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미주 해운 노선에서 지각 변동이 일고 있다. 인수합병(M&A)으로 몸집을 불린 중국과 일본 선사들이 주도권을 쥐기 시작했다.

18일 프랑스 해운분석기관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올해 5~6월 미주 노선 시장에서 COSCO‧OOCL의 점유율이 18.1%로 1위를 차지했다. 중국 선사 COSCO가 홍콩 선사 OOCL을 인수한 데 따른 결과다. 이어 일본 해운 3사 통합법인인 ‘오션네트워크익스프레스(ONE)'가 16.5%로 2위, 프랑스 CMA‧CGM과 APL이 14.3%로 3위를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1~4월 에버그린(1위‧11.3%), COSCO(2위‧10%), 머스크(3위‧9.9%), MSC(4위‧8.4%), CMA‧CGM(5위‧7.7%) 순이었던 미주 노선 시장점유율 순위가 확 바뀐 것이다. 이는 COSCO가 9위 선사인 OOCL(5.4%)을 인수하고, 일본의 K라인(7위·6.2%), NYK(11위, 5.3%), MOL(12위, 5.1%)이 컨테이너 사업 부문을 통합한 데 따른 것이다.

중국 선사 COSCO 컨테이너선

2015년 미주 노선 연간 점유율 순위는 1위 에버그린(10%), 2위 머스크(9.3%), 3위 MSC(7.5%), 4위 한진해운(7.4%), 5위 CMA‧CGM(7.2%), 6위 COSCO(6.6%), 7위 APL(5.7%), 8위 K라인(5.7%) 순이었다. 2014년에도 4위권 내 일부 선사의 순위만 달랐을 뿐 비슷한 구도였다.

하지만 지난해 세계 각국의 해운 구조조정 작업이 본격화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COSCO는 중국 정부의 자금 지원 아래 자국 내 2위 업체 CSCL과 합병하면서 미주 노선 점유율 6위에서 2위로 단번에 뛰어올랐다. 5~7위 수준이었던 CMA‧CGM도 싱가포르 선사 APL을 사들이면서 순위 상승에 성공했다. 반면 7%가 넘는 점유율을 보유했던 한진해운은 파산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컨테이너선사간 재편이 이뤄지면서 지금까지 선두였던 에버그린과 머스크 대신 COSCO와 ONE이 미주 노선을 주도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했다.

◆ 성장성 높은 미주 노선, 전략적으로도 중요…현대상선, 미주 특화 선사 목표

해운업계에서는 아시아와 북미 지역을 잇는 미주 노선을 전략적으로 중요한 노선으로 꼽는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구주 노선보다 물동량이 많을 뿐 아니라 향후 성장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대표 항만인 부산항은 지리적으로 물동량이 많은 중국‧일본‧동남아 지역과 북미 지역을 잇는 중심지에 위치해 있어 미주 노선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국내 1위 선사가 된 현대상선도 전체 선복량(적재용량)보다 미주 노선 점유율을 늘리는 것이 목표다. 선복량은 선사가 화물 적재공간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를 나타내고, 점유율은 선사가 실제로 운송한 물동량이 전체 물동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준다. 선복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더라도 화물을 싣고 나르지 않으면 실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파산 전 한진해운이 현대상선보다 경쟁력 있는 선사로 평가받던 가장 큰 이유도 미주 노선 점유율이 높았기 때문이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미주 노선 점유율은 각각 7.5%, 5% 수준이었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12월 구조조정이 일단락된 뒤 아시아‧미주 시장 경쟁력을 기반으로 한 ‘포커스드 오션 캐리어(Focused Ocean Carrier)’로 거듭나겠다는 중장기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포커스드 오션 캐리어는 특정 시장에 특화된 선사로, 아시아‧미주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선사가 되겠다는 의미다.

현대상선이 미주 노선에서 높은 점유율을 갖게 되면 이를 기반으로 다른 노선을 직접 개설하거나, 구주나 북미 노선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는 선사와 협력으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머스크, MSC로 구성된 해운 얼라이언스(동맹) ‘2M'이 현대상선과 손을 잡은 이유도 미주 노선 점유율 때문이다.

현대상선 컨테이너선

◆ 현대상선은 한진해운 일부 물량만 흡수…덩치 더 커진 상대와 싸워야

올해 들어 현대상선의 미주 노선 점유율은 7.5%까지 늘어난 상황이다. 지난 4월 아시아발 미주 서안행 노선에서 1주당(weekly) 처리 물동량은 1만3186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로 전년 동기 대비 73% 증가했다.

이는 한진해운이 처리하던 물량을 흡수한 결과다. 하지만 한국 선사 전체로 보면 미주 노선 점유율은 크게 줄었다. 2015년 기준으로 한진해운(7.4%)과 현대상선(4.5%)의 점유율을 더하면 12% 수준이었다. 현대상선이 점유율을 더 늘리려면 한진해운이 가지고 있던 물량뿐 아니라 다른 선사의 물량까지 가져와야 하지만 쉽지 않다.

더 큰 문제는 현대상선이 경쟁해야 하는 중국과 일본 선사들이 덩치를 훨씬 키우면서 미주 노선 주도권을 가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COSCO, ONE이 높은 점유율을 바탕으로 운임을 주도할 경우 현대상선은 이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선복량을 100만TEU까지 늘리는 것보다 미주 노선 점유율을 1%포인트 올리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며 “미주 노선 주도권을 중국과 일본 선사가 가져가면 현대상선은 현재 점유율을 유지하는 것도 버거울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