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20조원에 달하는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심의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차관급)에 과거 '황우석 사태'에 연루됐던 박기영 순천대 생물학과 교수가 임명된 데 대해 과학계를 비롯한 각계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민주노총 산하 공공연구노조는 8일 성명을 내고 "박 본부장 임명은 한국사회 과학 공동체에 대한 모욕이며, 과학기술체제 개혁의 포기를 의미한다"며 임명 철회를 요구했다.

박기영 과학기술전략본부장

공공연구노조는 '한국 과학기술의 부고(訃告)를 띄운다'는 성명에서 "박 교수는 황우석 사태를 불러일으킨 핵심 인물로, 온 나라를 미망에 빠뜨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눈과 귀를 멀게 한 장본인"이라며 "연구 부정행위를 저지르고 연구윤리를 심각하게 위반했으며,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도 반성이나 사과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는 정치권을 맴돌며 그럴듯한 '4차 산업혁명'의 미사여구와 얄팍한 '쇼'로 장밋빛 환상을 설파하던 자를 혁신본부장으로 임명한 것"이라고 밝혔다.

2005년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 조작 사건' 의혹을 제기한 한학수 전 MBC 'PD수첩' PD도 임명 당일인 7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박 본부장 임명에 대해 "나는 왜 문재인 정부가 이런 인물을 중용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 PD는 박 본부장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의 눈과 귀가 되었어야 할 임무를 망각하고 오히려 더 진실을 가려 참여정부의 몰락에 일조했던 인물"이라며 "한국 과학계의 슬픔이며, 피땀 흘려 분투하는 이공계의 연구자들에게 재앙"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전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박기영 순천대 생물학과 교수를 임명했다.

박 본부장은 과거 2004년부터 2년간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을 역임했다. 당시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과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함께 차세대 핵심 기술 육성을 위한 모임인 '황금박쥐(황우석·김병준·박기영·진대제)'를 만들 정도로 과학기술 정책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박 본부장은 2006년 1월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청와대 보좌관에서 물러난 바 있다.

그는 당시 연구에 참여하지 않고도 황 전 교수의 논문에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려 '무임승차' 논란에도 휩싸였다. 또 전공(식물생리학)과 관계가 적은 과제 2건을 맡으며 황 전 교수로부터 연구비 2억5000만원을 부당하게 지원받은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과학계에서는 이번 인사에 대해 연구 윤리와 연구비 관리 문제에 연루됐던 인물이 국가 과학기술 정책을 집행하는 과기혁신본부를 이끄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