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건강보험 보장률을 63%에서 70%까지 끌어올리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민영보험사의 실손의료보험이 궁극적으로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간 비급여 진료를 통한 과잉 의료비 지출을 부추긴 실손보험의 입지가 더욱 좁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비급여는 건강보험이 비용을 부담하는 ‘급여’에서 제외된 의료 항목으로, 진료비를 본인이 100% 부담한다. 민영보험사에서 판매하는 실손보험은 이 비급여 진료비와 급여 진료비 중 본인 부담금을 보장해주는 상품이다.

보건복지부는 공·사보험 연계법 제정을 추진하고 “금융위원회,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금융감독원 등 관계 기관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빠른 시일 내에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실손보험의 보장 범위를 조정하고 불필요한 의료비 상승을 막겠다는 방침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을 찾아 건강보험 보장강화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률이 확대되면 실손보험을 파는 보험사가 반사이익을 볼 것으로 보고 있다. 실손보험 적자의 원흉으로 꼽히는 비급여 진료비를 국가가 직접 관리하면 불필요한 보험금 지급이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보험사가 정책으로 인해 이익을 보는 만큼 보험료 인하로 소비자들에게 환원하는 것을 바라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그간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으로 인해 민간 보험회사가 2013~2017년까지 5년간 얻을 반사 이익은 1조5244억원에 달한다.

보험사들은 이번 보장성 강화 대책으로 인해 정치권의 보험료 인하 압박이 거세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손보사들이 평균 손해율이 121%에 달한다는 이유로 올해 실손보험료를 전년 대비 10~20% 올렸는데, 인상률이 과도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손해율은 거둔 보험료 대비 지급한 보험금의 비율로, 100%을 넘으면 적자가 났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같은 반발에 오히려 정부는 보험사들의 적자 주장을 검증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앞서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보험사들이 보험료 인상 근거로 삼는 ‘적자액’과 ‘손해율(거둬들인 보험료 대비 나간 보험료)’ 산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정자문위원회 제공

◆ 시민단체·정치권 “실손보험 없애라”

시민단체나 정치권에서는 손해율 악화의 원인으로 환자와 의료계만을 탓하는 민간 보험사가 의료보험을 운영할 수 없도록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참여연대는 앞서 19대 대통령 선거 정책 요구 사항에 ‘실손형 민간의료보험 폐지’와 ‘민간의료보험 규제 및 소비자 보호 강화’를 포함시켰다. 민간보험 규제 완화가 비급여 영역의 확대를 부추겼다는 주장이다. 앞서 금융위는 보험산업 경쟁력 강화 로드맵의 일환으로 규제를 지속적으로 풀어줬다.

김종명 내가만드는복지국가 보건의료팀장은 ‘실손의료보험의 실패 책임, 금융위와 보험사에 있다’는 보고서를 통해 “실손보험이 비급여 팽창을 유발해서 전체 의료비 상승을 유발했다”면서 “보험사는 실손보험의 손해율이 100%를 넘는 것을 문제삼고 있는데, 스스로 감당해야할 몫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팀장은 “만약 위험손해율이 100%를 넘는 것이 문제라면 마찬가지로 (손해율이) 100% 아래인 상품의 보험료를 조정해야 한다”면서 “손해율 100%를 넘기기 때문에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면, 손해율이 그 아래인 상품에 대해서는 보험료를 줄이거나 가입자에게 환급해주는 것이 타당하다”고 비판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실손보험료를 낮추기 위해서는 의료기관마다 천차만별인 비급여를 표준화하는 것이 먼저다”라면서 “그러한 대책 없이 보험료 인하 압박만 요구하면, 보험사들은 실손보험 판매를 차라리 접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