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저널리즘' 시리즈 펴낸 스리체어스 이연대 편집장
6권 중 3권이 베스트셀러… 10월부터 월 10권씩 발행

"저널리즘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정보는 혼란스러우리만치 뒤죽박죽이다. 이는 저널리스트가 잘 숙고된 심리적 의제에 따라서가 아니라 출판, 영화, 미술관 산업의 홍보 계획에 따라 보도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성향을 갖고 있어서다." (알랭 드 보통 '뉴스의 시대' 중)

2014년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저널리즘에 '중병' 진단을 내렸다. 3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주장은 유효하다. 여전히 많은 뉴스가 대중의 불안을 무책임하게 양산하고, 선정적인 보도로 눈길을 빼앗는다.

보통의 저작이 처방에 그친 것과 달리, 실제 '집도'에 나선 출판사가 있다. 올해 2월 '북저널리즘' 시리즈를 시작한 스리체어스가 그 주인공. 스리체어스의 북저널리즘 편집부는 서문에서 저널리즘 소비문화를 새로 정의한다.

"저희가 관찰한 상위 2.5퍼센트의 젊은 혁신가들은 앞선 세대만큼 신문을 탐독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그들은 전문가의 블로그나 페이스북에서 고급 정보를 얻습니다. (…) 디지털 시대의 저널리즘은 현실과 밀착한 지식, 지혜로운 정보를 책처럼 깊고 풍성하되, 신문처럼 적시에 전달해야 합니다. 바로 '북저널리즘(book journalism)'입니다. 북저널리즘은 북과 저널리즘의 합성어입니다. 우리가 지금, 깊이 읽어야 할 주제를 다룹니다."

북저널리즘은 신문과 책 사이에 있는 콘텐츠다. 신문의 속도와 단행본의 깊이를 지향한다. 문고본 판형으로 8월 현재까지 6권이 출간됐다. 9월엔 매달 5권, 10월부터 10권이 나올 예정이다. 발행물의 성격은 정의하기 어렵다. "뉴욕타임스는 매일 200개의 기사를 송고한다. 우리는 (연말부터) 매월 20개의 기사를 송고할 계획"이라는 게 편집장의 첨언이다.

시장의 반응은 뜨겁다. 연애정경(5월), 회사인간, 회사를 떠나다(7월), 넷플릭스하다(7월) 등 발간물 6권 중 3권이 베스트셀러 매대에 올랐다. 5월 중순에 나온 '검사는 문관이다'는 3쇄를 찍었다.

7월 28일 저녁 평창동 스리체어스 사무실에서 이연대 편집장을 만났다. 북악산과 북한산 사이 비탈에 자리한 단층 공간이었다. 앞서 이어령 작가, 김범수 카카오 의장, 고은 시인, 이문열 작가 등 내로라하는 거장들을 인터뷰한 이 편집장은 인터뷰 내내 펜을 놓지 않았다. 그리곤 주말이 채 지나기 전에 이메일로 장문의 보충 의견을 보냈다.

이연대 스리체어스 대표 겸 편집장의 이력은 다채롭다. 7년간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했고,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최종심에 오른 적이 있다. 그가 2014년 공동 설립한 스리체어스의 평전 잡지 바이오그래피는 농밀한 문체와 감각있는 편집으로 창간 당시부터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왜 지금 출판 저널리즘인가?

"출판 저널리즘은 새로운 게 아니다. 출판이 저널리즘의 영역을 벗어난 적은 없다. 조금 과장하자면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보다 뛰어난 저널은 없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사무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도 그렇다. 훌륭한 저작은 수많은 기사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북저널리즘 시리즈와 일반 단행본의 구분은 정보와 지식 중 어디에 방점을 찍는가에 달렸다. 우리는 정보에 무게를 둔다."

-북저널리즘의 서문은 일종의 '선언'으로 읽힌다. '상위 2.5퍼센트의 젊은 혁신가'라고 하면.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매스컴 이론가인 에버렛 로저스(Everett Rogers)가 주장한 '혁신의 전파 법칙'에서 따왔다. 그는 고객을 혁신가(2.5%), 얼리어답터(13.5%), 초기 다수(34%), 후기 다수(34%), 말기 수용자(16%) 5개 범주로 나눈다. 북저널리즘은 혁신의 선두에 선 2.5%의 고객을 대상으로 한다."

-론칭한 지 6개월이 되어간다. 북저널리즘을 구상한 계기는?

"고급 지식과 깊이 있는 뉴스에 대한 수요는 항상 있었다. 소비자의 지속적인 요구, 기존 공급자의 무관심, 고객의 요구를 충족하는 역량이 결합할 때 새로운 독점 공간이 열린다고 판단했다."

이 편집장은 올해 초 도메인 'bookjournalism.com'이 비어있는 걸 보고 서둘러 등록했다고 말한다. "책과 저널리즘 사이에 끼인 무언갈 발견한 기분"이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북저널리즘에서 강조하는) '지금, 깊이 읽어야 할 주제'란?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훌륭한 화가는 자신의 그림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종국에 가서는 우리 마음속의 풍경까지 바꿔 놓지." 얼리어답터는 단순 사실 보도와 기계적 중립에 갇힌 반쪽짜리 정보를 바라지 않는다. 북저널리즘은 새로운 지식, 고유한 관점을 제시하는 고급 콘텐츠에 주목한다."

