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에 있는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5층. 30여 석의 개인 좌석이 있는 공용 사무실 공간에 띄엄띄엄 6~7명이 앉아 일하고 있었다. 이날 한 시간 동안 1620㎡(약 490평)에 달하는 4·5층의 센터 공간을 돌아다녀도 입주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직원은 20여 명에 불과했다. 상반기 입주 기업이 빠지고 하반기 입주 기업이 들어오는 이사철이라 책상 정리하는 사람들로 어수선했다. 경기센터의 백세현 팀장은 "새로 입주하는 기업들은 앞으로 센터가 이름과 역할이 바뀌면서 스타트업 지원 업무에 소홀해질까 봐 불안해한다"고 말했다.

지난 28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로비에서 직원들이 스타트업 커뮤니티 행사 준비를 하고 있다. 전국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최근 중소벤처기업부로 소속이 바뀌면서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고 있다.

서울·경기·인천·제주·강원 등 전국 17곳에 설치된 창조경제혁신센터들이 설립 2년 만에 대대적인 변화를 앞두고 술렁이고 있다. 2년 전 센터의 설립을 주도했던 옛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25일부터 운영에서 손을 뗐고, 센터는 중소벤처기업부 산하로 소속이 바뀌었다. 조만간 문패에서 전(前) 정부의 구호였던 '창조경제'가 빠지고, '창업'이나 '일자리'와 같은 새 정부의 정책 방향과 일치하는 이름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8개월의 공백에 정상화 안간힘… 막연한 불안감 팽배

지난 11일 오전 10시 인천광역시 송도에 있는 인천창조경제혁신센터의 입주 기업 보육 시설. 한 스타트업 창업자가 지문인식기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사무실에 들어갔다. 출석 체크를 하는 것이다. 인천창조센터는 올해 4월부터 '한 달에 보름 이상 출근하지 않는 스타트업 퇴출' 규정을 도입했다. 이름만 걸어놓고 출근 안 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박홍인 인천센터 팀장은 "센터 입주를 '스펙(각종 자격)'으로 삼으려는 스타트업을 솎아내고, 진짜로 사무실 공간이 필요한 스타트업을 지원하려는 시도"라고 했다.

전국 창조경제센터들은 작년 말 최순실 사태 이후 8개월간 최악의 시기를 보내면서도 운영 정상화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전센터는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3월부터 창업 아이디어 경진대회를 열어 매달 3팀씩 뽑아 지원금 50만원씩 주고 있다. 강원센터는 전국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빅데이터 스타트업' 공모전을 열며 '빅데이터 전문 센터'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입주 기업 사이에는 막연한 불안감이 팽배했다. 사물인터넷(IoT) 벤처를 창업한 강모 대표는 "창조경제센터가 소상공인이나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 사업 위주로 바뀐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며 "우리 같은 스타트업은 찬밥 신세가 될까 걱정된다"고 했다. 바이오 분야 벤처를 창업한 김모 대표는 "신기술을 모르는 관료들이 도와주기보다는 상전 노릇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심지어 연봉 1억원이 넘는 센터장 공모에 제대로 된 지원자가 나서지 않아, 기존 센터장들이 대거 연임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17곳 가운데 올 상반기 센터장을 공모한 14곳 가운데 11곳에서 현 센터장이 연임됐다. 교체된 곳은 3곳에 불과했다. 창조경제센터의 한 관계자는 "임기는 2년이지만 새 정부가 언제 나가라고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지원자가 예상보다 적었다"고 했다.

지자체·대기업은 지원 외면… 국가 예산 늘려 지탱

올해 17개 창조경제센터의 예산은 590억원으로, 출범 첫해의 1013억원에 비해 절반 정도다. 당초 지역별 스타트업을 육성해 성장 동력으로 키우겠다는 포부는 이미 꺾인 것이다. 출범 당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각각 6대 4로 예산을 지원했고, 센터별로 대기업들이 수십억원씩 지원금을 냈다. 하지만 서울특별시는 올해 예산을 전액 삭감해 창조센터와 손을 끊었고, 대전광역시·전라북도·경상남도 등은 예산을 삭감했다. 대기업들도 2년 전에는 최대 98억원까지 지원금을 냈지만 지금은 10분의 1은커녕, 한 푼도 안 내는 곳도 적지 않다. 지자체나 대기업이 빠진 몫을 정부가 예산으로 겨우 채우는 상황이다. 대구와 경북창조센터를 지원하는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현재 진행하는 지원 사업은 당분간 후원하지만 신규 사업에는 지원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CJ, GS, 아모레퍼시픽, 카카오 등은 "현금 지원은 삼가고, 직원 파견이나 건물 공간 제공과 같은 현물 지원을 주로 하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