 27조5000억원을 증세할 예정이지만, 이 돈으로는 문 대통령이 추진하는 사업들을 다 감당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정부 관계자는 "복지 확대를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에게 세금을 거둬야 하지만 정치적 부담 때문에 쉽지 않다"고 했다. 새 정부가 재정 지출을 늘려놓은 뒤 다음 정부에선 어떻게 감당하느냐에 대해서는 정부 관계자들도 입을 다물고 있다. 경제부처의 한 간부는 "5년 후 일은 아무도 모르고 일단은 문 대통령 지시대로 가야 하지 않겠느냐"며 말끝을 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