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경제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며 네 가지 전략을 내놨다. 대선 과정 등에서 내건 ‘소득 주도 성장’, ‘일자리 중심 경제’, ‘공정 경제’, ‘혁신 성장’ 등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구체화한 것이다. 과거 정부와 달리 문재인 정부는 집권 기간 성장률 등 각종 거시경제 지표의 목표치는 제시하지 않았다. 기획재정부는 25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개최된 국무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 제공

◆ 소득이 끌고 혁신이 밀고… “가계는 분배 대상 아닌 성장 주체”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에는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정부는 저성장이 고착화하고 양극화가 심화한 지금의 상황이 그동안 물적자본 투자를 중심으로 양적 성장에 집중한 탓이라고 진단했다. 그 결과 대기업과 제조업, 수출 기업에 지원이 집중됐고 이것이 성장을 이끌지도 못하면서 대·중소기업 격차와 양극화를 야기했다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시각이다.

정부는 “‘사람 중심 경제’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며 “경제성장을 소득 주도(수요)와 혁신(공급)이 이끌도록 하고, 경제체질은 일자리 중심·공정 경제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해야 성장의 과실이 가계와 중소기업 등 경제 전반에 골고루 확산된다는 것이다. 성장에 집중해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것보다 분배를 통해 분수효과를 거두는 것이 낫다는 시각이다.

소득 주도 성장 방안에는 최저임금 1만원 달성 등 기존에 발표된 정책에 대한 실행 방안이 담겼다. 최저임금 상승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내년 3조원 내외의 재정을 투입한다는 기존 정책과 함께 주거비와 의료비 등 핵심 생계비 경감 대책도 나왔다. 정부는 도심 알짜배기 땅에 저층으로 들어선 소방서와 경찰서 등을 고밀도로 재건축해 일부는 기존 용도로 쓰고 나머지는 도심 내 공적임대주택(5만호)으로 쓰겠다고 했다.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해서는 근로소득장려세제(EITC)를 확대해 소득분배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개선하고, 실업급여 의무가입자의 100% 가입을 추진한다. 교육급여 지원단가를 인상하고 교복비와 수학여행비 등의 지원을 전국 지자체로 확산하는 등 인적자본에 투자하고 4차산업혁명에 대비해 평생교육 예산을 확대하기로 했다.

혁신 성장 방안으로는 협력과 혁신 생태계를 구축해 중소기업을 성장동력으로 만든다는 내용이 담겼다. 중소기업이 공동으로 출자하는 ‘협업전문회사제도’를 도입해 창업 수준으로 우대하고, 고용을 많이 창출한 중소기업은 규모가 커져도 중소기업 졸업 유예기간을 연장해주기로 했다. 4차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해 자율주행차와 정밀의료 등 선도분야에 연구개발 예산과 세제 등을 집중 지원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 일자리-분배-성장 선순환 구조 만들어야

성장 정책과 더불어 추진되는 경제 구조 개편은 일자리 중심과 공정 경제의 두 방향으로 나뉜다. 일자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정책이자 사회정책 1순위로 꼽힌다. 정부는 고용친화적인 시스템을 구축해 고용없는 성장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일자리 지원세제 3대 패키지’를 추진하기로 했다.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에서 투자를 제외하고 고용에 집중한 고용증대세액공제 제도를 신설한다. 또 중소기업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경우 받는 법인세 세액공제 혜택을 대폭 확대할 예정이다. 임금인상을 위해서는 근로소득증대세제 공제율을 상향 조정한다. 자세한 내용은 8월 초 발표되는 세법개정안에서 확정하기로 했다.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정부는 지역 일자리를 만드는 경우 국내 기업에도 외국인 투자기업 수준의 혜택을 주기로 했다. 경제특구에 입주한 국내기업도 외투기업 수준의 지원을 받는다.

일자리를 늘리는 정책과 함께 사용자 중심인 노동시장 제도와 관행을 개선해 일자리의 질을 높이는 방안도 나왔다. 비정규직을 줄이기 위해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는 사유를 제한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비정규직을 사용할 경우 부담을 늘리기로 한 점 등 기존 공약 내용이 그대로 추진될 예정이다. 또 4차산업혁명 교육 등에 정부가 직접 재정을 투입하는 방안도 마련된다.

공정경제를 위해선 기존에 가맹점에만 주던 단체구성권을 대리점에도 주는 방안 등이 추진된다. 또 독과점을 야기하는 각종 진입규제와 영업규제를 전면 재점검하고 담합 근절을 위한 제재도 선진국 수준으로 강화한다.

동반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대기업이 이익을 중소협력사와 공유하거나 출연하는 경우 세액공제를 해주는 협력이익배분제 등 ‘상생협력 지원세제 4대 패키지’도 도입한다.

◆ 3년만에 3%대 성장 전망… “재정증가율 경상성장률 이상으로 유지할 것”

정부는 이 날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등도 동시에 의결했다. 정부는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을 각각 3.0%로 전망했다. 추가경정예산 편성으로 0.2% 정도의 성장률 상승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2014년 이후 3년 만에 3%대로 복귀하는 것이다.

정부는 하반기에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1000억원을 들여 사회복지시설에 고효율 냉난방기 교체구입비 50%를 지원하고 외국인관광객 성형수술비용 부가세 환급의 일몰을 연장할 방침이다. 또 근로자의 휴가비를 지원하기 위해 기업과 근로자가 여행 자금을 적립하면 정부가 추가로 지원하는 ‘체크 바캉스’ 제도의 도입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 밖에 정부는 저성장과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 앞으로 5년 동안 재정지출 증가 속도를 경상성장률보다 높게 관리하기로 했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수준인 재정의 분배개선률을 현재 10%대에서 20%대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한편 정부는 이번 경제정책방향에서 문재인 정부 집권 시기 성장률이나 고용율 등에 대한 목표치를 제시하지 않았다. 과거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에서 7%, 4% 등의 수치를 목표로 제시한 것과 다른 점이다. 또 국정기획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국정과제와 대부분 중복돼 새로운 것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재부는 특히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급물살을 탄 증세 논의에 대해서는 올해 조세·재정개혁 특별기구를 만들어 내년까지 개혁보고서를 작성한다는 국정기획위원회의 안을 그대로 담았다. 올해 명목세율 인상을 하지 않겠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27일 열리는 당·정협의에서 올해 고소득자와 대기업 세율 인상을 논의한다는 입장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이찬우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지난 21일 사전 브리핑에서 “(국정기획위원회가 확정한) 국정과제에 대기업과 고소득자에 대한 과세 방안은 이미 들어있었고, 이를 ‘조세·재정개혁 특별위원회(가칭)’에서 논의한다고 되어있다”면서 “최근 이 문제가 (정치권에서) 제기되면서 내부적으로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 확정되면 빠른 시일 내에 설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