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의 선택권을 확대하고 통신사, 단말기 제조업체의 경쟁을 촉진시키면 가계 통신비는 줄어든다. 이를 위해 '고비용 저효율'의 휴대전화 유통 시장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조선비즈는 단말기 판매와 통신 서비스 판매를 분리하는 '자급제 시대 준비하자'를 시리즈를 통해 통신 유통 구조의 개선책과 자급제 연착륙 방안을 두루 모색한다. [편집자주]

연합뉴스

정부가 가계 통신비 인하 정책을 적극 밀어붙이는 가운데 이동통신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의 고민도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정부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경우 수익성이 악화하는 데다 미래 신사업 준비에도 큰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은 이동통신 3사 중 가입자가 가장 많기 때문에 통신비 인하 정책에 따른 타격도 클 수 밖에 없다.

흥미로운 점은 이동통신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이 지난 27일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을 통해 자급제를 도입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점이다. 자급제는 소비자가 이통사를 통하지 않고 대형 마트나 쇼핑몰에서 직접 스마트폰을 구매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날 이상헌 CR전략실장은 “현재 이통사는 요금도 인하해야 하고 단말기 지원금도 직접 부담해야 한다”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5세대(G) 통신 등 4차 산업혁명 미래 과제를 수행하는 펀더멘탈(기초 체력)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점에서 단말기 자급제 도입이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다만, 현재까지는 SK텔레콤의 정해진 입장은 없다”고 덧붙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당장 오는 9월부터 현재 20%인 선택약정 요금할인율을 25%까지 상향한다는 계획이다. 또 취약계층에게 통신비 월 1만1000원을 감면해주고, 3만원대 요금제에서 제공하는 수준의 음성 및 데이터량을 2만원대 요금제 가입자에 게 제공하는 등 추가 대책도 실행에 옮길 계획이다.

정부는 이같은 정책으로 약 4조6273억원의 가계 통신비 인하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통사들은 “앞으로 선택약정 가입자가 더 늘어나 통신사의 비용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고 입모아 말하고 있다.

서울시내 한 이동통신 판매점 내부 전경

◆ 깊어지는 1등 사업자의 고민

SK텔레콤(017670)안팎에서는 단말기 자급제가 시행될 경우 그동안 이 회사가 부담해왔던 단말기 지원금과 단말기 판매장려금 등의 마케팅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SK텔레콤은 시장 1위 자리를 지키기 위해 막대한 마케팅비를 쓰고 있다. 지난해 SK텔레콤이 지출한 마케팅비용은 2조9540억원에 이른다. 비용을 줄이면 정부가 요구하는 수준의 통신요금 인하도 감당할 수 있게 된다.

단말기 자급제 도입으로 단말기 판매와 통신 서비스 판매가 분리되면,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도 사라질 전망이다. 단통법은 이통사가 단말기를 유통하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 법이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은 단통법이 용도폐기되면 이통사는 단말기 지원금을 제공할 필요가 없고, 지원금에 상응하는 선택요금 할인도 제공할 의무가 사라진다는 점 때문에 자급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고 SK텔레콤이 단말기 자급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는 것은 쉬운 게 아니다. SK텔레콤과 이동통신 대리점이 맺은 계약 때문이다. 이통사가 스스로 나서 자급제를 주장할 경우, 이통사는 대리점과의 계약 파기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 등에 휩싸일 수 있다.

이동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이통사들의 입에서 단말기 자급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거이 불가능한 일”이라며 “국회를 움직여 완전자급제 법안을 추진해 볼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문용 녹색소비자연대 국장은 “이통사가 재정적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법은 단말기 자급제를 도입해 단말기 지원금과 판매 장려금으로 나가는 지출을 줄이고 선택약정 요금할인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라며 “다만, 자급제로 갈 경우, 이통사의 고가요금제 가입자 확보에 빨간 불이 켜질 수 있기 때문에 이통사도 마지막 카드로 자급제 도입을 진지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단말기 완전자급제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 자급제 카드는 정부 견제구라는 분석도

SK텔레콤이 “자급제를 검토한다”는 입장 표명으로 정부를 향한 견제구를 던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SK텔레콤의 자급제 검토 발언에는 ‘25% 선택약정 요금할인의 소급적용은 어렵다’는 뜻과 ‘통신비 인하를 위해 정부도 비용 분담에 나서 줄 것’을 제안하는 의미도 있다는 것이다.

현재 이통 3사는 연간 7~8조원 가량의 마케팅비를 지출하는데 단말기 지원금과 단말기 판매장려금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전국에 위치한 2만5000여개의 이동통신 유통점이 이통사가 준 판매장려금을 통해 운영되는 구조다.

또 정부는 이통사와 이동통신 가입자로부터 연간 약 3조원을 징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는 이통사로부터는 주파수할당대가와 전파사용료를 징수하고, 이동통신 가입자로부터는 통신 요금의 10%에 해당하는 부가세를 받고 있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주파수할당대가와 전파사용료의 감면요구 협상을 위한 견제구로 SK텔레콤이 단말기 자급제 이야기를 흘렸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통사 입장에서도 기존에 단말기 유통을 통해 얻은 이점들이 있기 때문에 이를 내놓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자급제 카드를 통해 정부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액션일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자급제가 시행되면 판매장려금에 수익을 의존하는 유통점들이 도산할 가능성이 커진다. 노충관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사무총장은 “자급제 도입은 사실상 중소 유통점 도산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주요 정책 목표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 수많은 중소 휴대전화 유통업체들이 도산한다는 것은 부담으로 작용할수 밖에 없다.

김민철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입장에서는 당연히 중소 유통점들의 일자리 감소 문제가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지금 자급제가 자체가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완전자급제로 갑자기 이행하면 시장에 충격이 매우 클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통신업계에 따르면, 이번주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완전자급제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한 법안발의에 나선다는 계획이며,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완전자급제 도입에 따른 장단점, 기대효과 등을 분석한 보고서를 내놓는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