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디스플레이는 올 2월 베트남 정부로부터 모바일용 디스플레이 패널 공장 증설을 위해 25억달러(약 2조8000억원) 규모 투자 계획을 승인받았다. 전자업계에서는 이런 규모의 투자가 이뤄지면 4만명 이상 신규 채용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달 2021년까지 미국에 31억달러 상당을 투자해 연구 개발·생산 시설 등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LG화학도 최근 "올해 전지 사업 부문에서 중국과 유럽, 미국 등 해외 생산 기지를 늘리는 데 6000억원 이상을 집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 주요 대기업들은 해외 생산 기지 구축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원가를 절감할 뿐 아니라, 해외 수요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이다. 또 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 장벽이 점점 높아지는 추세이기 때문에 무역 규제를 피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이 때문에 우리 기업의 해외 투자는 고공 행진을 계속하며 새로운 기록들을 써나가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 직접 투자(FDI)는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투자 순유출' 규모만 줄여도 수십만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5년간 해외로 빠져나간 일자리 136만개"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로 들어온 해외 투자액은 106억달러였다. 지난해 평균 원·달러 환율 1160.5원을 적용하면 12조3000억원이다. 반면 해외로 빠져나간 투자액은 352억5000만달러(40조9000억원)에 달했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나라 순 투자 유출은 246억5000만달러(28조6000억원)에 달했다. 이 순 투자 유출액을 취업 유발 계수(12.9명·10억원을 생산하기 위해 직·간접으로 창출되는 고용자 수)를 활용해 계산하면 약 37만명의 고용 손실이 추정된다. 최근 5년간 투자 순유출로 인한 누적 고용 손실은 약 136만명에 이른다. 한경연 이태규 연구위원은 "136만개 일자리는 문재인 정부 공공일자리 목표치(81만개)의 2배 가까운 수치"라며 "앞으로 정부가 5년간 투자 순유출만 줄여도 상당한 고용 효과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 한국의 해외 직접투자액 352억달러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2007년 231억달러에서 꾸준히 증가해 10년 만에 150% 이상 증가한 것이다. 국가별로는 미국·베트남 투자가 크게 늘었다. 우리 기업의 지난해 대미(對美) 투자는 129억달러로 2011년(73억2000만달러)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었다. 베트남 투자도 지난해 22억7000만달러로 5년 사이에 2배 이상 증가했다. 반면 대(對)중국 투자는 지난해 33억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2007년(57억달러)의 60% 수준으로 감소했다. 이런 추세는 올해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올 1분기 해외투자액은 전년 대비 30% 이상 늘며 사상 최초로 100억달러를 돌파했다.

FDI(외국인 직접투자)는 용두사미

펄펄 끓는 해외투자와 달리, FDI는 용두사미(龍頭蛇尾)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FDI 신고액은 213억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지만, 실제 투자(도착액)는 106억달러로 나타났다. 2013년 이후 최저치로 신고액의 50%에 불과했다. 신고액과 도착액이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계획했던 M&A(인수합병)가 무산되거나, 예상치 못한 규제 논란으로 투자가 철회됐기 때문이다.

국가별로 살펴보면 주요국의 FDI가 모두 감소했다. 중국의 국내 FDI는 지난해 4억4000만달러로 전년(17억7000만달러)보다 75%가 감소했다. 미국과 일본도 각각 45%, 33%씩 줄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지난해 FDI가 특히 감소한 것은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보복과 미국의 통상 압력 등이 맞물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투자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 법인세를 낮추는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 등 지금 전 세계는 친(親)기업 정책 경쟁을 벌이고 있다"면서 "우리도 이런 경쟁에서 낙오하면 저성장에서 탈피하지 못한다는 절박감을 사회 전체적으로 인식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