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7월 현재까지 국내 증시에 입성한 외국 기업이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반기 상장을 준비 중인 기업들이 있지만, 외국 기업 7곳이 상장한 지난해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1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작년엔 차이나크리스탈신소재홀딩스 등 7개 외국 기업이 코스닥시장에 상장됐다. 한국거래소는 지난해 외국 기업 유치 건수 기준으로 전 세계 거래소 가운데 공동 5위에 이름을 올렸다.

올 초만 해도 "올해 코스닥에 상장하는 해외 기업이 10곳에 달해 사상 최다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가, 지금은 "연말까지 많아야 4~5개 기업이 상장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무엇보다 국내 증시에 상장하는 외국 기업 중 가장 비중이 큰 중국계 기업들이 잇따라 상장 일정을 늦추거나 철회한 탓이 크다.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논란으로 한국과 중국 간 외교 마찰이 발생한 데다, 국내 증시에서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중국원양자원 사태 등이 잇따라 불거졌기 때문이다.

보통 중국 기업들은 상장에 긴 시간이 걸리는 중국 본토 대신 한국 증시를 택해 사업 파트너를 찾고 영업 시너지를 강화하려 한다. 그런데 현 시점에선 한국 투자자들의 이른바 '차이나 포비아(중국 공포증)'로 기업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기 힘들다고 판단해 한국 증시 상장을 주저하는 것이다.

더 심해진 '차이나 포비아'

지난 3월 코스닥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하고 심사를 받아온 중국 유기농 비료업체 그린소스인터내셔널은 지난달 예비심사를 자진 철회했다. 중국에서 발생한 AI(조류 인플루엔자)를 수습해야 한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한국에서의 증시 상장 여건이 녹록지 않고 상장 매력도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올해 외국 기업으로선 처음으로 다음 달 중순쯤 국내 증시 상장을 앞두고 있는 중국 화장품 원료업체 컬러레이홀딩스도 상장 준비 과정에서 애를 먹었다. 나름대로 희망 공모가 범위를 낮춰 3800~5800원으로 제시했지만,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선 "기업 가치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런 현상은 중국 기업 공포증 때문이다. 지난 4월 중국원양자원, 완리가 감사의견 거절로 거래가 정지되며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다. 지난해 상장한 중국 기업들의 주가도 시초가 대비 일제히 떨어진 상태다. 2011년 상장 후 3개월 만에 분식회계가 적발되고 결국 상장 폐지됐던 '고섬' 사태가 뇌리에 또렷이 남아 있는 국내 투자자들로선 중국 기업들을 계속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억울하다"는 중국 기업들

한국 증시에 매력을 못 느끼는 일부 중국 기업은 아예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자진 상장폐지를 신청해 현재 정리매매가 진행 중인 중국 공구 전문업체 웨이포트가 대표적인 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작년 상장한 중국 기업들도 '우리는 문제가 된 중국 기업들과 다른데, 기업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억울해한다"고 말했다. 1세대 상장 기업들의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최근 상장한 기업들까지 이유 없이 욕을 먹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거래소 입장에선 조심스럽다. 상장을 유치할 만한 해외 기업 상당수가 중국 기업들인데, 앞서 다른 중국 기업 때문에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의 인식이 상당히 나쁜 상태여서 상장 심사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최근 국내에 상장한 중국 기업들이 저평가돼 있다는 주장에 관해서도 "본인들이 자초한 일"이라는 목소리가 더 우세하다.

결국 회계 자료를 비롯한 기업 정보를 제때 온전히 공개하는 등 중국 기업들이 과거와 달리 투명한 모습을 보여야 국내 투자자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신뢰가 쌓일 것이란 얘기다.