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에 나선다. 탈(脫)원전·탈석탄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선 전력 생산비가 상대적으로 비싼 신재생에너지와 LNG(액화천연가스) 비중을 늘려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전기요금 개편이 불가피하다고 본 것이다. 그중에서도 먼저 산업용 전기요금을 표적으로 삼았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19일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서 제시한 에너지 정책 목표를 통해 "산업용 전기요금 체계 개편으로 전력 다소비형 산업구조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개편 작업은 내년 '경(輕)부하 요금'을 손대는 것부터 시작할 계획이다. 현재 산업용 전기는 전력 수요가 많은 오전~저녁에는 높은 요금, 심야나 주말처럼 상대적으로 전력 소비가 적은 경부하 시간대에는 할인 요금을 적용하고 있다. 경부하 요금 할인 폭을 줄이면 요금 인상 효과가 발생한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전기를 낭비하게 만드는 요인을 파악해 그런 부분을 조정하겠다는 취지로, 요금 인상 외에 다른 수요 관리 방안도 검토할 방침"이라고 말했지만 업계에선 요금 인상을 기정사실화했다고 보고 있다. 여당 일각에선 값싼 산업용 전기요금이 기업에 대한 특혜이며 기업의 에너지 과소비를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2019년까지 주택용을 포함해 단계적 전기요금 현실화를 위한 '전기요금 체계 개편 로드맵'을 마련할 방침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전체 전기요금의 인상 여부는 올해 말에 완성되는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수요 전망과 에너지 구성 등을 고려해야 하므로 아직 판단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전문가들은 "원전과 석탄발전을 포기할 경우 전기요금 인상은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로드맵에는 주로 산업용 전기요금 에 대한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움직임에 대해 기업에선 우려 일색이다. 기업들은 산업용 전기에 대한 오해가 많다는 입장이다. 대형 공장은 별도 변압 설비를 설치, 고압 전기를 직접 받아 주택용보다 송·배전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공급 원가가 낮아 요금이 쌀 뿐이란 주장이다. 그럼에도 국내 산업용 전기료는 2000년부터 2016년까지 84.2% 올라 주택용보다 5배 이상 상승했다. 한국 산업용 전기요금이 주요 선진국에 비해 다소 낮은 건 사실이다. 한국 산업용 전기요금은 2015년 기준 ㎿h당 94.9달러로 일본(162달러)이나 독일(145달러)·영국(145달러) 등에 비해 싸다. 하지만 주택용 대비 산업용 전기요금 비율은 92.4%로 OECD 평균(64.2%)보다 높다. 상대적 가격은 낮지 않다는 얘기다.

김창섭 가천대 교수는 "산업용 전기료 인상은 제조업 중심 한국 산업구조를 감안할 때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산업용 전기요금을 30% 올릴 경우, 수출 중소기업의 35.4%가 적자 전환된다. 최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으로 한국 산업용 전기요금이 인상되면 일본 산업 경쟁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산업계 처지에서는 비싼 전기 요금 때문에 한국보다 원가 부담이 높았는데 한국 산업용 전기 요금이 오르면 그만큼 경쟁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속셈이다.

국정기획위는 또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20%로 확대, 신한울 3·4호기와 천지 1~4호기 등 6기 원전 신규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고, 노후 원전 수명 연장을 금지하는 등 문 대통령 주요 대선 공약을 국정 과제로 확정했다. 신고리 5·6호기는 당초 공약에 들어 있었지만 공론화를 통해 확정될 예정이라 이번 발표에선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