-시민, 검찰, 연애 정경(政經)… 최근 경영 분야도 다뤘지만, 주제가 사회과학에 한정된 느낌이다.

"경제 사회 문화 테크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룰 계획이다. 1~4호는 사회과학 분야가 주를 이뤘다. 중국 최대 간편결제 서비스 알리페이, 자율주행차, 블록체인, 미국 네바다 사막에서 열리는 '버닝맨 축제'(Burning Man Festival), 독립술집 같은 이슈가 예정돼 있다."

-반응이 좋았던 프로젝트는?

"5월 중순에 펴낸 '검사는 문관이다'는 최적의 저자('PD수첩 검사'로 알려진 임수빈 변호사), 콘텐츠의 깊이, 시의성이 맞아떨어져 좋은 반응을 얻었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같은 뻔한 담론이 아닌 '검찰 내부로부터의 개혁'이라는 신선한 스토리를 담았다. 7월 발행한 '넷플릭스하다' '회사인간, 회사를 떠나다' 역시 초기 성적이 괜찮다."

-(위기에 처한) 한국 저널리즘의 틈새를 공략하는 시도로 볼 수 있을까?

"저널리즘의 변화가 현 추세를 유지한다면, 가까운 미래에는 '지혜로운 정보'라는 언론 비즈니스의 새 영역이 생길 것 기대된다.

지난 100년간 뉴스는 팔목을 움직여 소비하는 것이었지만, 최근 10년 사이 엄지손가락으로 스크린을 밀어 올리며 소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뉴스의 개념 역시 고정불변이 아니다. 단순 사실 전달에서 '깊이'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현재 언론 비즈니스를 지탱하고 있는 단순 사실 보도는 몇 년 후에는 더 이상 저널리스트의 영역이 아닐 것이다. 탐사 보도나 기획 취재, 해설 기사가 주 영역이 될 것이다. 이른바 '기자의 전문가화'인데, 그렇다면 '전문가의 기자화'도 가능하다고 본다. 이미 페이스북, 미디엄, 브런치에는 파급력이 큰 글을 쓰는 전문가들이 넘쳐난다. 그들의 콘텐츠를 기사화하는 언론도 많다.

본질은 '콘텐츠의 질'이다. 소비자의 효용 가치를 극대화한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 무척 재밌거나(Buzzfeed), 무척 새롭거나(VICE), 무척 전문적이거나(Politico), 무척 깊어야 한다. 앞의 세 영역에는 많은 도전자들이 나타나고 있다. 유의미한 성공을 거둔 기업도 많다. 그러나 깊이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매체는 손에 꼽을 정도다. '지혜로운 정보' 그리고 '현실과 밀착한 지식'을 원하는 소비자는 분명히 있다."

-타깃 독자층은?

""Don't let the future leave you behind"(미래가 당신 뒤에 있도록 내버려두지 마라)라는 미국 IT 전문 매체 와이어드의 광고 문구에 견줘 설명하겠다. 정보에 뒤처지고 싶지 않고 트렌드에 민감한 20대 후반~40대 중후반이 대상이다. 지적 호기심이 왕성한 고객.

북저널리즘 시리즈 구매 고객의 성비는 55 대 45로 남성이 조금 더 많다. 거주 지역 비율은 수도권과 지방이 60 대 40이다."

-출판 저널리즘 하면 '출판의 언론화'를 내세운 강준만 교수('인물과 사상' 창간인)를 빼놓을 수 없다.

"브랜드 작명 단계에서 콘셉트를 '책처럼 깊이 있게 신문처럼 빠르게'로 잡았다. 그러면서 강 교수가 저널리즘과 북의 합성어인 '저널룩'(Journalook)을 만든 걸 알게 됐다. 다만 그를 출판 저널리즘의 효시로 보는 건 무리다. 그는 1인 저널리즘 분야를 개척했다."

-향후 계획은.

"오프라인 실험의 1차 목표는 달성했다. 모든 콘텐츠가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타깃 독자인 지식산업 종사자들의 반응이 이를 증명한다. 론칭 6개월이 채 되지 않았지만 기대 이상의 제안이 들어오고 있다. 지난 6월 콘텐츠 플랫폼 한 곳으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았으며, 최근 협업 요청이 들어와 공동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하반기에는 자체 플랫폼을 구축해 콘텐츠를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유통할 예정이다. 현재 웹사이트 개발과 구독 모델 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웹사이트 론칭 이후에는 책이라기엔 짧고 기사라기엔 긴 A4 용지 20장 분량의 콘텐츠도 발행할 예정이다. 연말부터는 월 20권 이상의 콘텐츠를 제작할 계획이다."

-바이오그래피에서는 누굴 다룰 예정인가. 2015년 1월 김부겸(당시 전 의원), 2017년 3월 김범수 의장 등 그 폭이 넓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사람을 소개'한다는 편집 방향을 풀어서 설명하자면.

"박찬욱 감독과 '바닷마을 다이어리'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로 유명한 일본의 고레다 히로카즈 감독을 섭외 중이다. 편집 방향은 창간호를 예로 들겠다. 이어령 선생은 천재로만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너무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 신동, 일필휘지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그는 반평생 넘게 매일 오전 1~2시까지 집필에 매달렸다. 저녁 약속을 한해 1~2번만 잡을 정도다. 그가 이 정도 노력파인 건 다들 잘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