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출범한 4기 방송통신위원회가 언론 및 방송 전문가로만 구성돼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보통신 전문가를 배제한 4기 방통위가 ICT 분야에서 전문성이 없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인 공영방송 개혁에 강한 드라이브가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문 정부는 언론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회복하기 위해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왼쪽부터 표철수 위원(국민의당 추천), 허욱 위원(더불어민주당 추천), 이효성 방통위장(대통령 지명), 고삼석 위원(대통령 지명), 김석진 위원(자유한국당 추천)

◆ ICT 전문가 사라진 방송통신위원회… “방송위원회로 복귀?”

문재인 대통령은 방송과 ICT 분야 규제를 담당하는 방통위에 정작 ICT 전문가는 한 명도 임명하지 않았다.

지난달 31일 임명한 방통위원장과 방통위 상임위원 2명은 모두 언론과 방송 분야 전문가다. 기존에 임명된 고삼석 위원과 김석진 위원 역시 ICT 분야 전문가가 아니다.

이효성 신임 방통위원장은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방송위원회 부위원장, 한국방송학회장 등을 지낸 언론학자 출신이다. 허욱 신임 상임위원은 라디오방송인 CBS의 기자 출신으로 그 계열사인 CBSi와 CBS노컷뉴스 사장을 지냈으며, 표철수 신임 상임위원은 KBS·YTN·경인방송 등을 거친 방송기자 출신이다.

고삼석 상임위원은 언론학 박사 출신으로 국회와 정부 등에서 일했다. 김석진 상임위원 역시 MBC기자와 연합뉴스TV 보도본부장 등을 지낸 방송 전문가다.

이를 두고 ICT 업계는 “언론과 방송 전문가로만 채워진 방통위가 ICT 분야에 대해 전문성 없는 결정을 내릴 개연성이 있다”며 우려감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의 성공을 위해서는 ICT 분야에서 개인정보 활용에 대한 규제가 주요 화두로 떠오르고 있지만 관련 분야 전문가가 전무한 상태라 업계의 걱정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윤문용 녹색소비자연대 국장은 “4차 산업혁명은 무엇보다도 빅데이터 활용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개인정보에 대한 규제들을 풀어줄 필요가 있다”며 법률전문가도 없고 ICT 전문가도 없는 상태에서 ICT 산업과 관련된 개인정보 규제에 대한 이슈들을 어떻게 풀어갈지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방통위 주요 업무인 통신 시장 규제를 합리적으로 이끌어 갈지도 의문이다. 당장 9월에는 단말기 지원금 상한선 규제 조항의 자동 일몰과 맞물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을 개정해야 한다.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는 단통법의 경우 이번 개정을 통해 가계 통신비 인하와 휴대전화 단말기 유통 구조 선진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방통위 위원 5명 전원이 언론과 방송 미디어 전문가로 채워짐에 따라, 방통위가 통신 분야 이슈를 결정할 때 통신 업계 입장을 제대로 반영 못할 가능성이 높다”며 “당장 단통법 개정 문제가 코앞인데 통신 전문가가 한명도 없어서 우려가 된다”고 말했다.

윤문용 국장은 “4기 방통위에 통신 분야 전문가가 없어 자칫 통신이용자 보호 등 방통위 소관 통신 규제 업무가 소홀히 다뤄질까 우려되며 방통위 전체회의 의결에 대한 신뢰도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방통위 설치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통신 분야 전문가를 반드시 포함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7년 8월 1일오후 서울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이효성 신임 방통위원장이 취임사를 낭독하고 있다.

방통위원들이 언론·방송 분야 출신이 많고 ICT 분야 전문가가 드물다는 비판은 2009년 방송위원회와 통신위원회가 합쳐져 방통위가 설립된 때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방통위 1기 때는 상임위원 4명 중 언론 및 방송 미디어 분야 전문가인 송도균·이경자 위원과 함께 ICT 분야 전문가로 형태근·이병기 위원으로 구성돼 어느 정도 균형을 맞췄다.

하지만 2기 때부터 홍성규·김충식·양문석 위원 등 방송 미디어 분야 출신이 수적 우위를 차지했다. 3기 때 역시 김석진·허원제·김재홍·고삼석 위원 등 방송 미디어 분야 전문가로 구성되면서 ICT 출신은 이기주 위원 1명에 그쳤다.

이 때문에 이번 인사를 두고 방통위가 방송위원회 시절로 되돌아 간 것이냐는 지적이 나온다.

권남훈 교수는 “현재 인적 구성으로는 방통위 설립 전 조직인 방송위와 다를 바 없다”며 “ICT 산업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은 산업과 소비자 모두가 만족하지 못하는 규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 “공영방송 개혁에 대한 청와대 의지 강해”

정부가 방통위 위원 5명을 언론과 방송 미디어 전문가 출신으로만 구성하자,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비롯한 방송 개혁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표명된 것으로 방송업계는 바라보고 있다.

지난 1일 이효성 위원장이 취임식을 통해 “공영방송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며 공영방송 개혁에 대한 강도있는 대응을 시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3월 21일 밤 방송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6차 TV 토론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4분의 후보 간 맞장토론 순서에서 3분 동안 MBC를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해직기자들의 복직을 촉구하고 싶고 공영방송의 선거 중립성 유지를 말하고 싶다”며 “나아가서는 정권이 방송을 장악하지 않고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와 사회의 잘못된 점을 알리고 고치는데, 그리고 권력의 부정과 비리를 고발하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데 앞장서야 할 공영방송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국민적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며 “방송의 이런 비정상을 언제까지나 방치할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의 공영방송 개혁에 대한 의지는 지난 19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나타난 바 있다.

당시 이 위원장은 MBC에 대한 질문을 받자 “그동안 불법해고도 이루어졌고, 그것 때문에 분쟁과 소송도 있고 시청률도 하락했다”며 “부당하게 해직된 분들, 부당한 징계와 전출을 당한 언론인이 300여명 가까이 되기에 이분들의 복직과 명예회복이 필요하고 방송의 거버넌스를 고치기 위해 법에 따라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위원장이 된다면 감독권을 발휘해 방송법이 규정하고 있는 방송의 공정성, 자유 등을 제대로 실현하도록 권유하겠다”며 공영방송 개혁에 대한 자신의 뜻을 밝힌 바 있다.

KBS와 MBC 사장 교체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도 이 후보자는 “법과 원칙에 따라하겠다”며 즉답을 피했지만 “법이 정한 결격 사유가 있는지 상임위원들과 상의해보겠다”며 공영방송 사장 교체에 대한 검토 가능성을 시사했다.

특히 올해말 KBS·MBC·SBS 등 지상파 방송사의 경우 허가 유효 기간이 만료된다. 재허가 심사 과정에서 방통위의 개입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

방송업계 한 관계자는 “공영방송 개혁의 핵심은 지배구조 개선이지만 당장 임기가 보장된 공영방송 사장을 강제로 교체할 권한이 없는데다,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법개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국회와 소통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야 될 문제”라고 말했다.

현행 법으로는 KBS, MBC, EBS 등 공영방송 3사의 이사진 여야 추천 비율은 여당이 높다. 여야 추천인사 비율을 6대 6으로 대등하게 하자는 것이 문 정부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의 핵심이다

현재 KBS 이사진은 지난 정부에서 임명됐기 때문에 당시 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 몫의 이사진 7명,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 몫의 이사진 4명으로 구성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