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업계 노조가 극단적인 파업 행보를 잠시 멈추고 교섭 강화로 방향을 틀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노조는 여름휴가 전까지 파업을 유보하고 대화에 나선다. 한국GM 노조는 이번주 사측이 제시하는 미래발전방안을 들어보고 파업 진행 여부를 결정한다. 쌍용자동차와 르노삼성자동차는 무분규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임단협)을 올해도 이어간다는 노사간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다.

완성차업계 노조가 파업을 결정한 뒤 사측과 다시 대화하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완성차 노조의 잇따른 명분없는 파업 결의에 대한 거센 비난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이지만 노조가 ‘파업부터 하고 보자’는 '선파업 후타결'의 과거 관행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보였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여름휴가 전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이 부담이다. 이 기간 임단협 타결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노조는 휴가 이후에 파업을 진행할 가능성도 있다.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노조도 여론의 부정적 시선과 자동차업계의 대내외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 현대·기아차 일단 교섭 강화로

현대차 노조는 여름휴가(7월31일~8월4일) 전까지는 파업하지 않고 남은 기간 교섭을 벌이기로 했다. 현대차 노조 측은 "7월에는 파업보다는 교섭에 집중하면서 조합원의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다"며 "회사 측에 쟁점 안건 등에 대해 일괄적인 안을 내달라고 요구한 상태"라고 밝혔다.

조합원 투표에서 파업 안건을 가결한 기아차 노조는 현대차 노조가 교섭 강화로 선회하자, 파업 동력이 떨어졌다. 파업 일정을 정하는 중앙쟁대위 등도 열리지 않은 상태다.

현대차 노사는 20일 울산공장에서 21차 임단협 교섭을 재개한다. 지난 6일 회사가 제시안을 내지 않았다며 노조가 일방적으로 협상 결렬을 선언한 지 보름만이다.

지난달 20일 현대차 울산공장 본관 아반떼룸에서 열린 현대차 노사의 임단협 상견례의 모습.

교섭이 실패해 파업이 이뤄지더라도 지난해보다는 수위가 약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최근 중국 판매량이 급감하고 미국 판매까지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면서 회사의 경영위기 호소가 엄살이 아니란 것을 노조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5월까지 현대차의 중국 시장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7.4% 급감한 26만6228대에 그쳤다. 미국 시장 판매량은 올해 들어 6월까지 34만6360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4% 감소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미국과 중국시장 악화,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등 대외 사정이 좋지 않아 지난해 같은 대규모 파업은 이뤄지지 않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한국GM “임금인상보다 회사 생존 우선”

한국GM 노조는 지난 6일과 7일 찬반 투표를 통해 파업을 결정한 상태다. 다만 한국GM 노조의 요구 조건은 임금을 올려달라는 다른 완성차 노조와 다르다.

한국GM은 올해 들어 위기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3년간 누적 순손실이 2조원에 달했고 올 상반기 내수 판매량은 작년 상반기보다 16% 줄었다. 여기에 GM 본사가 올해 들어 유럽·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잇달아 철수하면서 한국시장 철수설도 나오고 있다. 노사간 협상을 주도할 제임스 김 사장이 갑자기 사임한 것도 부정적이다.

한국GM 부평공장.

현재 한국GM 노조는 미래발전방안 제시, 월급제 전환 등을 주장하면서 파업 카드를 꺼내든 상태다. 한국GM 노조는 "한국GM의 장기적인 발전전망이 담긴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내놓고 협약 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한국GM도 노조를 설득하기 위해 조합원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미래발전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미래발전방안은 글로벌 GM의 주요 임원 중 한명이 한국사업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한국GM 관계자는 “이번 주 중 미래발전방안을 노조측에 제시할 예정”이라며 “어떤 형식으로 미래발전방안을 노조측에 제시할지는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르노삼성 난항, 쌍용차 순조롭게 진행

지난 2년간 무분규 임단협을 끌어낸 르노삼성의 경우 올해는 쉽지 않은 임단협이 예상되고 있다. 노조 측에서는 지난 2년간 사측의 입장을 많이 수용했기 때문에 올해 임단협에서는 강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마산가포신항에서 유럽수출용 QM6가 선적되고 있다.

르노삼성 노조는 지난해 중형 세단 SM6 돌풍과 수출 물량 확대로 매출 6조원, 영업이익 4000억원 등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는 점을 들며 기본급 15만원 인상 등을 제시했다. 돈을 번 만큼 받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측은 고정비가 올라가는 방식의 임금 인상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또 르노 본사와 협업 등을 이유로 과도한 수준의 임금 인상은 쉽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사측은 고정비 부담이 없는 성과급 인상 방식을 노조측에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쌍용차는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 연속 분규 없이 임단협을 마무리해 완성차업계의 노사관계 모범사례로 꼽힌다. 쌍용차 노조는 올해 임금협상에서 기본급 11만8000원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사측은 경영여건상 지급할 수 있는 수준에서 임금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쌍용차 관계자는 “회사가 최악의 상황을 겪은 경험이 있어 노조도 파업까지는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올해 협상도 잘 마무리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